리스본행 야간열차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계기는 며칠 전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평소처럼 출근을 하던 그레고리우스는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여인을 발견하고 몸을 던져 구한다. 그런데 이 여인,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기 전에 그레고리우스의 이마 위에 전화번호로 보이는 숫자를 적지 않나, 그레고리우스가 학교로 데려가자 말도 없이 사라지지 않나, 의문투성이다. 


결국 수업도 내팽개치고 여인을 찾아 나선 그레고리우스는 한 책방에서 여인이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가 망설임 끝에 내려놓고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서둘러 책방 안으로 들어가 무슨 책이냐고 묻자, 책방 주인이 말하기를 포르투갈 출신 작가 아마데우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포르투갈어를 모르는 그레고리우스가 몇 줄만 읽어달라고 부탁하니 책방 주인이 정말 몇 줄을 읽어주는데, 그 몇 줄이 그레고리우스의 인생을 180도로 바꾼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문장에 마음이 동한 그레고리우스는 며칠 후 학교도 집도 내팽개치고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뛰어든다.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44쪽) 


여기까지만 읽어도 내용이 상당히 드라마틱한데 이어지는 내용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아마데우 프라두의 생애를 추적한다. 포르투갈이 독재 정권 치하에 있던 시절, 판사 출신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낸 프라두는 졸업 후 의사가 되었지만 남들 눈을 피해 독재 정권 전복을 기도하며 지하조직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여동생과 옛 친구, 동료들을 만나면서 프라두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 프라두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 동시에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처음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라두에 대해 알면 알수록 프라두의 생애 자체를 흠모하게 된다. 자신의 신념과 안전을 두고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매번 신념을 선택한 프라두를 존경하게 된다.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정을 저버리고, 사랑에 버림 당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프라두를 숭배하게 된다. 그럴수록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평생 한 도시에서 살고 한 직장에 다니며 한 여자와 살고 학문 하나만 알며 산 자신을 부끄럽게 느낀다. 


하지만 과연 그레고리우스의 삶이 프라두의 삶만 못할까.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가 떠오른다.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의 관계는 <싯다르타>에 나오는 고빈다와 싯다르타의 관계를 닮았다. 그레고리우스와 고빈다가 '구도자'라면, 프라두와 싯다르타는 '행동가'다. 프라두와 싯다르타가 일단 저지른 다음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사람이라면, 그레고리우스와 고빈다는 저질러진 일을 수습하고 성공과 실패의 의미를 성찰하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구도자와 행동가가 모두 필요하다. 누구의 삶이 더 좋다, 나쁘다고 가치 매길 수 없다.


다만 가능한 한 젊을 때 다양한 삶의 형태를 시도해보고 나에게 어떤 삶이 잘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겪어볼 필요는 있다. 이 작품에서 그레고리우스는 30년 이상 라틴어 교사로 재직하며 학교 일에만 헌신하느라 자기 안에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한 것 같다. 스위스에 살면서, 같은 유럽인 데다가 기차로 단 몇 시간 거리인 리스본에 여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정도라니. 나라면 해마다, 아니 계절마다 갈 텐데. 가고 싶어도,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서울에서 리스본까지 기차로 한 번에 가는 경험은 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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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23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에 정답 없는 듯 합니다. ^^

키치 2017-09-23 22:04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