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몇 번을 만나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마음이 통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기타리스트 마키노 사토시에게 고미네 요코는 후자다. 마키노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대화가 잘 통했고 마음이 맞았다. 더욱이 요코는 마키노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딸이고, 마키노는 요코가 팬을 자처하는 연주자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강렬하게 끌린다. 


하지만 요코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미국인 남성이 있고, 마키노에게는 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다. 십 대나 이십 대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 하나에 매달릴 수도 있겠지만, 삼십 대 중반을 넘기고 사십 대를 바라보는 '어른'인 두 사람에겐 무모한 짓이다. 결국 두 사람은 직접 만나는 대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이메일을 주고받는 횟수가 늘고 답장을 기다리는 고통이 깊어지자,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우정 이상임을 깨닫고 직접 만나기로 한다. 


만나기로 했지만, 이 또한 할 일 많고 돌봐야 할 사람 많은 '어른'에겐 쉽지 않다. 마키노는 파리에 사는 요코를 위해 자신의 파리 공연에 요코를 초대하지만, 요코는 급한 일이 생겨서 마키노의 공연에 참석하지 못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도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만남 당일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생기는 바람에 만날 수 없게 되고 그대로 오해만 쌓인다. 서로가 운명적 사랑임을 확신했던 두 사람은 이대로 헤어지는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신작 장편소설 <마티네의 끝에서>는 '어른들의 사랑'을 그린다. 사랑에 대한 호기심도 환상도 없고, 사랑만으로 살기엔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아는 어른들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작가는 결코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어른들은 사랑할 때 감정보다 행동을 앞세우지 않으며, 지금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어른들도 운명적 사랑을 기대하지만, 막상 사랑이 다가오면 사랑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결국 어른들이 모험보다 안정을 택할 때, 운명은 이들을 사랑 없이 지켜야 할 것들만 남은 삶으로 이끈다. 해피엔딩은 없다. 


문제는 비관적인 눈으로 어른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작가가 낙관적인 결말을 추구하면서 생긴다. 도쿄에서의 만남이 어긋난 이후 마키노와 요코는 서로를 오해한 채 잘못된 선택을 반복한다. 인간사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고 인간이 하는 일은 실수와 잘못이 많은 게 당연한데도, 어쩌면 이것이 현실인데도, 작가가 이들을 무리하게 해피엔딩으로 이끌다 보니 결말이 통속적이다. 두 사람이 잘 됐으니 다행이라고 위로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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