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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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이 멀지 않은 아버지는 임금 피크제로 인해 월급이 반으로 깎였다. 환갑을 목전에 둔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동네 아주머니들과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서른을 넘지 않은 동생은 얼마 전 오른쪽 가슴에서 작은 혹을 발견했다. 소득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인 까닭에 20만 원이나 되는 검사비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대학 졸업장을 받기 위해 수천만 원을 등록금으로 쓰고, 그것으로 모자라 취업을 준비하고 스펙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매달 수십만 원을 내고도 서른이 넘도록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나는 식구들 앞에 그저 죄인일 뿐이다. 그 흔한 배낭여행 한 번 가본 적 없고 클럽에서 밤새도록 놀아본 적도 없이 공부하고 일만 하며 살았건만 나의 20대는 빛나는 추억 하나 없다. 더 걱정인 것은 이대로라면 30대 역시 가난과 과로로 찌들 것 같다는 것이다. 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무엇을 꿈꿔야 하는가.

절망하는 내게 가까운 선배 하나가 책 한 권을 알려줬다. 2016년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의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이다. 평소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던 신영복 선생의 생애를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저자는 부친이 교육자인 까닭에 비교적 편안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부친이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었고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가난한 가정 형편과 답답한 학교생활, 암울한 시대 상황이라는 삼중고가 저자를 옥죄었지만,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서에 열중하고 학업에 매진한 결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재직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저자는 1968년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맞는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사형까지 언도받은 것이다. 군인 신분인 까닭에 총살형을 받을 것이 확실해 보였지만 기적적으로 최고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저자는 이후 20년 20일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된다. 말이 20년 20일이지, 28세부터 48세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오롯이 어둡고 차디찬 감옥에서 보냈다. 게다가 죄가 있어서 죗값을 치르느라고 옥살이를 한 것이 아니라 독재 정권이 없는 죄를 지어다 구속을 시켰다. 나라면 억울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외려 감옥에서 보낸 20년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고 명명하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지고 귀한 시절로 추억한다. 저자가 긴 세월을 보낸 대전교도소는 정치사상범이 많은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군 출신부터 한국 전쟁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 지리산 빨치산 등 다양한 이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책에서도 접하지 못할 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절도를 하고,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인 사람들을 보며 그동안 자신의 인식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덕분에 고 학부를 나왔다는 이유로 엘리트 의식에 젖어 살 뻔한 것을 피했고, 경제학자로서 자본주의의 실체가 무엇이고 무엇이 민중을 힘들게 만들고 무엇이 민중을 구할 수 있는지 배웠다. 그에게 예정되어 있던 탄탄대로의 인생을 그대로 살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기쁨이자 감동이다.

임꺽정이 강한 사람입니까? 약한 사람입니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살인, 강도도 있지만 보통 사람보다 훨씬 약한 사람들입니다. 강한 사람들은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들은 외형이 아주 공손해요. 아주 세련되고 젠틀합니다. 마치 나치스의 정치장교들이 굉장한 음악적 소양을 가지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여러분 생각에 절도와 강도 중에 누가 더 험상궂을 것 같아요? 칼 들고 있는 강도가 훨씬 사나울 것 같죠? 절도가 강도한테 그래요. "야, 너 간도 크다. 칼 들고 사람들 위협하고." 그러니까 강도가 절도보고 그래요. "야, 너 간도 크다. 사람이 자고 있는데 조용조용 다니며 일 보다니." (43쪽)

저자는 감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대체로 거칠고 험상궂은 사람을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진짜 강한 사람은 오히려 유순하고 공손하고 인상이 선했다. 진짜 강한 사람은 강도처럼 대놓고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절도범처럼 사람들이 부주의한 틈을 노리고 사람들의 안일한 인식을 이용했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꼭 그랬다.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도 '법을 따랐을 뿐이다', '상사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라고 천진한 얼굴로 말했다. 감옥에 끌려들어 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조직 또는 사회가 떠밀어낸 약한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살기 위해 절도를 하고 살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살기 위해 죄를 짓고 감옥에 끌려들어 온 사람과 죄를 짓고도 사회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저자는 그 답을 감옥에서 배웠다.

그렇다면 강하지 않지만 약하게 살 수만도 없는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면피할 요량으로 부른 동요 '시냇물'을 예로 든다. '시냇물'의 노랫말은 이러하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아무리 잘나고 대단한 사람도 광활한 우주 안에서는 물 한 방울과 다르지 않다. 물 한 방울은 금세 증발되고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지만,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닷물이 되면 물살을 이루고 배를 띄우고 지형을 바꾼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방이 장벽으로 가로막힌 듯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면 세상 천지에 오로지 나뿐인 것 같고 나 혼자만으로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지만, 나처럼 힘든 사람 둘이 모이고 열이 모이고 천 명, 만 명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세력이 된다.


선생은 길이 되기보다 숲이 되기를 바랐고, 홀로 우뚝 서기보다 더불어 비스듬히 기대어 서기를 꿈꾸었다. 선생의 꿈 또한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될 수 없었지만, 선생이 생전에 쓰신 글과 책을 통해 사람들 마음에 그 꿈이 스며들었고 이제는 세상을 바꿀 만한 물결조차 이루고 있다. 비록 나는 비루하고 암담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나에게도 꿈이 있다. 선생이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보내는 동안에도 그 꿈을 잃지 않고 소중히 간직한 것처럼 나도 내 삶의 조건과 환경에 굴하지 않고 내 꿈을 간직하고 키워야지. 그리하여 언젠가는 목마른 사람의 목을 축일 냇물이 되고, 길을 건너고 싶은 사람을 태워줄 배를 띄울 강물이 되고, 더 큰 세상을 연결하는 바닷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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