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히말라야 씨
스티븐 얼터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2박 3일의 일본 여행을 마치고 어제 한국에 돌아왔다. 짧은 일정이지만 그것도 여행이라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였는지 잠을 자도 자도 피곤했다. 마침 토요일이겠다, 날씨는 꾸물꾸물하니 안 좋겠다, 대기 중에는 미세 먼지 많겠다, 하여 오늘은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집에서만 지냈다. 


이번 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에 트래킹이 있었다. 규슈에는 한국의 제주 올레를 본떠 만든 '규슈 올레'라는 것이 있다. 오이타에는 규슈 올레 총 15개 코스 중에 3개 코스가 있어서 적어도 1개 코스는 돌아보고 싶었는데 일행이 반대해서 포기했다. 평소에 트래킹은커녕 땀 흘려 운동하는 일도 적은 내가 뜬금없이 규슈 올레 트래킹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라는 책 덕분이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지구의 최고봉이 모여 있어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를 쓴 미국인 작가 스티븐 얼터는 1956년 인도에서 태어나 히말라야 서부에 위치한 우드스톡 국제 학교를 마쳤다. 이후 미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글쓰기 강사로 일하면서도 히말라야를 잊지 못한 얼터는 결국 아내와 함께 인도로 돌아가 완전히 정착했다. 


여기까지만 읽고 서양인 남성이 동양의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 정서를 동경하는 내용쯤으로 짐작하기가 무섭게 분위기가 급변한다. 어느 날 새벽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이 얼터의 집을 습격해 얼터와 아내에게 끔찍한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온몸에 난도질을 당해 사경을 헤매다 겨우 깨어난 얼터는 '우뚝 솟은 히말라야를 보면 내가 치유될지도 모른다는 충동적 확신'이 들었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 일반인도 오르기 힘든 고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높은 곳을 정복하려는 끊임없는 도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의미한 승리나 계시에 대한 열망을 버리는 것이다." 얼터는 히말라야의 세 봉우리, 반다르푼치와 난다 데비, 카일라스 산을 오르는 동안 등반에 열을 올리는 대신,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나는 이 산에서 자꾸만 내 모습을 보고 내 안에서 산의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며, 영원의 무한하고 친밀한 연대 속에 우리 모두를 품은,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더 큰 존재를 느낀다." 


"나는 잃어버린 것들을 찾기 위해 산에 오른다. 산에서 발견하는 것 중에는 내가 애초에 소유하지 않았던 물건,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생각이나 이미지, 나 혼자서는 결코 얻지 못했을 경험도 있다." 언젠가 얼터는 트레킹을 하다가 애지중지하던 손목시계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손목시계를 찾기 위해 산책길을 샅샅이 뒤지는 과정에서 얼터는 병뚜껑과 껌 포장지, 사슴 발자국, 뒤엉긴 양치식물 등 평소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로는 트레킹을 하러 가기 전에 손목시계를 풀어 사무실 책상 위 정리함에 넣어두는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오늘은 손목시계 대신 무엇을 발견할까 기대하면서.


얼터는 2013년 반다르푼치 등정에 실패하고 하산하는 길에 히말라야 전체가 쓰나미에 휩싸인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도에서만 6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우타라칸드 참사'다. 자연재해는 히말라야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때 일어난 홍수가 유독 파괴력이 컸던 것은 히말라야가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숙박 시설이며 휴양지, 리조트 등이 급류가 지나갈 물길 주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을 닮아가야 한다. 인간보다 훨씬 큰 존재이자 인간에 비해 무한히 영속적인 그 존재의 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얼터는 히말라야의 고지를 정복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오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이웃에게 습격을 당해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사람이 산에서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모자라 그 고마움을 산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번 여행에서 짧게라도 트래킹을 했더라면 나 또한 이런 모습의 반의 반이라도 닮을 수 있었을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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