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상상력 - 어느 민주공화국의 역사
심용환 지음 / 사계절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국민들이 간절히 원했던 대통령 탄핵이 지난 금요일에 이뤄졌다. 그날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판결문을 낭독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면서, 판결에 의해 대통령이 파면을 선고받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헌법이 왜 법 중의 법이고 법위의 법이라고 일컬어지는지 여실히 느꼈다. 입법부와 사법부, 언론과 기업도 꼼짝 못한 대통령이 헌법에 의해 파면된 것은 헌법의 제정권자가 국민이며, 헌법을 어기면 대통령도 단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상황인 데다가 전 대통령은 갖은 방법을 사용해서 수사를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개헌에 관한 논쟁도 치열하다. 헌법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현행 헌법의 무엇이 문제인지, 개헌이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 마침 시국에 발맞추어 헌법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듯 나왔고 그중에 몇 권을 읽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지식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만난 책이 <헌법의 상상력>인데 이 책은 제법 괜찮다. 


저자 심용환은 역사교육 전공자이며 역사 대중서 <역사전쟁>, <단박에 한국사> 등을 쓴 작가다. 팟캐스트 <진짜 역사 가짜 역사>, CBS <심용환의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 tvN <어쩌다 어른>, JTBC <말하는 대로> 등에 출연해 올바른 역사 지식을 전달하는 일도 해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헌헌법부터 제1공화국 헌법, 제2공화국 헌법, 제3공화국 헌법, 유신헌법, 오늘날의 헌법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흐름에 맞추어 헌법에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변화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꼼꼼히 분석한다. 


"세상의 모든 헌법은 역사입니다. 모든 제도가 형성된 배경에는 그 나라의 고유한 역사적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187쪽)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제1호(제헌헌법)가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일부 또는 전부 개정되었다. 한국 현대사가 요동칠 때마다 헌법 개정이 이뤄지고, 헌법 개정이 이뤄졌을 때가 곧 한국 현대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대통령 중임 제한 규정을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만 적용되지 않도록 개헌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유신 헌법을 만든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개헌은 주로 정부 구조를 바꾸기 위해 이루어졌지만, 국민의 기본권, 사회권, 인권, 생존권 등의 조항도 권력자의 목적과 사회 분위기에 따라 변화를 보였다. 그 때마다 사회 문화는 물론 국민들의 일상도 달라졌다.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 헌법의 경제조항은 물론 사회복지나 근로의 권리 같은 구체적인 조항도 주권자 중심으로 서술되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319쪽) 


저자는 만약 현행 헌법을 개정하게 된다면 국가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을 중심으로 헌법 조항을 서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헌법을 보면 대부분의 조항의 주어가 국가로 되어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현행 헌법 1조 2항의 정신과 배치된다. 


저자는 헌법을 한국의 현대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헌법을 한국 현대사 안에서만 놓고 보면 자칫 보수와 진보, 정당과 정당 간의 갈등 소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을 미국 헌법, 독일 헌법, 프랑스 헌법, 일본 헌법 등과 함께 놓고 비교하면 대한민국 헌법의 장단점이 무엇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고쳐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점이 무엇인지 간략하게나마 나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