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 망설이지 않고, 기죽지 않고, 지지 않는 불량 페미니스트의 대화 기술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아니카는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안겔리카를 만난다. "이쪽은 우리 남편, 슈나이더 박사님.", "어머, 서른아홉인데 아직 결혼을 못했다고? 설마 너 아직도 카이를 못 잊었니?" 쉬지 않고 쏟아지는 안겔리카의 공격에 아니카는 한 마디도 맞받아치지 못한다. 대체 아니카의 입을 틀어막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코치 니콜 슈타우딩거가 쓴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에 따르면 많은 여성들이 자신감이 없고 불안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사회가 정한 역할 모델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야 '옳다'고 생각한다." 아니카는 서른아홉이 되었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다. 아니카는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그녀 자신도 그녀처럼 사는 방식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고 자아상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아니카는 온 세상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슈퍼모델이 아니다. 혼자 묵묵히 일하고, 남자 동료들을 상대로 자주 싸워야 하며 네일아트나 명품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그 누구도 그녀처럼 사는 방식이 옳다고, 좋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항상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같은 또래의 여성들과 비교할 때 자신의 인생이 '틀렸다'고 은연중에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안겔리카 같은 여자들을 만날 때면 마음속에 도사린 불안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16쪽) 


자존감이 낮고 자아상이 왜곡되어 있는 여성은 자기보다 타인을 우선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기보다 타인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내는 데 급급하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보다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상대가 나를 공격하거나 비난할 때 바로 맞받아 치기보다는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못생긴 여자, 뚱뚱한 여자, 나쁜 여자라는 꼬리표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정작 상대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 옳다'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방법을 익힐 차례다. 공격을 당했을 때 바로 되갚아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뭐라도 대답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답을 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역할'을 박차고 나온다는 뜻이다.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으면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거나 가벼운 웃음을 흘려주기라도 하자.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는다.


당신은 지금 분명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리 대답이 하고 싶어도 생각이 나야 하지.' 맞다. 문제는 재능이다. 이 세상에는 창의성을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머리와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재능을 떠나 자유롭게 대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대응을 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무엇이든 대답을 하는 것 말이다. 이는 곧 '피해자의 역할'을 박차고 나온다는 뜻이며, 상대가 던진 뜨거운 감자를 그대로 상대에게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118~119쪽)


다음은 실전 대화다. 회사 면접에서 "아이를 몇 명 더 낳을 생각이에요?" 같은 성차별적인 질문을 받거나 시어머니가 "이걸 음식이라고 만들었니?"라고 꾸짖을 때 현명하게 맞받아치는 기술이 이 책에 나온다. 가장 좋은 기술은 날카로운 공격을 부드러운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아이를 몇 명 더 낳을 생각이에요?"라고 물으면 "하늘의 뜻을 제가 어찌 알겠어요?" 또는 "이 회사에 들어오려면 몇 명을 낳아야 하나요?"라고 답하는 식이다. 유머를 떠올릴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영혼 없는 감탄사라도 연발한다. 성의 없는 대답에 마음이 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공격인지 알 것이다. 


참고로 저자는 아니카가 안겔리카에게 이렇게 답하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쪽은 우리 남편, 슈나이더 박사님." "아, 그래? 정말 재밌다. 네가 박사를 만나는 동안 난 직접 박사가 됐거든." "어머, 서른아홉인데 아직 결혼을 못했다고? 설마 너 아직도 카이를 못 잊었니?" "카이가 누구야?" 내 속이 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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