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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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문과생인 나는 이과생들이 신기하다. 똑같이 점심에 회사 밖으로 나가 일본 라멘을 사 먹어도 문과 출신인 나는 음식점 이름이나(일본 남부의 하카타 라멘 전문점이군!) 메뉴 설명에(돈코츠 라멘이라고 쓰는 것과 돼지뼈 라면이라고 쓰는 건 어떻게 다를까?) 반응하는 데 반해, 이과 출신인 동료는 가게 구조나(이 집은 카운터 석을 늘려 회전율을 높였군!) 면의 재질과 굵기(이 집 면은 나선형으로 구불구불하게 꼬여서 탄력이 좋고 잘 안 불어) 등에 반응한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말을 쓰며 살아도 문과냐 이과냐에 따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건 전혀 다르다. 


<사소한 것들의 과학>의 저자 마크 미오도닉은 문과생인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슈퍼 이과생'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기차역에서 낯선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고 면도날에 등을 베이는 사건을 겪었다. 부모님은 놀라서 기절할 뻔했지만, 그는 작은 면도날이 그토록 위협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면도날의 재료인 철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열심히 과학 공부를 한 결과 대학에서 재료과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소에서 공학자로 일하며 사물의 구조와 성질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책에서 그는 철, 종이, 초콜릿, 유리, 플라스틱, 흑연, 자기, 콘크리트 등 일상에서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탄소니 크롬이니, 원자 치환이니 전위니 하는 과학 용어들은 어렵지만 필기용 노트며 가족사진이며 심지어는 오래된 열차표와 점점 희미해지는 영수증까지 동원해가며 설명하는 저자의 열정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과학 머리도 없는데 수업도 제대로 안 들은 날 탓해야지. 


종이의 어떤 면 때문에, 우리는 그냥 있었으면 비밀이 됐을 말을 표현하게 되는 걸까. 보통 혼자 있는 순간에 편지를 쓰게 되고, 그때 종이는 감각적인 사랑에 스스로를 내어준다. 쓰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감동적이고 흘러넘치며 번창하는 하나의 행위다. 사랑스러운 방백이나 가벼운 묘사, 그리고 키보드라는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는 개인성이 한데 모인 것이다. 잉크는 정직함과 표현력을 갈망하는 일종의 피가 돼 종이에 부어지고, 생각이 흘러가도록 허락한다. (p.90)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여러 물질 이야기 중에서도 종이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종이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노트, 수첩, 문서, 책, 포스터, 벽지, 화장지, 우유팩, 휴지, 영수증, 종이 티백, 종이 필터 등등 다양하다. 그만큼 베어지는 나무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적으로 화장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베어져 가공되는 나무의 수는 매일 2만 7천 그루에 달한다('화장지'만이다. 그것도 '매일'이다!). 나무를 지키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종이 사용을 줄이고 디지털 기술 활용을 늘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종이가 너무 매력적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메시지를 위해서라면, 종이는 다른 모든 매체보다 우위에 있다'. 연애편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 좋아하는 영화의 티켓, 동경하는 작가의 책, 어렸을 때 쓴 일기, 여행에서 산 엽서와 책갈피 등등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은 종이라는 매체를 거칠 때 더 귀하고 애틋하다. 그걸 위해서라면 나무 한 그루 더 베고 깨끗한 산소가 덜 공급된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에게 종이가 그렇듯, 누군가에겐 철이, 누군가에겐 유리가, 누군가에겐 플라스틱이 무엇보다 특별하고 생각만 해도 애틋한 물질이겠지. 그들의 '사소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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