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 천천히, 조금씩, 다 같이 행복을 찾는 사람들
나유리.미셸 램블린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핀란드에는 가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무밍과 따루, 얼마 전 <북유럽 빵빠라빵 여행>이라는 책에서 본 맛있는 핀란드 빵을 제외하면, 나에게 핀란드는 살인적인 물가와 매서운 추위가 존재하는, 그다지 가보고 싶지 않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핀란드는 살고 싶은 나라 1순위가 되었다. 높은 수준의 복지, 천혜의 자연환경, 아름다운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다. 착한 소비니 손으로 만드는 행복이니 같은 것도 부차적이다. 그보다 앞서 이 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힌 정신이 부럽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럽다.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핀란드인)는 핀란드가 유럽의 외딴 나라이고, 춥고, 언어도 다르고, 다른 나라에 비해 약소국이며, 그래서 아무도 오려 하지 않는 나라라고 항상 생각해. (중략) 이런 성공을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필요하다'라는 가르침을 배웠다고 생각해. 우리는 '이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다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고작 인구 500만 명 가운데 얼마나 많은 천재가 있겠어?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중국 같은 경우 우리보다 똑똑한 인재들이 훨씬 많겠지. 그래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 수 없다는 게 핀란드 사회야. 우리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함께 일해야 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p.75)


이 책을 함께 쓴 나유리, 미셸 부부의 친구인 핀란드인 요한나의 말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인구가 적고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며 함께 일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핀란드가 자랑하는 높은 수준의 복지 제도는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사회에 불행한 이가 많다면 결코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수입이 낮은 사람도 안전과 복지를 보장받아야 하고, 이것이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p.71) 남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에 찬성하고 벌이가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것도 받아들인다. 


복지뿐 아니라 교육, 여성 정책, 외국인 정책 등도 이 같은 생각에 기반을 둔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획일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다양한 개성과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교육한다. 고등교육을 받든 취업을 하든 차별이 없고, 다른 분야로 재교육,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보장된다. 사람이 귀하므로 성차별은 있을 수 없다. 인구가 부족한 마당에 아이를 낳아 인구를 늘려주는 여성은 애국자로 대접받는다. 외국인도 마찬가지. 굳이 핀란드 같은 멀고 척박한 나라에 와주는 외국인에 대해 핀란드 정부는 무상 교육을 제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택 지원, 보조금, 점심값, 교통비 지원 등도 아낌없다. 이 같은 혜택은 물론 자국민들에게도 돌아간다. 


물가가 높은 대신 누구나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학교에서 교육한다. 학교에서 미술과 별도로 공예 교육을 하기 때문에 간단한 옷이나 물건은 핀란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다(핀란드의 높은 디자인 수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간단한 채소는 도시에서도 직접 길러 먹고, 숲이나 들판에서 과일이나 견과물 등을 직접 채집해 먹는 일도 다반사다. 핀란드는 토지를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개념이 희박해 나무에 열린 과일이든 땅에 떨어진 밤이든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그렇게 직접 만든 옷이나 물건, 직접 딴 재료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마켓도 일반화되는 추세다. 


핀란드가 전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여성 문제의 경우, 100년 전만 해도 거리의 부랑자들 대다수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온 여성들이었으며, 1950년대만 해도 상대방의 불륜 증거를 제시해야만 이혼이 가능했을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반(反) 여성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마땅한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고 바람직한 사회 문화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오늘의 핀란드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인구가 적고 약소국인데, 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낙오자로 만들며, 다 같이 잘 살기보다는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생각이 팽배한 걸까. 가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나라 핀란드가 너무 부럽다. 부럽기만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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