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생활 - 두 번째 퇴사, 그래도 잘 살고 있습니다
오지혜 글.그림 / 사물을봄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몇만 원짜리 화장품은 못 사면서 몇십만 원어치 책은 한 달이 뭐냐, 몇 주가 멀다 하고 사는 사람인지라 중고서점은 책값 부담 덜어주는 고마운 곳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럭키백 할인에 적립금, 마일리지 혜택도 있어 책을 사고 영수증을 받아들 때마다 책 싸게 산 즐거움에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단 하나 아쉬움은 알라딘 중고서점이 집 근처에 없어서 가까운 신천점이나 건대점, 강남점에 갈 때마다 교통비가 든다는 것이었는데 그나마도 이제 옛날 얘기다. 집 근처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겼다. 


<지혜로운 생활>은 집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 첫 방문 때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 알라딘 북펀드에 올라와서 참여하려고 했으나 기한을 놓쳐 못 했다.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중고서점에서 다시 만나다니.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냉큼 구입했다. 읽어보니 만듦새가 좋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떠밀리듯 들어간 첫 회사를 퇴사하고 두 번째 들어간 회사까지 3년을 못 채우고 퇴사하기까지의 시간들은 모노톤으로, 두 번째 퇴사 후 뒤늦게 청춘을 만끽하는 시간들은 컬러풀하게 그렸다. 마스다 미리를 연상시키는 깔끔하고 귀여운 그림체도 좋고, 낙서인 듯 시인 듯 일기인 듯 에세이인 듯 한 글도 좋다.


가장 좋은 건 내용이다. 저자는 두 번째 퇴사 후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들고 그 책을 팔며 지내고 있다. 퇴사 전에도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걱정하거나 비난했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혼자서 일하고 돈 버는 게 쉽겠냐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산다는 건 꿈같은 일이라고. 퇴사하고 보니 그들 말대로 혼자 일하고 돈 버는 게 쉽지 않았다. 전부터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고 파는 삶을 꿈꿨지만, 막상 시도해보니 얇은 노트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매달 또박또박 들어오는 월급과 안정적인 신분이 주는 편안함을 뛰어넘는 보상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책을 만드는 즐거움을 느꼈고, 그걸 누군가에게 팔고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듣는 행복을 경험했다. 저자처럼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걸 확인했다. 평생 회사에서만 일한 사람들은 죽어도 모를 세상이다. 


나도 저자처럼 나만 낙오자 같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던 시기에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조언과 위로를 받았다. 그때까지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거나 나의 일부를 희생해야 하는 줄만 알았던 내겐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생활을 바꾸고 있다. 하루 중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시간을 줄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아직 완전히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언젠가 하고 싶은 일만 전업으로 하게 되리라 믿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니 성실하게 공부했을 것이고, 졸업에 맞춰 취업하고 재취업까지 했으니 남들 못지않게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힘들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맞다. 내 노력과 열정에 세상이 보답해주지 않는다면, 꿈쩍도 하지 않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대신 나를 필요로 하는 다른 세상을 찾는 것도 대안이다. 그것이 진짜 '지혜로운 생활'이 아닐까. 이제 보니 중고서점에서 책만 산 게 아니라 힘든 시기를 따로 또 같이 겪은 친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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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6-04-2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중고서점에서 책만 산게
아니라는 구절이 참 와닿습니다

키치 2016-04-28 14:31   좋아요 0 | URL
눈여겨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mira 2016-04-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궁금한데요 저도 요즘 백수상태라 공감이 될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