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사는 소비자 공감을 파는 마케터 - 남다른 가치를 찾아내는 마케팅 두뇌 만들기 프로젝트
김지헌 지음 / 갈매나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대학교 때 KT&G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스쿨에 다닌 적이 있다. 마케팅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것저것 관심 많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걸 좋아해서 신청했는데 덜컥 붙었다. 매주 신림동 보라매공원 근처의 건물에서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직접 하는 강의를 들었다. 문제는 그게 얼마나 귀중한 경험인지 모르고 그때 나는 강의 시간에 주로 졸거나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 신림동의 명물인 곱창볶음을 먹는 데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죄로 사회인이 되고 난 지금도 나는 마케팅을 배우고 있다. MBA에 다니거나 무슨 스터디를 하는 건 아니고 독학으로. 다행히도 마케팅 스쿨에 다닐 때 마케팅의 바이블로 꼽히는 책들을 웬만큼 읽어서 이제는 신간 위주로 읽어도 막 생소하진 않다. 이래서 젊을 때 뭐든 배워두면 좋다고 하나보다.



브랜드 전략의 시작과 중심에는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는 가치의 교환 과정에서 고객 만족을 이끌어내고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해준다. (중략) 지금 여러분이 팔고 있는 물건이 'WHY'를 얘기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라. 만약, HOW와 WHAT에 집중하고 있다면 곧 경쟁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P.29)


<가치를 사는 소비자 공감을 파는 마케터>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사야 돼' 싶었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물건이 없어서,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겨서 산다. 그러므로 마케터는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공감을 얻는 방식으로 상품을 팔아야 한다. 내가 마케팅을 몰라서, 마케팅에 관해 읽을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파고드는 제목 한 줄에 공감해 기어코 지갑을 열어 이 책을 산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 잡지인 <더피알>에서 '김지헌의 브랜딩 인사이트'라는 제목으로 2년 동안 연재한 칼럼을 바탕으로 한다. 가치 분석, 가치 제안, 가치 전달을 세 축으로 하는 '가치 연쇄 모형'에 관한 설명 부분은 다소 지루했지만, '짜파구리', '크레용팝', '셀카봉' 등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마케팅 성공 사례는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었다.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1개 1,000원이라는, 요즘 물가를 반영하지 않은 가격으로 화제를 모았던 고려대 앞 명물 영철버거가 폐업했다. 저자는 영철버거가 7,000원이 넘는 햄버거를 내놓으면서 '영철버거=저렴한 먹거리'라는 고정관념을 스스로 망가뜨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반대로 대표적인 SPA 브랜드 ZARA는 영국의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이 ZARA의 드레스를 입는 호재를 만났을 때 그 드레스를 추가 생산하기는커녕 철수시켰다. ZARA는 2주마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데, 출시된 지 3주 지난 제품이 매장에 있으면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같은 분야의 덕후만큼 덕후들의 욕구를 잘 이해하고,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제품을 효과적으로 팔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장에서는 덕후들 간 판매와 구매가 활발해지고 덕후를 위한 다양한 비즈니스가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p.290)


끝으로 저자는 덕후가 주도하는 가치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도 어떻게 보면 덕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서 저자의 글 한 줄 한 줄에 깊이 공감했다. '일반인은 구매 시점에 필요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반면, 덕후는 평소에 지속적인 탐색을 한다.', '덕후들의 끊임없는 탐색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도하여 항상 브랜드 주변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다.' 맞다고 공감은 하지만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가르침들... HOW TO를 가르쳐주지 않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이런 건 십 년 전에 열린 마케팅 스쿨에서는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님 내가 조느라 혹은 곱창볶음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놓쳤나? 그건 더 이상 알 수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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