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의 길
서광원 지음 / 흐름출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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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피자 브랜드 회장이 자신이 건물에서 나오기 전에 문을 잠갔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몇 년 전 이 회장이 쓴 책을 읽고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뒤에서는 갑질을 했다니 유감이다. 경비원도 소비자이고 고객인데 막 대하는 걸 보니 고객을 생각한다는 경영 철학이 무색하다. 어디 이뿐이랴. 직원을 하인처럼 다루고 회사 밖에서까지 갑질을 하는 사장들의 행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오너상은 점점 높아지는데 현실에서 만나는 사장들의 모습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니 답답하다.


베스트셀러 <사장으로 무엇인가>의 저자 서광원의 신작 <사장의 길>을 읽으니 사장도 나름대로 고충이 많다고 한다. 사업이 커질수록 직원들로부터 소외되는 외로움과 책임감이 커지는 괴로움을 느낀다. 사장이라 직원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경쟁자인 다른 사장들과 고민을 나눌 수도 없다. 사업이 커지는 건 좋은 일이고 하물며 자기가 원하는 사업을 하면서도 외롭고 괴로운 건 왜일까? 저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간의 뇌는 뇌간과 변연계, 신피질이라는 3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 '파충류의 뇌'로 불리는 뇌간과 '포유류의 뇌'로 불리는 변연계는 본능에 충실하고 '인간의 뇌'로 불리는 신피질이 이성을 담당한다. 사장의 뇌에서 뇌간과 변연계만 작동하는 경우 이성이 아닌 본능에 충실한 판단을 하기 쉽다.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에 따라 눈치 없이 직원들 회식하는 자리에 낀다. 혼자 있길 두려워하는 본능에 따라 혼자 밥 먹길 피한다. 대접받고 싶은 본능에 따라 여러 명의 수행 요원을 거느리고, 이동할 때마다 의전을 요구한다. 모르는 경비원에게조차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리더들은 특징이 있다. 상대가(대체로 직원들이) 원하지도 않은 걸 잘해주면서 상대가(직원들이) 자신의 기대대로 하기를 원한다.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상대가 자신을 속인 것처럼 화를 낸다. 기대가 계속 무너지면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부르르 떤다. 성과로 조직을 이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조직과의 관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p.143) 


해법은 뭘까. 저자는 식당에서 혼자 밥 먹을 용기조차 없는 사람은 좋은 사장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괴로움을 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장은 스스로 혼자 있길 선택한 사람이다. 조직이라는 안정적이고 든든한 울타리를 거부하고 혼자 몸으로 세상과 맞서길 택했다. 이런 사람은 파충류나 포유류의 뇌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 본능에 따라 몸이 편하고 마음이 즐겁게 살기보다는 이성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사장은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지만 '조직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직 인간은 다 함께 같이 있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유 시간이 생기면 뭘 해야 할지 모르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퇴근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엮어 한잔할 구실을 만든다. 자기 밀도가 없고 관계 밀도로 삶을 채우며, 구박받고 눈칫밥을 먹어도 무리 속에 있으려고 한다. 한마디로 '나' 안에 '자신'을 모른다. 이런 사람은 사장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사장이 되었다면 조직 인간의 습성을 모조리 버려야 한다. 조직과 동떨어진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리더가 조직과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조직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이지, 리더가 무리 속에 있기 위해서가 아니다. 몰려다니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리더는 항상 조직과 있어야 하고, 조직을 이끌어가야 하지만, 조직과 섞여서는 안 된다. 논어가 말하는 화이부동이다. 같이 있기는 하되, 같아지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다. 리더는 함께 몰려다녀야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무리 본능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p.145) 


그렇다고 혼자서만 가도 안 된다. 때로는 져주기도 하고 봐주기도 하면서 직원들을 이끌고 갈 줄도 알아야 한다. 혼자 가야 할 때는 혼자 가고 같이 가야 할 때는 같이 가는 두 얼굴의 사장이 필요한데, 어째 오늘날 이 나라에는 강한 자에겐 굽신거리고 약한 자에게는 갑질하는, 두 쪽 다 못난 얼굴의 사장들만 보인다. 부디 이 책을 읽는 사장님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괴로움에 취해있지 않고, 혼자일 때나 함께일 때나 지혜롭고 너그러운 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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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0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숙한 리더를 위한 책을 읽거나 추천하는 경영인이 있으면 100% 믿어선 안 됩니다. 요즘 경영인들도 인문학 유행에 맞춰서 독서 문화를 장려한다지만, 다독한다고 해서 올바른 리더가 되는 건 아니죠. 자신의 성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부하나 동료를 가까이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는 의지의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키치 2016-04-05 19:01   좋아요 0 | URL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배신감마저 들더라구요. 앞으로는 좀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경제경영서를 보려 합니다.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