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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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일본 가수들의 동영상을 보다가 문득 90년대를 풍미한 그룹 ZARD의 보컬 故 사카이 이즈미의 영상에 눈이 머물렀다. 팬까지는 아니지만 일본 가요를 즐겨 듣는 사람으로서 ZARD의 노래를 몇 곡인가 알고 있었기에 2007년 사카이 이즈미가 한국 나이 41세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매우 안타까웠다. 허나 오늘 사카이 이즈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고 그녀가 직접 작사한 가사를 듣고 있자니, 삶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그 마음을 노래로 담아왔던 한 사람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눈을 감을 때 얼마나 허망하고 비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전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래도 한동안 ZARD의 노래를 듣기가 힘들 것 같다.
 

  사카이 이즈미를 생각하며 마음이 센티멘털해진 건, 오전까지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를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0만 번 산 고양이>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이기도 한 사노 요코의 이 책은 전작 <사는 게 뭐라고>와 쌍둥이 같지만 내용은 좀 더 무겁다. <사는 게 뭐라고>가 저자 자신이 인생 후반부를 보내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죽는 게 뭐라고>는 2010년 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투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카이 이즈미도 생전에 암을 앓았고 치료와 재발을 거듭하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사망했다. 사노 요코 역시 오랫동안 암과 싸우며 치료와 재발을 반복하다가 72세라는, 요즘 여성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와 분야는 달라도 빛나는 재능을 가진 예술가의 목숨을 둘이나 앗아갔으니 암이란 얼마나 무서운 병이며 죽음이란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새삼 생각했다.


  그러나 사노 요코가 누구인가. <사는 게 뭐라고>에서 노년의 생활을 - 심지어 '욘사마' 배용준에게 빠져 재산을 거덜 낼(?) 뻔한 일마저 - 쿨하게 털어놓았던 것처럼, <죽는 게 뭐라고>에서는 투병하면서 겪은 일화며 일상에서 느낀 소소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소개한다. 기억에 남는 건 젊은 시절 좋아했던 가수 사와다 겐지의 옛날 DVD를 보면서 요즘 가수들에게선 보기 힘든 퇴폐적인 느낌을 찬양하는 대목과(아울러 나이가 들어서도 필사적으로 체형을 유지하는 고 히로미가 옹졸해 보인다고 한 것), 병원에 가는 것도 싫고 딱히 아픈 곳이 없는 데도 친구한테 멋진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말만 듣고 모 병원에 갔다가 (역시나) 그 선생님에게 반해 그대로 입원해 버린 대목. 이밖에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도 딱 이 두 대목이 기억나는 걸 보면 나도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이 책은 사노 요코의 에세이뿐만 아니라 저자가 히라이 다쓰오라는 의사와 나눈 대담과 세키카와 나쓰오가 사노 요코를 추모하며 쓴 글도 담고 있다. 마침 세키카와 나쓰오의 대표작 <도련님의 시대>를 읽고 난 참이라 그의 이름을 보니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 사노 요코가 '나는 피를 토한 나쓰메 소세키가 부러웠다'라고 쓴 문장이 있었는데, <도련님의 시대>에 나쓰메 소세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장면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도련님의 시대>를) 힘들게 읽은 보람이 있다.  


  저자는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고, <100만 번 산 고양이> 속의 고양이가 100만 번이나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 것처럼 죽는 건 가벼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내게 죽음이란 역시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하물며 죽음으로 가는 길에 지독한 병마와의 싸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단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사노 요코와 대담을 나눈 의사 히라이 다쓰오가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은 "확실한 사생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병과 죽음을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일찍부터 조금씩 해온 사람을 이것들이 현실로 닥쳤을 때 멘탈케어가 더 잘 한다는 것. 오늘도 더는 이 세상에 없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작가의 글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 내가 과연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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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1-2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다라는 전제가 훈련되어 있다면 정말 죽을때 조금은 맨탈 흔들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그러므로써 지금 당장 삶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발버둥이라도 할 수 있는 사유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잘 읽었습니다....

키치 2015-11-28 10:2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평상시에 죽음을 생각하고 훈련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 책에도 나와 있더라구요.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