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시리즈 '미야베 월드 2막'을 전권 읽은 후로 미미 여사의 책은 한동안 읽지 않을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음식도 어쩌다 먹어야 맛있지 자주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아무리 미미 여사의 팬이라도 한 달에 2,3권씩 읽는 건 좀 무리였던 것 같다. 이런 나의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신작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 나왔다. 읽을까 말까 고민고민하다가 일단 사놓기는 해야겠다 싶어 구입했다. 그런데 이 책을 사고 보니 <누군가>, <이름없는 독>에 이어지는 내용이라지 뭔가. 이름하여 '행복한 탐정 시리즈'! 서둘러 두 권 모두 구입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 너무 재밌다. 안 그래도 일 때문에 책 읽을 시간 없어 죽겠는데 새벽잠을 반납해가며 읽고 있다. 마성의 미미 여사ㅠㅠ


 

주인공은 스기무라 사부로. 집에서는 아내와 딸을 지극히 사랑하고,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가장인 그에게 딱 하나 평범하지 않은 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굴지의 대기업 이마다 콘체른의 회장 사위라는 사실! 남들은 아내와 장인 덕에 팔자 고치고 편안하게 산다고 부러워하지만, 스기무라 자신은 하던 일(아동문학 편집자)을 그만두고 장인 밑에서 눈치 보며 일하는 신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이런 점도 열폭 포인트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장인의 지시를 받아 '특별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탐정 아닌 탐정'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이 시리즈의 큰 줄거리이다. <모방범>, <화차> 같은 작품과는 분위기가 퍽 다르지만, 나는 미미 여사의 이런 풍을 더 좋아한다.



<누군가>에는 스기무라 사부로가 '탐정 아닌 탐정'의 삶을 살게되는 첫 사건이 나온다. 장인이 아끼는 운전기사 가지타가 자전거에 치여 죽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은 가지타의 두 딸이 전부터 안면이 있던 이마다 콘체른의 회장, 즉 스기무라의 장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벌어진다. 장인은 가지타의 딸 리코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고 한 말에 착안해 편집자 출신의 스기무라에게 가지타의 딸들을 도와 책을 만들라고 명령한다. 이에 스기무라는 회사 일 틈틈이 가지타의 두 딸을 만나며 점점 가지타 가의 '비밀'에 다가간다. 



가지타 가의 비밀은 <모방범>이나 <화차> 같은 소설에 비하면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여럿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나오거나 사회의 온갖 악이 뒤섞여서 나뒹구는 이야기보다 이런 이야기에 나오는 악이 더 무섭고 고약하게 느껴진다. 법이나 사회 규범으로 다스릴 수 없는 수준의 악 중에도 인간을 못살게 굴고 시시각각으로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가령 지독한 상사나, 각박한 인심이나, 남에게 폐를 끼치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들처럼. <누군가>에 나오는 악도 보기엔 고작 그런 수준이지만, 내가 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린다. 어쩜 이런 이야기를 이리도 잘 쓸까. 이어지는 <이름 없는 독>도, 아직 읽는 중인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도 같은 맥락에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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