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필요할 때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
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소설이 필요할 때'마다 항목을 찾아서 읽어보면 좋을, 일종의 사전이다. 그것도 모르고 첫 장부터 읽다가 뒤늦게 이 책의 읽는 법을 깨닫고 책 뒤에 실린 '증상 리스트' 색인을 참조해가며 읽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테면 짝사랑을 하느라 온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짝사랑할 때'를 찾아본다. 



... 문학 안에는 사랑해달라고 하지도 않은 사람을 말 그대로 죽도록 사랑하는 고통에 찬 어리석은 영혼들이 넘쳐난다. 결코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다. 이런 무리 중에서도 최악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주인공 베르터다. 그는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로, 농부의 딸인 롯테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둘이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좋아하는 약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 혹시 당신이 짝사랑으로 빚어진 슬픔을 즐기는 유형이라면 부탁하건데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내려놓아라. (pp.332-3)



짝사랑할 때 읽어보면 좋을 소설로 앤 패챗의 <벨칸토>,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토마스 하디의 <광란의 무리를 멀리하고>가 나와 있다. 이 중에 내가 아는 소설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유일하다. 아무리 짝사랑의 열병이 대단해도 베르터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그래서도 안 된다). 답변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로 '더 찾아보기'에 나온 다른 색인을 찾아봐야겠다. '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는 어떨까.



... 당신이 이런 열병으로 고통받는 중이라면 열병의 대상을 현실에서 책으로 바꿔보라.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프루스트, 지드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콕토는 당대의 예술계에서 "경박한 왕자"로 불렸으며 스스로 이런 열병을 수도 없이 부채질하곤 했다. 그의 감각적인 산문도, 종잡을 수 없는 상상력도 모두 매혹적이다. <앙팡 테리블>은 콕토가 아편을 끊은 직후에 썼다고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감정이 한껏 고양된 문장을 읽으면 그의 피가 약을 갈구한다는 느낌도 든다. (pp.289-90)



'열병의 대상을 현실에서 책으로 바꿔보라'니. 진작부터 해온 일이 아닌가. 처방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추천해준 콕토의 <앙팡 테리블>이라는 작품은 신선하다. 작가가 아편을 끊은 직후에 쓴 탓인지 약을 갈구하는 느낌이 든다니. 대체 어떤 느낌일까. 중독의 대상을 아편에서 책으로 바꾼 작가가 쓴 작품이니 열병을 앓을 때 읽으면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삼십 대에 읽으면 좋은 소설 베스트 10도 소개되어 있다. 



<런던 필즈> 마틴 에이미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앤 브론테

<미들섹스> 제프리 유제니디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베스트 오브 에브리씽> 로나 재페

<인간의 굴레에서> 서머싯 몸

<목사의 딸> F.M.메이요

<정글> 업튼 싱클레어

<미스 맥켄지> 앤서니 트롤럽

<올 더 킹즈 맨> 로버트 펜 워런 (p.532)



어쩌면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을 수가! 제목을 들어본 책도 절반이 안 된다. 내 삶이 이토록 막막하고 불안한 건 소설이라는 약을 충분히 처방받지 못한 까닭일까.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이밖에 '가장 친한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가족에 맞설 때', '감기에 걸렸을 때',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때', '게으를 때', '결혼할 때', '경기침체일 때' 등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고 고민해보았을 시시콜콜한 일들에 대한 처방이 나와 있다. 독서 치료, 북테라피라는 개념이 낯설어도 소설을 읽고 동기부여가 되거나 치유받은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터. 소설의 힘은 믿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단, 영미권 소설 위주라는 점은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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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에서 콕토가 생소한 작가로 분류되지만, 젊은 시절부터 글을 써서 천재 소리 들었어요. 그림도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키치 2015-07-02 22: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