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 리스크 사회에서 약자들이 함께 살아남는 법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북뱅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혼자 수업 듣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실제로 했던 질문이다.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손이 올라왔고, 그 중에는 친구들과 떨어져 호기롭게 그 과목을 수강한 나의 손도 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교수님의 한 마디. "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귀신인가요?" 아니다. 강의실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도 있고, 조교들도 있고, 이백 여명이 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런데 왜 나를 포함한 수많은 학생들은 혼자서 강의를 듣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일본의 비평가이자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가 쓴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를 읽으며 그 때 그 교수님의 질문이 떠올랐다. <나혼자 산다>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있지만 세상에 '나혼자' 사는 사람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한) 한 명도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블로그에 올린 글을 결혼, 가족, 직장이라는 키워드로 엮은 이 책에서 저자 역시 현대사회의 문제는 스스로를 부양하는 능력을 갖추는 '자립'과 타인과 분리되어 사는 '고립'을 혼동하는 데에서 온다고 지적한다. 혼자 밥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놀 수는 있어도 혼자서 사는 사람은 없다. 이를 착각하고 마치 혼자서 살 수 있는 양 타인을 무시하고 공동체의 힘을 간과한다면 더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인문사회 비평가의 글이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엮어서인지 의외로 읽기가 수월했다. 맨처음에 나오는 '남자는 어떻게 하면 넘어오는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이 그렇고(남자 마음의 급소를 지르는 법이 궁금하다면 반드시 읽어볼 것!), 일본의 패션잡지 '캔캠(CanCam)'의 인기 요인을 분석한 '인기 짱 일본'이라는 글도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캔캠은 '한 사람의 남자에게 사랑받는 전략'이 아닌 친구, 학교 선후배, 직장 상사 및 동료 등 '모두에게 조금씩 사랑받는 전략'을 제시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때 캔캠을 애독했던 독자로서(지금은 캔캠의 언니뻘인 아네캔을 애독중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예쁘지만 튀지 않고, 무난하지만 멋부린 스타일을 누가 싫어할까. 그런 애매모호함이 인기의 요인이었다니 신기하다.

 


마냥 읽기 쉬운 글만 있는 건 아니다. 캔캠의 인기 요인을 분석한 '인기 짱 일본'이라는 글만 해도 끝에는 '일본인은 '러블리'에 의해 리스크를 회피하고 있다'(p.46)며 일본의 대외전략을 비판하고, '주제를 알라'라는 글에서는 '1억3천만 명의 일본 국민을 '연봉'만을 기준으로 일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다수자가 되었다'(p.196)며 일본 사회의 획일화된 분위기를 지적했다. 어디 그뿐인가. <젊은이는 왜 3년 만에 직장을 때려치우는가?>라는 책에 대해 '우리는 과연 일을 함으로써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라는 기본적인 물음이 없고, '인간은 결국 돈을 원하는 거잖아요'라는 인간관이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는 젊은이'를 재생산한다(p.82), 일할 의욕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구직 동기'와 '노동 동기'는 별개의 것'(p.101)이라고 비판하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속이 다 시원했다.



가벼운 글에서도 이런 대단한 통찰과 꼿꼿한 정신이 느껴지는 점이 멋지다. 그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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