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 이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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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융 심리분석 전문가 클라리사 에스테스가 쓴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세계 각국의 신화와 민담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여성의 잠재된 본능을 설명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선생님이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언급하고 추천하셔서 알게 되었는데, 읽어보니 역시 좋았다. 오래 전부터 설화나 민담 연구라든지 신화학, 문화인류학 등에 관심이 있었고, 여성학에도 관심이 있고, 최근 몇 년 동안 심리학, 정신분석학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그 모든 독서와 공부와 배움이 이 책 한 권으로 정리가 되는 듯 했다.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빨간 구두>, <미운 오리 새끼> 등 잘 알려진 동화들을 여성학,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부분만 읽어도 참 재미있다. 물론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도 깊다.



나는 오랫동안 여성을 뜻하는 영단어 'woman'이 자궁을 뜻하는 영단어 'womb'과 'man'의 합성어인 줄 알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womb'이 아니라 'woe', 즉 늑대(wolf)의 옛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원초적인 여성성의 기저에는 야성의 늑대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실제로 세계 각국의 민담이나 신화, 전설 등을 찾아보면 늑대가 등장하는 것이 많고 대부분이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암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 또한 여성과 늑대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과 가부장제, 근대화 등으로 인해 늑대 같은 야성적 자아는 제거되고 여성은 오로지 어머니, 성모, 천사 같은 포장된 이미지를 강요받게 되었다. 그 결과 여성은 내면의 야성적인 자아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압하며 심리적인 압박과 공황 상태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이를 깨닫고 자신의 늑대, 즉 야성적 자아를 회복한다면 여성은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늑대가 상징하는 야성적 자아를 심리학에서는 '아니무스'라고 표현한다.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남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아니무스와 여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아니마가 공존하며, 두 가지를 균형있게 발전시킬 때 비로소 성숙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동화나 민담에서는 아니무스를 늑대, 아버지, 오빠, 왕자 등 다양한 동물이나 남성 캐릭터로 표현한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천대받던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든지, 심부름 가던 빨간모자가 숲속에서 늑대를 만나 위험에 빠졌다는 등의 이야기도 원래 여성 내면의 다양한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는 단군신화나 삼국유사의 일화들이 사실은 고도의 상징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야성성을 개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저자는 야성성과 직결되는 창의성과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내면의 늑대에게 삶을 불어넣으라고 충고한다. 삶의 반대말인 죽음은 단지 신체의 기능이 정지하고 목숨이 꺼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꿈이나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고 마음먹었던 계획을 이루지 않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 또한 죽음이다(그렇다면 나는 이제까지 몇 천 번은 죽었다 깨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꿈과 계획이라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산다면 내면의 늑대는 삶을 이어갈 생명력을 얻어 활발히 움직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클린턴, 레이디 가가 등처럼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한 여걸들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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