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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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는 내게 일본 소설의 매력을 처음 알려준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직 어렵고, 에쿠니 가오리는 심심했던 중학생 시절, 요시모토 바나나의 <암리타>와 <키친> 두 작품을 읽고 나는 일본 소설에 푹 빠졌다(추성훈의 딸 사랑이의 귀여운 헤어 스타일의 모델이 된 나라 요시토모의 귀여운 그림이 삽입된 표지도 한몫했다 ^^). 그러나 그것도 한때였고 성인이 된 후로는 그녀의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는데, 다른 소설을 읽기에 바빴던 탓이 가장 크지만, 늘 비슷비슷한 소재와 줄거리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한 탓도 있다. 그러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신작 <도토리 자매>를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좋았다. 극단적인 캐릭터와 짜릿한 반전이 정신없이 나오는 이야기들만 읽다가 오랜만에 말간 우유처럼 심심한 맛의 소설을 읽으니 오히려 더욱 담백하고 달콤했달까. 내가 읽지 않은 이전 소설들도 다시 찾아 읽어볼까 싶다.



주인공은 돈코와 구리코 자매. 두 사람의 이름 앞자를 합치면 '돈구리(일본어로 도토리라는 뜻)'다. 자매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오로지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살았다. 몇 년 동안 간호를 하며 모시던 친척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매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토리 자매'라는 필명으로 외로운 사람들이 보내오는 메일에 답장을 보내는 일을 하기로 한다. 돈도 명예도 주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자매는 답장을 쓰면서 그동안 마음 속 한 구석에 쌓아두고 돌보지 않았던 감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며 행복을 되찾는다. '자매' 코드에 끌려서 읽기도 했지만 돈코와 구리코, 두 자매의 모습이 어찌나 나와 내 여동생같던지, 읽으면서 공감한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절친한 언니가 한 명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 잘 아는가 보다. 서로에게만 의지하면서 사는 자매의 마음을. <겨울왕국>을 볼 때도 부모 없이 세상에 단 둘이 남겨져 두 손 꼭 붙잡고 사는 자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이 소설에도 비슷한 감정이 들게 하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 소설에는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 아주 많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류 팬인가 싶어 검색해 보니 이승기를 모델로 한 연애 소설을 앙앙에 연재한 적도 있다고 한다.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보고 이승기의 광팬이 되었다고. 내 추억 속에서 요시모토 바나나는 짧은 머리에 무표정한 젊은 일본 여자의 느낌인데, 어느새 뉴스에서 자주 보는 한류팬 일본 아주머니가 다 되었나 보다 ^^. 그러면 어떠랴. 나는 오히려 한살 한살 나이 들어가며 변화해가는 작가의 모습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서 좋았다. 이승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면 다음 소설은 달달한 연애 소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중년의 여성과 젊은 남성이 비밀스런 사랑을 나누는 <밀회>같은 소설?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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