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애청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진행자 이동진 님과 소설가 김중혁 님이 강력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책 고르는 안목이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동진 님과 웬만한 책은 칭찬도 안 하시는 김중혁 님이 입을 모아 추천하신 걸까 궁금했는데 다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느꼈다. '아, 나는 앞으로 이 두 분을 계속 따라가야겠구나.' 소설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는 이전까지 이언 매큐언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은 물론 <속죄>라는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으며, <어톤먼트>라는 영화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속죄>가 원작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볼 생각도 없었다.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오로지 빨책덕분이니 앞으로 두 분이 강력 추천하시는 책은 무조건 읽어야지.

 

 

소설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 글쓰기를 좋아하는 열세 살 소녀 브리오니는 사촌들과의 연극 연습이 잘 되지 않아 우울해 하며 창밖을 보다가 우연히 이제 막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언니 세실리아가 속옷 차림으로 정원의 분수대에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다. 세실리아의 곁에는 자매의 어릴 적 친구이자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가 있었는데, 어린 브리오니의 눈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우연히 사촌 롤라가 강간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유일한 목격자인 브리오니는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는 빨책에서도 소개가 된 바 있으며, 이 부분이 생각보다 길어서 읽는 동안 내내 빨책에서 스포일러를 너무 많이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끝까지 읽어보니 이 정도는 스포일러도 아니었다. 그만큼 반전이 기가 막힌다!

 

 

소설의 모든 부분이 인상 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좋았던 대목을 두 군데 들어보자면, 첫째는 세실리아와 로비가 모든 것을 잃고 사랑만을 지키며 살아갔던 나날들에 대한 부분이다. 부잣집 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세실리아와 케임브리지 출신 의사 지망생 로비는 우연한 일로 화려한 배경과 전도유망한 장래 등 모든 것을 잃고, 궂은 일을 마다 않는 간호사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의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물론 비극이지만, 그들에게는 돈과 명예로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바로 그것, 사랑이 있었다. 비록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을 찾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구원받은 것이 아닐까. 온몸이 부서질 듯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둘째는 세실리아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로비와 몇 년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던 부분이다. 세실리아의 어머니는 남들은 심심풀이로나 읽는 문학을 딸이 대학에서 비싼 등록금 내며 전공한 것을 늘 못마땅해 했다. 대체 뭐에 써먹느냐며 말이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죄수의 몸이라서 평범하게 글을 쓸 수 없는 로비를 위해 대학에서 공부한 문학 작품들을 편지에 인용해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대체 어떤 학문이 이보다 더 큰 효용이 있을까. <속죄>는 브리오니라는 소녀와 세실리아, 로비라는 두 연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문학과 소설가의 역할에 대해 묻는 소설이기도 한데, 후자에 대해서는 주로 후반부에 많이 서술되어 있지만, 나는 특히 이 대목에서 문학의 효용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여러가지 면에서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연상케 했다. 같은 영국 소설이고, 두 작가 모두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두 소설 모두 반전을 통해 기억과 용서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는 <속죄>가 더 재미있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알고 난 이상 다시 읽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는데, <속죄>는 읽는 동안엔 속도감 있는 전개에 휩쓸려 다시 읽을 생각으로 빨리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가슴이 아파서 차마 다시 읽기 힘들 것 같으면서도 처음부터 줄거리를 확인하면서 읽고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다시 읽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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