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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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고 처음으로 '이래서 보통, 보통 하는구나' 싶었다. 줄거리 자체는 통속적인 연애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런던 소재의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이십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 앨리스는 솔로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친구의 결혼식 파티에서 에릭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직업도 좋고 외모와 매너까지 근사한 그와 연인이 된 그녀. 하지만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듯, 좋았던 첫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변한다. 에릭에게서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던 앨리스 앞에 급기야 필립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현 남친 에릭과 새로운 썸남 필립 사이에서 갈등하는 앨리스. 어떤가. 이제까지 드라마나 만화에서 수십, 수백번은 본 패턴이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가 어찌나 내 이야기같고 흥미진진했는지 모른다. 나름 괜찮은 외모와 스펙을 지닌 여자가 왜 스스로를 비하하는지, 연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여자가 어떻게 사랑에 마음의 문을 여는지, 처음에는 매력으로 다가오던 그의 장점들이 언제부터 참을 수 없는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는지, 연인의 무시와 짜증을 어떻게 견디며 언제부터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이별을 준비하는지 등등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연애의 장면들이 책을 읽는 동안 퐁퐁 떠올랐다. 에릭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앨리스가, 사실은 에릭이라는 한 남자가 아닌 그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감정 상태를 사랑했음을 깨달았을 때는 나도 눈물이 났다. 너에게만은 내주리라고 믿었던 나를 실제로는 내주지 않았음을 알 때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을 깨닫고 얼마나 비참해지는가. 보통의 인간들이 하는 보통의 연애, 보통의 사랑이 이 소설에는 있다.

 

 

감정을 먼저 이끌어낸 사람이 그 감정에 걸맞게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에릭은 단순히, 그를 만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존재했던,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의 촉매제 아니었을까?

그녀의 사랑은 그 남자와 함께 자리 잡았지만, 그것이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그 남자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그저 결실을 맺지 못한 약속이 아니었을까? (p.384)

 

 

줄거리가 보통이라면 형식은 보통이 아니다. 이 소설은, 흔히 소설 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형식이 아니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저자의 해설이 첨언되어 있다. 연애라는 보편적인 행위와 사랑이라는 감정이 학문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 아니라, 이토록 매끄럽게 소설로 녹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래서 보통, 보통 하는구나! 무래도 알랭 드 보통에게 깊게 빠져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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