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의 천국 - 국가 부도와 론스타 게이트
이정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디어오늘 대표이사 이정환의 책 <투기자본의 천국>이 1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재출간 되었다. 이 책은 2006년 첫 출간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의 필독서로 불렸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누군가가 1쇄를 모두 쓸어갔고 소량으로 찍은 2쇄도 일찌감치 팔린 뒤 절판되었다. 책을 재출간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아 추가 수정을 거듭하는 동안 책의 90퍼센트 분량이 다시 쓰였다. 예전에 읽었든 안 읽었든 간에 이 책을 새로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 


이 책은 20년 가까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IMF 외환위기의 망령의 실체를 철저하게 기록하고 고발한다. 외환위기 전후의 주요 사건 일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1997년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쌍방울, 해태, 뉴코아 등 대형 기업들이 줄지어 부도를 내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환율이 치솟자 김영삼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998년 금융기관 구조개혁 조처가 시행되면서 제일은행, 한미은행, 외환은행 등이 매각 대상에 올랐다. 이때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가 나타나 외환은행을 인수했고, 은행 운영이 정상화되고 기업 가치가 급등하자 매각을 결정했다. 론스타가 '먹튀'를 하려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의 소송전이 벌어졌고, 결과는 사실상 론스타의 완승으로 끝났다. ​ 


이미 종결된 론스타 게이트를 지금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론스타 게이트는 한국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환수, 국부 유출의 역사, 그 과정에서 유사 로비스트 집단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역할, 정부 관료들의 회전문 현상, 투자자 - 국가 간 소송(ISD)과 글로벌 투기자본의 역학관계 등이 집약된 문제다. 이 문제들은 론스타 게이트가 종결된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고, 어쩌면 예전보다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듣는 '검은 머리 외국인'과 '내부의 적' 문제는 론스타 게이트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 


저자는 론스타가 나쁜 게 아니라 출처 불명의 사모펀드에 은행 인수를 승인한 한국의 감독 당국이 나쁘다고 말한다. 한국의 은행법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론스타가 불법적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만 봐도 론스타 게이트의 출발이 한국의 감독 당국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정부 관계자들을 '모피아'라고 일컫는다. 저자는 당시 활약했던 모피아 그룹의 핵심으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헌재를 비롯해 변양호, 이영회, 진념, 박병무 등을 거론한다. 주목할 것은 이들 대부분이 (한국에선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로비스트 역할을 수행하는) 유사 로비스트 집단 김앤장법률사무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


이 밖에도 약탈적 투기자본과 정부 관료 및 모피아의 실체를 고발하는 이야기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내용이 쉽지 않고 분량이 제법 많은데도(564쪽)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끝까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워낙 놀라웠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국가 시스템이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중심에 정부 관료들이 있었고 그 배후에 김앤장법률사무소 같은 유사 로비스트 집단이 있은 줄은 몰랐다. 요즘도 뉴스를 통해 심심찮게 그 이름을 듣는 김앤장법률사무소는 대체 어떤 일을 벌여온 걸까. 그 중심엔 어떤 이들이 있는 걸까. 알수록 무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