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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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재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읽은 건, 이 작품이 프랑스 문단과 영국 추리작가 협회의 인정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영국, 순수 문학과 장르 문학이 입을 모아 극찬한 작품은 대체 어떨까. 읽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소설의 배경은 1999년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 이혼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년 앙투안은 남달리 잘하는 것도 없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 앙투안의 유일한 낙은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있는 동안 집 근처 숲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에 아지트로 쓸 집을 짓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재료를 구해다가 열심히 지은 아지트에 찾아오는 손님은 옆집 소년 레미와 그가 기르는 개 윌리스뿐.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아저씨, 즉 레미의 아버지가 윌리스를 총으로 쏴서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상심한 앙투안은 레미에게 이를 따지다 실수로 레미를 죽이게 된다. 당황한 앙투안은 레미의 시체를 숲에 숨기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한다. 


12년의 시간이 흐르고, 앙투안은 의사가 되어 파리에서 살고 있다. 아리따운 애인도 있고 의사로서 장래도 촉망받지만, 정작 앙투안 자신은 레미를 죽인 이후로 자신의 삶이 크게 어긋났다고 느끼고 있다. 뭘 해도 만족스럽지 않고, 언제 어디서 자신의 범죄 사실이 들통날지 몰라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얼마 후 앙투안의 불안은 사실로 드러난다. 앙투안은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어왔지만,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앙투안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범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들의 선의가 자신을 여태껏 살게 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앙투안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다.


이 소설은 '문학성 넘치는 스릴러'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지 않게 스릴러 소설로서도 훌륭하고 문학성으로만 따져도 뛰어나다. 죄를 짓고도 들키지 않았다고 믿는 앙투안과 이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어른들의 관계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오만하게 행동하는 인간과 이를 굽어보는 신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앙투안은 자신의 운명이 가혹하다 여기고 끊임없이 닥치는 시련을 불쾌하게 여기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이는 모두 앙투안이 스스로 지은 죄의 결과일 뿐이다. 어쩌면 신이 보기에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만한 통찰을 담고 있는 스릴러 소설은 쉽게 찾아볼 수 없기에 프랑스와 영국이 입을 모아 이 작품을 극찬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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