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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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었어, 누굴 사랑하는 법"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유채영의 <이모션>에 나오는 가사다. 오랫동안 기억 저편에 있었던 이 노래를 소환한 건 순전히 박상영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때문이다. 한국 문학계에서 보기 힘든 퀴어 문학인 데다가, 퀴어 문학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기에 호기심이 동해 읽기 시작한 이 책. 웃겨도 너무 웃기다. 슬퍼도 너무 슬프다. 


이 책에는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조의 방>, <햄릿 어떠세요?>, <세라믹> 등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 나를 가장 많이 웃긴 작품은 표제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이다. '세상에 없는 퀴어 영화'를 만들겠다고 자이툰 부대 파병을 자원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왕샤'와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귀국 후에도 변변찮은 삶을 이어나가는 '나'의 모습은 대체로 슬펐지만 이따금 웃겼다. 길 위에 널브러져 울고 있는 왕샤를 웃겨보겠다고 휴대폰으로 유채영의 <이모션>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나'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화자가 여성인 소설들도 좋았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부산국제영화제>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관계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서 주인공 '나'의 밉살스러운 여자친구로 그려지는 '소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갑갑한 일상과 어두운 내면을 드러낸다. <햄릿 어떠세요?>는 걸그룹 데뷔에 실패하고 대학에 다니는 아이돌 연습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까스로 인맥을 통해 아이돌 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지만, 이십 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장수생', '이모', '아줌마', '할머니' 소리를 들으며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탈락한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중심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출연자가 아니라 구석에서 탈락이 되지 않기만을 기원하는 출연자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 좋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나'가 나란 사람의 전부가 아니기에 일부러 더 즐거운 나, 행복한 나를 연기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린 것도 좋다. 우는 사람, 아픈 사람, 실패한 사람, 소외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면, 박상영 작가는 제 역할을 다하는 소설을 쓰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춘 작가 같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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