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미혼'과 '비혼'은 어떻게 다를까. 남교사라는 말은 없고 여교사라는 말만 있는 이유는 뭘까. 우리말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보고 잘못된 표현은 바로잡는 책 <언어의 줄다리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을 쓴 저자 신지영은 고려대학교와 런던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표현이 어떻게 우리의 의식을 장악하고 이데올로기를 지배하는지 소개한다. 알다시피 언어는 언어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언어 사용자는 그 사회적 약속을 배우고 따라 해야만 언어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언어 표현과 함께 학습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언어는 가히 '관습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언어공동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언어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도 꾸준히 변한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변화하면 기존의 언어 표현으로는 변화한 환경이나 생각을 더 이상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즉 기존의 언어공동체가 가르쳐준 대로 무조건 따라 했던 표현들이 더 이상 내가 믿고 추구하는 생각을 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언어 표현이 담고 있는 낡은 가치와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담은 새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상과 가치관을 담지 못하는 잘못된 언어표현의 예로 대통령 각하, 쓰레기 분리수거, 미혼, 미망인, 여교사 등을 제시한다. 지금도 심심찮게 논란이 되는 표현인 '각하'는 '폐하', '전하', '저하', '합하' 등과 함께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경칭 중 하나였다. 왕조 시대의 유물이 고착된 건 경술국치(1910) 이후다. 조선은 일본 왕이 파견한 조선총독의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조선총독에 해당하는 경칭이 각하였기 때문에 각하가 조선에서 가장 높은 경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남았다. 즉, 각하라는 표현은 왕조시대와 일제 강점기로부터 전해진 악습인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관(官)의 관점만 반영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주민들이 쓰레기를 배출할 때 분리해서 배출한다는 뜻을 표현하려면 분리'수거'가 아니라 분리'배출'이라고 정정하는 것이 맞다. 혼인 상태를 미혼 또는 기혼으로 표기하는 것도 잘못이다. 이 분류법은 기혼도 아니고 미혼도 아닌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결혼을 했었는데 현재는 결혼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미혼이라고 칭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혼이라고 칭해야 하는가. 


여교사, 여검사, 여의사, 여고생, 여중생처럼 여성의 경우에만 성별을 특정하는 언어표현도 잘못이다. 수많은 언론 보도에서 해당 인물의 성별이 남성인 경우에는 따로 성별을 표기하지 않는 반면, 여성인 경우에만 따로 성별을 표기한다. 청소년이나 청년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이나 청년 같은 표현은 성별을 특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페르소나를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로 인해 청소년 문제, 청년 문제를 다룰 때 여성 청소년, 여성 청년의 문제는 배제되기 일쑤다. 


저자는 이 밖에도 한국어의 표현과 관련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룬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올바른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