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사소했던 일 VivaVivo (비바비보) 37
왕수펀 지음, 조윤진 옮김 / 뜨인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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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 수많은 지옥을 경험한다. 첫 번째 지옥은 대체로 가정일 것이고, 두 번째 지옥은 대체로 학교일 것이다. 대만 작가 왕수펀이 쓴 <처음엔 사소했던 일>은 평범한 교실이 서로 의심하고 싸우는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월요일 오전, 중학교 1학년 1반 교실. 린샤오치는 금색 볼펜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없어진 볼펜은 같은 반 천융허의 필통에서 발견된다. 이때만 해도 몇 명만 천융허를 의심하고, 다수는 사소한 일이라고, 실수이거나 오해일 거라고 웃으며 넘긴다. 


그런데 얼마 후 급식비, 회식비, 버스카드, 학급비가 차례로 사라진다. 아이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말은 안 해도 천융허가 범인이라고 믿는 눈치다. 이 사건이 학부모들에게 알려지면서 결국 담임인 왕 선생님은 학급 회의를 연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천융허가 범인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왕 선생님은 아무 증거 없이 같은 반 친구를 도둑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한다. 그렇게 진짜 범인을 찾지 못한 채 학급 회의가 끝나자 아이들은 이제 천융허를 대놓고 따돌리기 시작한다. 천융허는 천융허대로 반격을 시작한다. 


소설은 이후 린샤오치, 리빙쉰, 차이리리, 장페이페이, 저우유춘, 뤄추안, 왕 선생님, 천융허 등 사건 관련자들의 사연을 하나씩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이제까지 일어난 도난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왜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했는지 그 진실이 밝혀진다.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결코 사소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부모의 무관심 또는 지나친 간섭, 가정 내 불화와 폭력, 빈부 격차, 아이들 간의 질투와 경쟁심, 허세와 열등감 등이 뒤엉켜 발생한 사건임을 독자는 알게 된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학교뿐 아니라 어느 조직, 어느 집단에서든 일어날 법한 일, 존재할 법한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일 있지', '이런 사람 꼭 있어'라며 공감한 대목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 괴물이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지를 너무 잘 표현했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처럼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지만 연상되는 면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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