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 우리가 사랑한 물건들로 본 한국인의 자화상
조현신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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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동차, 소주, 담배, 전화기, 간판 그리고 심지어 과자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쏟아지는 다방면의 신제품들은 무엇보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시선을 끈다. 다른 것들과 차별화되고 선망받기 위해 실험적인 디자인도 서슴지 않으며, 때로는 뜬금없이 외국이나 과거의 전통을 소환하기도 하는 등 일견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는 외피를 두르곤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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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 혼란상에서도 거시적인 트렌드를 찾아내는 게 소위 디자인문화사의 관점. 조선말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경제발전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품들의 디자인에는 대중이 공유하는 무의식과 시대적 과제를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소주와 담배 라벨의 변천을 통해 미적 감각과 농촌 고향에 대한 태도 병화를 읽어내는가 하면, 일제강점기의 초등 국어교과서가 '소' 그림으로 시작하는 데에서 피지배민에게 주어진 덕목을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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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게 다가오는 대목은 디자인 원천으로서 한국의 전통이 얼마나 부박한지, 그리고 여전히 고유의 미감과 디자인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복적인 사례들이다. 망국의 책임을 진 조선조 지배계층의 문화를 뒷전으로 밀쳐둔 것은 십분 이해할 일이라도 여전히 소심하게 서양과 일본의 디자인을 카피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저자의 안타까움이 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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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일간지에 연재하던 글들을 모은 책이라 다소 결론이 흐릿하고 희망섞인 전망으로 마무리지어진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그렇지만 누가 한국의 디자인이 앞으로 어떤 길을 향하리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지금껏 그랬듯 개별 상품들의 치열한 각개전투 속에서 사후적으로 당대의 무의식과 시대과제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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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사실 하나,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발효과자 맛동산은 반죽 상태로 이틀동안 국악을 듣고 만들어진다나. 누군가가 팩트 체크를 다시 해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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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일본의 맛 - 영국 요리 작가의 유머러스한 미각 탐험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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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이해하는데 빠질 수 없는 그것, 음식이다. 어떤 음식들이 진화해 왔고 그를 둘러싼 문화가 정교해졌는지, 어떤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제약이 진화의 방향을 구속했는지를 따지다 보면 생각보다 깊이 그 나라를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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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서 후쿠오카까지, 간사이에서 간토까지 종횡으로 일본의 식문화를 천착한 저자를 따라 두리번거리다 보니 의외로 남는 것들이 많다. 일본에 대해, 일본의 음식들에 대해. 일본 여행과 하다못해 일본 음식에 대한 뽐뿌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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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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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약간의 시니컬함과 상당량의 유머러스함이 느껴진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북유럽 국가들에 대해 외부에서 알고 있는 것들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지 않은가. 소득수준, 복지제도와 교육제도, 잘 통합된 세런된 사회까지 가히 신비로운 나라들. 모두가 원하는 부분만 뜯어서 인용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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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작가는 북유럽 5개국을 하나하나 차근히 돌아본다. 도시와 시골의 풍광을 고루 돌아보는데 그치지 않고, 그 나라들의 기원과 근대사, 경제와 정치적 풍경까지 종횡하며 살핀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가 분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얽히며 지역을 만들어온 맥락도 조금은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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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더해서 각각의 나라 역시 나름의 한계와 도전에 봉착해 있음도 보인다. 유럽, 그리고 이제 한국도 살짝 맛보기 시작한 이민자 문제를 비롯해 인구고령화와 재정비가 필요한 복지제도, 사민주의라 통칭되던 정치이념까지. 사실 그게 정상이다. 아무래도 거기 역시 사람사는 곳이니, 조금 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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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책을 보면서 한번 꼭 직접 가서 보고 싶어진다. 이러저러한 가이드북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여행 뽐뿌질을 하는 이런 책을 쓰다니. 북유럽 국가들의 매력에 더해 작가의 찰진 글맛과 유머러스한 표현의 힘이 컸다. 작가의 다른 책을 바로 구매한 아내의 감식안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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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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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중반 미국, 남북전쟁의 명분과 결과를 단순히 노예 해방이란 말로 퉁치기는 어렵다. 황무지를 개발하고 공장에서 기계를 돌릴 대량의 임금노동자를 필요로 하던 북부 사람들과 소규모 농장 단위의 노동집단을 경영하던 남부 사람들간의 사고방식, 생활방식과 자연관이 경합한 사건이란 게 맞을 거다. 흑인노예의 해방은 그저 농장에서 공장으로의 이전에 불과했달 수도 있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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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는 무려 사람의 이름이 붙은 노회한 곰 '올드벤'을 쫓는 소년의 성장기, 그리고 삼대에 걸친 그의 가정사를 통해 남부의 삶과 변화하는 모습을 남부의 시각으로 담담히 보여준다.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곰사냥이 사실 눈앞에 곰을 쏘지도 못할만큼 대자연에 대한 압도감과 경외감을 깨우치는 경험이라면, 흑인을 사고팔며 수탈해온 가족사를 직시하는 건 신을 따르는 삶에 대한 반성과 고심의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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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한대목처럼 남부인들이 전쟁에 나선 건 자신들이 정의롭다거나 흑인노예가 정당하다고 생각해서만은 아닐 거다. 그저 '옛날부터 사람들이 항상 전쟁에서 싸우고 죽고 해왔던 이유', 현상유지를 위해서라거나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는 등등의 목적을 내세웠을 뿐. 남부고 북부고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 와중에 반성하고 성찰하는 삶, 타인과 자연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숙고였을 터. 소년이 택한 답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절제하는 삶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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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너의 책들을 휴가때 바리바리 챙겨간 건 전적으로 영화 '버닝' 덕분, 소년의 성장 혹은 변이와 세상의 변화를 한데 엮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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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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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감각적이다. 자해하며 피부를 베어내고 피를 흘리는 묘사, 사랑하는 누군가를 구타하고 무릎꿇리려는 마음에 대한 묘사, 그리고 타인의 애정행위를 관음하는 마음에 대한 묘사까지, 중간에 책장을 덮고 한숨돌려야 할 만큼 찌릿거린다.

어머니에게 억압당한 채 그녀가 생각하는 음악의 성스러움에 봉헌된 딸이 있다. 음악의 도시 빈에서 음악가로는 실패한 채 교육자로 어머니와의 삶을 이어가는 딸. 음악에는 속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남자를 포함한 바깥세계에도 섞이고 싶지만, 이미 삼십오육년째 어미가 구축한 세계 속에서 둘만의 애증을 키워왔다.

옷차림과 외출시간까지 속속들이 구속하는 삶의 유이한 일탈은 자해와 관음이다. 빨래집게와 바늘과 면도칼로 본인의 몸을 빼곡하게 어루만지며 황홀경에 빠진다. 매춘부에게 돈을 지불하고 몸을 관람하거나 타인의 섹스를 훔쳐보는 행위는 굉장히 건조하고 무미하게 묘사되는데, 어떤 식으로던 타인과의 교감과 타인으로부터의 행복감을 좇아보려는 헛된 시도처럼 읽힌다. (딸-어머니 간의 완결적인 관계에서 자기 안의 남성성을 불러일으키려는 계속된 실패로 읽는 해석도 있더라만)

거기에 학생이 등장한다. 이 병들고 불감인 음악강사에 대한 환상과 열정을 품은 그는 아직 어리고 경험도 적다. 여자는 꾸준하고도 천천히 남자를 시험하고 탐구한 끝에 사랑을 주기로 결심한 반면, 남자는 소유욕과 뒤섞인 과한 열정과 함께 증오를 키워오고 있었던 것. 사도마조히즘의 관계를 빌려 사랑을 요구하는 그녀에게 끝내 폭발하는 그, 그리고 버림받은 그녀의 자해와 서늘한 결말까지.

사랑은 끝내 소유욕의 다른 이름인 걸까, 아니면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마음일까. 여하간 살면서 삐뚤어지고 구김살이 생긴 사람이, 나 자신에 대한 지배력을 확인하며 얻는 행복감이 꼭 필요하다면 기꺼이 외견상 가학적으로 보이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아무런 주고받음도 없이 고통-쾌감을 위한 도구로서만 쓰인다는 건 또 얼마나 외로울까.

책의 어느 부분에 집중해서 읽냐에 따라 그야말로 백가지의 감상이 가능할 것 같은 소설. 치밀하고 도저한 심리묘사, 애정과 복종, 무책임과 방관의 즐거움, 사랑과 섹스에 대한 페미니즘적 전복들, 사도마조히즘의 다이나믹..지금 이토록 생생한 질퍽한 느낌이 가물거릴 때쯤 다시 한번 꼭 읽고 싶어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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