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 실리콘밸리 구루가 말하는 사회관계망 시대의 지적 무기
재런 러니어 지음, 신동숙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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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개보다 매력적인 이유, 행동을 예측하거나 길들이기, 조종하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크지 않을까. 저자는 책에서 줄곧 고양이의 비유를 들어 소셜미디어 사용자를 부추긴다. 고양이가 되라고. 나 역시 구글에서 일할 때 가장 꺼림직하던 부분 중 하나는 모든 사용자를 잠재적 소비자로 상정한 채, 광고주를 위해 잘 길들여진 상품으로 팔고 있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건 데이터 기반 마케팅이라거나 잠재고객 타겟팅이란 등의 세련된 단어로 표현되었지만 그 단어들은 언제나 광고주들을 향해 구애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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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페이스북 마케팅을 통해 영향을 미쳤던 일은 뚜렷한 분기점을 만들었다. 사실 개인정보 기반의 타겟팅이란 그 합법성 여부는 차치하고 기술적으로는 전혀 새롭지 않은 마케팅 방식이었던지라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이전 선정적인 음모론이나 기술거부 조류와는 차원이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 최근 페북 창업자 중 한명이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이나 이 책의 저자인 '가상현실의 아버지' 재런 러니어 역시 줄곧 해당 사건을 환기하고 있는 점에서 그 충격을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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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저자는 도 아니면 모 식의 접근을 하진 않는다. 소셜미디어는 담배처럼 백해무익한 무언가가 아니라 '납성분이 든 페인트'처럼 잘 개선해서 쓸 수 있는 거란 입장이다. 요컨대, 문제는 그들의 기술이 아니라 사업방식이다. 관심 유발과 '좋아요', 팔로워수만이 유통되는 세계에서는 점점 부작용이 만연할 수 밖에 없으니 아예 플랫폼 자체 사용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바꾸잔 거다. 플랫폼을 독점해 지대를 추구하는 소위 '공유 경제'의 민낯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매우 적실한 포인트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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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의 폐해 10가지를 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고양이가 아닌 개가 되고 있다는 점일 거다. 잠재고객으로 예측이나 타겟팅의 대상이 되는 걸 넘어 행동 자체를 암암리에 수정당하는 것. 공짜로 즐긴다 생각하는 플랫폼 서비스에서 팔려나가는 건 사실 개별 유저들의 데이터, 그에 맞도록 커스텀된 콘텐트가 각기 주어지면서 사회적으로 공유가능한 맥락이 끊기고 경험이 파편화되는 현상은 이미 한국에도 도래했다. 자극적인 언사만 횡행하는 댓글창과 유튜브는 그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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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업에 계속 몸담은 입장에서 매우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몇가지 아쉬움도 보인다. 1) 저자는 소셜미디어의 문제라 말하지만, 페북을 제외한 구글이나 여타 IT기업들을 묶는 다른 단어가 필요해 보인다. 플랫폼을 공짜로 제공하되 광고수익에만 기댄다는 점에서 차라리 디지털광고기업이라고 하던가.(이 경우 우버 같은 '공유경제' 플랫폼들이 제외되는 한계가..) 2) 이미 형성된 산업생태계를 어떻게 바꾸잔 건지, 그저 우리 모두 할 몫이다 따위 마무리는 너무 나이브하다. 이미 일국 차원의 제재가 어려울 정도로 커버린 기업들인데 좀더 구체적인 경로가 필요해 보인다. '노동으로서의 데이터(data as a labor)'란 개념은 매혹적이지만. 마지막으로, 제목이 대체 왜...원서 제목이 문제다. 이런 좋은 내용을 왜 'x가지 이유' 따위로 담았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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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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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이 찰떡같이 뒤섞이는 배경 앞에서 시니컬하거나 천연덕스러운 유머가 번뜩인다. 한편씩 아껴읽을 만큼 여운이 짙고 농밀한 단편이란 점에선 레이먼드 카버가 떠오르는가 하면,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어느결엔가 진지하게 스며든다는 점에선 보르헤스가 떠오르니 원플러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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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산책 (봄꽃 에디션 한정 판매) -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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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제 포트메리온 접시엔 왜 그렇게도 식물이 많이 그려져 있는지 궁금했더랬다. 게다가 요새 유행처럼 번지는 실내 장식그림엔 또 왜 그렇게도 풀떼기가 많이 그려져 있는지. 내눈엔 딱히 이쁘지도 않고 맥락없던 그림들이었다. 그런 그림들은 다소 상품화되긴 했다지만 기본적으로 식물세밀화에서 뻗어나간 것들이란다.

사진이나 영상이 주가 된 요즘 세상에도 여전히 식물 연구에 있어서 그림으로 된 묘사가 필요하단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또 다소 유쾌하기도 했다. 개체 단위의 특이성이나 개성을 지우고 종 단위의 보편성, 일반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한 작업이란 얘기다. 게다가, 씨앗에서부터 자라나 열매에 이르는 오랜 과정을 한장에 담기 위해서도 그림이 우월한 영역이 있었다.

영국이나 일본이 오랜 역사를 가진 식물애호국임을 알게 되고, 수백년이 넘은 아름드리 나무가 즐비한 정원이나 수목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이 책의 또다른 덕목. 저자를 따라 알게 된 양치식물이니 공중식물이니, 소담한 자생식물들을 찾아보며 걷고 싶은 곳들이 생겼다. 그리고 두리안을 그린 세밀화를 갖고 싶어졌다. 두리안의 전생애를 포착하고 대표적인 특성을 잘 드러낸 세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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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본질 -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그레이엄 앨리슨.필립 젤리코 지음, 김태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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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본질 #그레이엄앨리슨 #쿠바 #국제정치 #책스타그램

인류가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때인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기지 사태를 두고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한 미국과 소련은 어쩌다 그런 사태를 맞이했고, 어떻게 겨우 모면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차원에서의 수많은 해석과 설들이 가능하겠지만, 이들을 가능한 정돈된 프레임으로 묶어보기 전까진 그저 혼란스럽고 서로 충돌하는 이야기일 뿐이겠다. 어떤 안경을 쓰고 읽어내느냐에 따라 초점과 해석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제대로 된 안경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이미 1971년에 이를 위한 통합적인 프레임, 세가지 안경을 제시한다.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된 단일 국가 차원, 루틴하게 돌아가는 정부 조직 차원, 그리고 정부 내 특정 인물들의 개성을 포함한 정치 차원의 세 분석 차원이 그것. 당시 소련의 자료는 고사하고 미국 정부자료가 공개되기도 이전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정말 훌륭한 구조를 입도선매해둔 셈이다. 덕분에 우리는 미국과 소련, 미국 내 국무부와 국방부, 그리고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레벨에서 개인의 감정적 성향이나 실수까지 포함하여 사건 전후의 인과관계를 촘촘하고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비단 쿠바 사태만에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북한 문제, 북미 관계 혹은 최근의 한일 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접근해 볼 수 있겠다. 탈냉전 이후 폭넓은 맥락이나 경향성으로 보아 한일 관계가 긴장을 더해가고 있다면, 왜 하필 지금 악화일로인지는 (예컨대) 양국 정부 내의 매파 조직이 득세중이라거나 일본 정부 내 외무성이 대장성을 누르고 있는 상황일 수 있겠다. 그에 더해 아베와 같은 양국 정치인들이 카리스마있는 이미지를 구축하여 국내정치와 지지율을 고려한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짚어질 수 있는 거다.

국가의 행동 혹은 국가간 주요 문제에 대한 이해 수준을 좀더 높이거나 풍성하게 할 수 있단 점은 또다른 흥미로운 응용도 가능해진다. 너무 단순한 치환이긴 하겠으나, 국가라는 행위자와 국제관계라는 네트워크를 개인과 인간관계로 바꿔보면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합리적 행위자로서의 개인, 개인이 가진 여러 루틴한 행태와 지위,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나왔던 것과 같은 심리적인 특성들까지 세개 층위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혹은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의 생리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조직 중 가장 고도화된 것이 국가일 텐데, 그렇다면 회사나 학교, 가정에도 훌륭히 적용해 볼 만한 안경들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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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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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해외에서 장기체류한 기간이 훨씬 길지 않을까 싶은 작가 하루키. 여행을 소재로 한 에세이도 많고 본격 여행기도 많지만,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섬과 아일랜드를 여행한 두 편의 에세이를 사진과 함께 담은 이 책은 각별하다. (특히 싱글몰트와 흑맥주를 사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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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대로 '만일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굳이 구구하게 말로 떠들 일이 아니라 잠자코 술잔에 보모어던 아드벡이던 라프로익이던 아일레이 싱글몰트를 넘치게 따르고 넘겨주면 끝날 일이다. 그렇지만 또 그것도 아닌 게, 역시 그 뒤에 숨은 풍경과 스토리를 직접 겪어보고 싶어진다. 아일레이에, 그리고 또 스코틀랜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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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아직 내 술잔에는 풍경이 부족하다. 꼭 원산지를 찾아가고 술이 빚어지는 모습을 눈에 담는 게 전부는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더블린을 다녀오고 난 후 기네스 흑맥주의 거품과 향에는 곱절은 더 풍미가 배었다. 나파랑 소노마밸리를 다녀온 후라거나, 남프랑스를 다녀온 이후의 와인도 그랬구나. 위스키를 더 맛있게 먹어야 할 텐데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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