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만나는 융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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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ㅡ 제임스 홀리스 , 김현철 옮김 , 더 퀘스트

 ㅡ
"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 또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 손에 들고 있는 칼과 저울은 나를 만났을 때 신중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 내 이름은 카이로스 . 지금이 바로 기회다 "
[ 이태리 토리노 박물관의 카이로스 석상에 쓰인 문구 ㅡ라고 한다 . ]

남자는 눈을 감고 음울한 톤의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 지금 자신의 감정이 어떠냐는 의사의 물음에 그 나직한 목소리는 울컥한 분노의 감정을 삭이며 모멸된 자아를 되씹는다 . 한 그룹의 최고 경영자 자리에 있는 남자이지만 그는 텅비어 간다 . 아니 늘 비어 있었다 . 
또 한 남자는 쇠락한 풍경의 배경처럼 앉아서 혼자 소주를 들이켜며 , 돌이 킬 수 없는 지난 날의 시간을 허공에 외친다 . 자신은 한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남은 건 못한 삶뿐이라고 자식들이 , 아내가 그를 몰아붙이고 원망하기에 스스로 지쳐 분노한다 . 분노하느라 자신을 텅 비우는 중이다 . 

아마 [ 황금빛 내인생 ]이라는 극속의 그들 나이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설정이 되있을 거다 . 각각의 가정안에서 첫 아이들이 30대 초반 정도인 걸로 나오니까 말이다 . 하지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제야 마흔이라는 중간항로에 섰음을 본다 .  연대기적 나이( 크로노스의 시간) 가 아닌 다층적 시간 속의 나이( 카이로스의 시간)를 겪느라 생물학적 나이를 한참 지나서야 맞는 상징적 나이 마흔 .  그들의 마흔은 풍랑이 일고 , 물보라가 흩날리며 하늘이 가깝게 떨어지는 혼돈의 시간이다 . 

그리고 나는 , 이 책 <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를 읽으며 매 문장의 마침표가 끝날 때마다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끝없이 재생되었다 . 그때마다 내 삶의 새로운 유언장을 갱신하느라 어지럽고 복합적인 시간을 보냈었다 . 그 많은 문장의 끝마다 나를 세워놓고 나를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고치는 일 . 그게 이 독서의 실험적 경험이었다 . 그러면서 초조하였다 . 자 , 어서 가서 저 어린 날의 , 혹은 실패했다 느낀 시간속의 너를 데려오렴 . 나는 이 다리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하지만 다시 돌아와 기회의 시간 앞에 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면 다시 태어나는 지점으로 돌아가야하는 고통을 겪었다 . 피닉스처럼 죽어도 죽지 못하고 살아도 살지 못한 시간의 내가 , 나는 어디 있냐며 헤매고 다녔다 . 

나에게 마흔이란 중간항로는 영원히 오지 않을 고도같았다 . 그 시간을 살았던 나는 내가 아니었다 . 아무것도 아무도 아니었기에 시간속에 있을 수 조차 없는 자아 . 나도 드라마 속의 그 남자들처럼 텅비어 있다 . 이런 고통에 아파야하는데 아프지도 않아서 더욱 좌절스럽다 . 속절없이 눈물이 나지만 우는 나는 빈 그릇이고 , 껍질일 뿐이다 . 우는 모습을 본떠 만든 인형일 뿐이다 . 

중간항로에서 겪는 가장 강력한 충격 중 하나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우주와 맺었던 계약  ,  다시 말해 우리가 옮게 행동하고 선의를 지니면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릴 거라는 생각이 무너지는 것이다 . 우리는 우주와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며 , 자신의 몫을 다하면 우주 또한 이에 응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유감스럽게도 , < 성경 >의 [욥기] (어찌하여 의로운 자가 고난을 당하는가 ? 하는 문제를 다룬다 ㅡ옮긴이 ) 에서처럼 고대 이야기의 상당수는 그런 계약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중간항로를 거치는 모든 사람은 이를 깨닫는다 .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꼽자면 아마도 ' 자아의 우월함 ' 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일일 것이다 . ... 자아의 붕괴는 자신이 삶을 통제하지 못함을 뜻한다 . 니체는 자신이 신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이 얼마나 당황하고 경악하는지에 관해 묘사했다 . 그 경험은 사실 우리가 자신의 삶마저 제대로 꾸리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융도 자신이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님을 깨달을 때 일어나는 전율이 어떤 것인지 강조했다 . 충격 , 혼란 , 공포를 제외하고도 중간항로에서 기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우리는 겸손해진다 . 

성장하여 스스로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삶은 무자비하다 .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 성장은 중간항로에서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요구 사항이다 . 이는 결국 타인의 중재 없이 자신의 의존성 , 콤플렉스 , 공포를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
(본문 86 , 87 , 88 쪽 ㅡ 온전한 인간이고 싶다 ㅡ편 에서 )

극속의 남자는 아직 흔들리는 중이지만 , 결국 자신의 문제와 마주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나직한 음성의 남자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 뛰쳐나간 아들을 묵묵히 지켜주며 , 자신은 결코 못했던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을 하는 아들에게 말없는 응원을 보낸다 . (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않았지만 , 그런 것으로 보인다 ) 또 한 남자는 자신의 삶 속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삶에서 영원한 휴식을 준비한다 . ( 그런 걸로 보인다 ) . 완벽한 공포에서 이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정을 함으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확인하는 그들을 본다 . 

울고 있던 나의 페르소나는 조금 울었으므로 후련하다 .  눈가를 닦고 자신의 감정에 새로운 적응기를 적어내야 한다 . 그림자를 달래서 함께 어두워진 길을 돌아 집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 

이 책 속의 마흔은 사회가 만든 성공적 이미지의 삶을 사느라 애쓴 모든 이에게 , 지금의 감정이 어떠냐고 묻는 의사의 목소리이다 . 듣지 않았다면 몰라도 들어버린 이상 그 질문에 성실하게 숙고를 해봐야하는 , 내면을 돌보라는 지시문 . 덕분에 나의 시간은 진자처럼 과거와 미래로 , 왔다 갔다 하느라 매우 바빴다 .

오늘도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은 텅빈 기분으로 울적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 이제 중간항로에 도착하였으니 멀미약을 준비하란 메시지를 전하면서 미숙한 인간의 삶도 , 혼자를 기르는 법도 어느 설명서에도 없으니 그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라 ,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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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 3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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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3일의 김남우 ㅡ 김동식 , 요다

 

"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 다만 여러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 . " 

                                                                 [ 나쓰메 소세키 , 한눈팔기 중에서 ]


공기가 축축하다 .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뭔가가 내리고 있구나 느껴지게 하는 그런 공기이다 . 소리가 없는 걸로 봐서 눈이겠구나 싶어 현관을 열어보니 옆집 남자가 부지런하게도 마당을 쓸고 있다 . 적은 양이라서 였는지 오늘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 이 겨울의 작은 수확은 이웃과 소통할 구실로 눈이 오는 날의 함께 눈치우기가 있었다 . 제법 쌓이는 날이면 옆집 남자는 윗집과 내 집에도 문을 두드려 함께 눈을 쓸자고 한다 . 그 제안이 기뻐서 입김이 하얗게 나오고 손이 시리고 발목이 차가워져도 기꺼이 나간다 . 옆집 남자는 윗집 할머니와 나와 눈쓰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 그의 아내는 우리가 눈을 다 쓸었을 즈음 나와서 따끈한 캔커피를 내민다 . 아마도 시간을 보며 캔커피를 데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세상에 나서 완벽하게 혼자일 수 있을까 ? 아무와도 어떤 관계도 , 맺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가능할까 ? 불가능하다 . 오죽하면 인간의 인 人 자는 서로 기대어 선 모양이라고 하겠는가 . 관계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서로에게 [나비효과] 같은 존재들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 뿐만 아니라 [13일의 김남우] 편에서도 역시 혼자일 수 없는 세계를 그려보여 준다 . 어느 때는 [도덕의 딜레마] 를 예를 들어 , 1 : 100 퀴즈 게임의 공간을 차용해 사람들을 선별하는 지독한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 

자신이 세상에 오지 않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은 , 철저하게 작은 연결이라도 되어 있다는 의미가 되는 나비효과 . 작가의 소설 속에선 참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다 .

외계인이 왔다가고 선물처럼 주고 간 매끈한 구체의 기능은 단계 별로 인과를 조정할 수있는 그런 것이었다 . 정부는 그 구체의 단계를 3단계로 놓고 ,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연쇄고리를 끊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  지하철을 기다리던 김남우는 메시지 한통에 서둘러 자신이 생각없이 버려두고 온 캔콜라를 되돌리러 간다 . 캔콜라 하나가 사람을 죽인다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이 연쇄의 고리 앞 단계에 있는 작은 행위가 지겨워지고 의미가 없어진다 . 불행의 연속선에 무뎌진다 . 그러자 정부는 연쇄고리를 끊지 않은 사람에게 벌금으로 3만원을 내게 시스템을 만든다 .

그 3만원을 내고 값을 치렀다고 후련해 하는 사람도 있고 , 그마저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 일이 벌어지고 자신의 일이 되어야만 사람들은 아차하고 후회를 하게 되는데 , 이 모든 과정이 작은 일 때문이라니 ,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일엔 사람들은 금방 지치기 마련인가 보다 .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데도 회의적인 사람들 . 그리고 예방조치 메시지를 받아도 어떤 행위는 되돌릴 수 없어서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되는 우연의 촉발들 . 


작가는 어쩌면 , 안전 불감증이란 말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인재 人災 사고의 사회를 이처럼 그려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 

김남우는 구체의 단계를 더 올려서 바로 앞에 사람들이 직접 뛰어들 수 있게 하려고 시위를 한다 . 그러다 그 단계의 의미가 정부차원에서 이미 손을 쓸 만큼 쓴 단계라는 걸 알게되고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 버린다 . 그러자 . 온 세계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동시에 도착한다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33명이 죽었습니다 .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61명이 죽었습니다 .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29명이 죽었습니다 . ]
[ 당신의 탄생으로 인해 , 사람 101명이 죽었습니다 . ]

그제야 깨달았다 . 왜 정부가 레버를 3단계에 맞춰두었는지 .
그제야 인류는 깨달았다 . 우리는 태어난 것만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
누구 하나 예외 없이 , 전 인류가 서로에게 나비효과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

(본문 44 쪽 13일의 김남우 ㅡ 나비효과 ㅡ중에서 )


이번 [13일의 김남우] 는  이전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 [회색인간] 보다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는 걸 느낀다 . 처음 권의 문장 파괴가 준 충격이 이제 익숙해진 것인지 , 작가의 글 다듬기가 좋아진 것이 순차적으로 드러난 것인지 잘 모르겠다 . 다만 확실한 건 각각 다른 단편임에도 단편으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거였다 .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발견이었다 .

[13일의 김남우]를 읽고 느낀 건 작가가 구상하는 작품 세계가 어쩌면 , 영화나 미디어일지도 모른단 상상을 하게 했다 .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신기했는데 이야기 구성을 보니 , 각각 어떤 영화들을 보고 그려낸 것을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 마치 내가 정유정의 [7년의 밤] 을 읽고 , 아 ! 작가는 분명 그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놓고 스토리라인에 힘을 실었구나 느꼈듯이 ... 또 , 내가 어떤 시를 읽고 이어서 단상 끝에 시의 힘을 뭍힌 글을 쓰듯이 , 작가의 작업과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 그러니 어떤 면에서 새롭지만 이 세상에 ,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맞는지 모른다 . 


눈이 제법 쌓이고 있다 . 아까는 옆집 남자가 눈을 쓸었으니 , 이번엔 바톤 터치를 하듯 내가 나가볼 차례 같다 . 나만 혼자 밟는 공간이 아닌 이상 누구도 저 고운 눈으로 인해 다치는 일이 없도록 , 예쁜 길을 내고 와야겠다 . 우리는 관계 속에 살아가는 족속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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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김동식 소설집 2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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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ㅡ 김동식 , 요다

회색인간 리뷰를 끝냈다 . 고민이 끝나지 않으면 글을 시작했어도 미완으로 두는 버릇이 있다 . 개인 노트에선 그게 상관 없지만 그래도 리뷰를 하겠노라 받은 책이니 그럴 수 없었다 . 내 고민은 앞으로 이 작가의 신간이 또 나온다면 나는 읽을것인가 였다 .  이런 문체로 중편도 장편도 가능할까 ? 독자는 욕심이 많다 . 단편에 만족하면 중편을 , 중편에 만족하면 장편을 꿈꾼다 . 읽고 싶다 욕망하게 된다 . 이 찰나의 에피소드같은 글들을 그는 확장시킬 수 있을거며 , 그렇게해서 그의 글에 있는 매력은 여전히 건재할건가 ?  독자인 나를 계속 만족 시켜줄 건가 ? 

첫권의 매력은 너무 확 다가왔고 두번째 권에선 걱정과 염려가 ,  오래 오래 나 자신을 갈등하게 만들었다 . 어차피 읽은 거지만 그렇다고 마음 없는 글은 , 나는 못쓴다 . 좋아도 내가 좋아야하고 싫어도 내 결론이 그래야 한줄이라도 나를 믿고 쓸 수가 있다 . 내 감정의 확신이 결론나기까지 좀 오래 걸렸다 .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역시 신나서 , 재미있어서 글을 썼듯 , 읽는 나도 읽은 것에 만족감이 분명해야 그걸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 특히나 말과 글을 , 말과 글로 전달하는 일이니까 . 

300여편에서 66편을 골랐다고 했었다 . 회색인간에선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 지금 리뷰할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선 말 그대로 요괴, 외계인 등이 주를 이룬다 . 내 고민을 끝냈다 . 앞으로의 책도 소장할 것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을 작가라는 걸로 . 나는 오늘의 유머를 모르기에 그의 유명세를 모른다 . 그가 베오베 인기 작가라는 걸 추천사에서 읽었을 정도다 .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고 , 서로 좋은 기운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가 잘 됨으로 다른 누군가의 희망도 될 수 있겠지 싶어졌다 . 

사실 내 고민은 작가와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다 . 그저 내 확신의 일일뿐 . 그렇지만 그가 잔뜩 그려놓은 디스토피아의 세계에 , 때로 나는 장기말처럼 이리 놓여졌다 저리 놓여졌다 했고 , 나 스스로를 우주 밖으로 보내기도 하고 보편이란 측에 서서 힘을 갖는 척도 했고 ,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불쌍한 요괴가 됐다가 느닷없는 외계인이 되기도 했으니 그를 걱정하든 , 그의 미래의 소설을 걱정하든 그건 내가 그 소설에서도 그렇게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아닐까 했다 . 독자로서 지나친 권리를 내세운 폭력은 아니길 바라면서 , 한편 한권의 책을 내기도 힘든 시대에 세권이나 연달아 낸 편집자들의 마음을 어느정도 알 것도 같았다 . 이 작가는 원석 그 자체이다 . 무궁한 아이디어 창고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 웹시장이야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 종이책은 확실하게 남아서 두고 두고 꺼내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의 한편 한편의 에피소드들은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찬란해질 것이다 . 

예를 들자면 김영하의 소설 [옥수수와 나 ]에 보면 지젝의 유머가 나온다 . 자신을 옥수수라 믿고 정신 병원에 오래 다닌 환자가 치료가 끝나 더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는데도 한 날은 찾아와 닭들이 자꾸 쫓아 온다고 심각하게 말한다 .  자신은 옥수수가 아닌 걸 안다 . 그런데 닭들은 그걸 모르지 않냐 ! 의사는 이제 닭들을 치료해야 한다 . (응?) 

그를 슬라보예 지젝식 농담으로 인용해도 하나 빠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이 두번째 책의 중간쯤을 읽었을 때 들었다 . 그가 허무는 경계는 참으로 다양하다 . 보통의 경계를 허물고 , 지구와 지구 밖을 허문다 . 지상과 지하(지저) 를 파면서 매운다 . 인간과 인간 외적인 경계를 허문다 . 그 감각이 신박하기 짝이 없다 . 그래서 경계를 하게 되기도 한다 . 이래도 괜찮을까 하고... 하지만 기껍다 . 한국의 김동식식 재치와 농담이 마구 날뛰는 날을 상상해보게 된다 . 

그때까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가 되어 야금야금 이 기존 문단을 잡아먹는 스킬을 시전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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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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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회색인간 ㅡ 김동식 , 요다


포털 사이트 다음 웹에 " 사컷 : 죽음의 소리 " 란 제목으로 연재되는 웹툰이 있다 . 단 네 四 개의 컷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 사 死 컷이란 의미도 있는 걸로 안다 . 또 생각할 사 思 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 . 이 웹툰엔 늘 분분한 댓글이 따른다 . 온도차가 극명한 호불호가 존재하는데도 연재는 이어지고 있다 . 나는 이 웹툰의 장점이 단 사컷 안에 표현되지 않은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림과 글로 대사로 채 표현 되어지지 못한 , 미쳐 쓰이지 않은 스토리의 상상이 가능한 지점에 그 모든 장점이 있는 웹툰 . 

소설에선 아마 문장의 설득력이나 개연성 , 충분한 서사 , 그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이번에 나는 텅빈 그루터기 같은 , 사컷 같은 소설을 만났다 . 웹툰으로 치면 사컷으로 봐야할 만큼 충분한 서사가 없는 만화면서 , 나무로 치면 기둥도 가지도 잎도 다 쳐낸 밑둥만 남은 그루터기 같은 그러한 소설 말이다 .  사컷 뿐이어서 상상의 여지가 있듯 , 그루터기 뿐이어서 넉넉한 어떤 여유 , 어떤 가능성 , 그런 것을 본다 . 그에게 표현 가득한 서사를 요구해선 안될 것만 같은 절대적인 느낌마저 든다 .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 구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 잊혀져서 그렇지 , 분명 이전에도 존재는 했다 . 다만 그 유명했으나 익살에 그치고 농담에 머물렀다 . 너무 오래전의 가치라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 친구네 집에 가면 화장실에 , 책장에 , 낡은 탁자에 , 라면가닥이 말라 붙은 채 뒹굴던 유머집과 개그책으로 분명 있었던 적이 있다 . 그런 구전같이 떠도는 이야기를 웹소설 하나로 만들어 냈다가 책으로도 만든 작가를 기억할 정도니까 , 음 , 장르는 달라도 말이다 . 

하지만 이 작가의 이야기엔 독특한 구석이 있다 . 자세한 서사를 무시하는 스피디한 전개법 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가치랄까 . 세상을 읽는 자기만의 고유한 시선처리법이 있는 것 같다고 밖에 표현 못할 , 그래서 책을 묶어내고 애정 가득한 후기를 적어낸 편집인의 글을 읽으면 대번에 이 작가에게 없는 게 무엇인지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그만한 애정을 드러낼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끄덕이게 하는 독특한 시선 처리법 .

한 권에 무려 24 편이 담겨있어 모두 다 짚어내진 못하겠지만 , 그중 인상적인 작품을 말하라면 어린아이들의 무구함이 주는 공포를 새삼 일깨워준 <신의 소원> , 그와 비슷한 반전을 담은 소나무가 되고 싶은 < 피노키오의 꿈 > , 자신의 딸이 죽자 다른 사람의 시신을 가져다 서로 잘라 배합해 주문을 외면 딸이 되살아 날수도 있단 말에 죽은 딸을 수십조각을 내고 , 더불어 타인의 시체도 계속 구해오는 두석규의 이야기 <인간 재활용 >이 주는 끔찍함과 그 너머의 진실 , 그리고 저승에서 온 통보로 이승의 정책들이 달라지자 저승도 같이 변화하는걸로  < 사망 공동체 >가 보여주는 어쩌면 이 세계의 진면목 등등 짧은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는 다채롭기 그지없는 얘기들이라 읽는 내내 웃기도하고 , 감탄도 했다 .

이야기들이 짧기 때문에 기억하기 좋다는 최대 장점도 있을 줄 안다 . 더우기 요새는 기성 작가들도 틈새 시장을 노리고 손바닥 소설이나 , 티저북이나 , 문고판 내지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책들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의 거릴 줄이려고 모색을 하는 때이니만큼 , 기억하기 좋은 구성의 글이란 그만큼 매력이 아닐 수없단 생각을 했다 . 이런 성긴 문체로 기존의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건가 고민을 오래해봤지만 , 이미 그는 검증을 끝낸(베스트오브베스트의) 작가이니 계속 흔들림없는 자기만의 시선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바램을 소박하게 적어본다 .  

가끔(?)이 자주이지만 재미있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읽게 되면 거기에 달린 베스트 댓글까지 찾아 읽게 될 때가 있고 ,  웹툰도 , 웹소설의 재미도 대단하지만 댓글 역시 기발함의 경지가 대단해서 그 톡톡 튀는 말잔치를 구경하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감상에 빠지던 때와 흡사한 감각을 느꼈다 . 글도 재미있지만 분명 거기 달렸을지 모를 가상의 댓글들이  3D로 보이는 듯 했다 .  아 , 이 소설 누가 웹툰으로 안그려 줄까나 ? 그런 기대를 또 해보게 된다 . 

덧 ㅡ 리뷰가 늦어 죄송합니다 .
ㅡ 

[ 소원을 말하라 . ]

천진난만한 소녀는 밝은 미소로 소원을 빌었다 .

그것은 인류가 잭에게 상상했던 , 마르크스에게 상상했던 , 김군에게 상상했던 스크류지에게 상상했던 그 어떤 소원들보다

더 , 재앙이었다 .

[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 똑똑해졌으면 좋겠어요 ! ]

사람들은 물었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바퀴벌레도 그 물음에 대답해줄 수 있는 세상이 , 와버렸다 .




( 본문 85 쪽 ㅡ 신의 소원 ㅡ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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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 온전히 나를 위한 어른의 공부
와다 히데키 지음, 장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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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 一村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한순간의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지어다 .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을 깨기 전에 , 섬돌 앞에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

이 글은 중국의 사상가 주자의 <주문공문집>에 실린  '권학문' 으로 사람이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늙어 버리고  뭔(배움)가 이루기 어려운 삶을 돌아보게 한다 . 

<마흔 ,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 는 와다 히데키 교수의 책을 앞에 놓고 보니 절로 '소년이로학난성' 이 떠올려 졌다 . 제목의 마흔은 '계전오엽이추성' 에 이르러도 떨궈진 오동나무 잎을 보며 뭔가를 깨닫는 지성을 말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 죽을 때까지 배움은 끝이 없다는 참 증명처럼 . 

와다 히데키 교수의 독학론은 쉽고 재미있었다 . 무엇보다 점점 독학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언 같은 말은 위로가 되었다 . 다만 어른의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인풋만 해서는 안되고 배운 지식을 자기 나름대로 아웃풋 하는 방식에 있는데 일반 상식 수준의 아웃풋으론 박식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이니 독자적 관점 , 남과 다른 자기만의 다른 관점을 아웃풋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

분류하자면 이 책도 자기계발서로 봐야한다 . 특히 자기 일에 성공 한 사람이 전하는 '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 쯤으로 . 186 페이지 한 권으로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었는데 정리를 하자니 , 전하고 싶어 하는 게 너무 많아서 받아들이는 쪽은 오히려 난감하였다 . 블로그의 글로 보자면 한 포스팅 분량의 글이 각각의 제목으로 늘 어서 있는 것과 같았으니 말이다 . 그나마 위로되는 건 어려운 전문 용어 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 일까 .

마흔 , 애매한 나이이다 . 마음은 청년같은데 , 몸은 슬슬 그렇지 않 다고 알려오는 시기 . 침침해지기 시작하는 눈을 비비며 노안을 염 려하는 나이 . " 아직 , 아직 , 무슨 , 무슨 ~ " 하며 불안의 감정을 널 뛰는 나이 . 그래서 이런 책도 잡아보게 하는 나이 . 걱정과 불안에 서성이는 동안 누군가는 열심히 책을 묶어 낸다고 생각하니 , 마음 이 헛헛해 지기도 한다 . 물론 이 사람은 본업에 이미 성공한 전문 가이지만 그외의 일에도 시간을 쪼개서 기웃기웃 거릴 정도로 열 정 청년인 셈이다 . 마흔의 나이 따위는 숫자에 불과해! 를 실천하는 사람인 것 . 

그러니 세월이 안겨주는 나이 마흔을 의심하자 . 안주하며 주저할 시간에 의심하자 , 세상이 그냥 던져주는 것들에 의심을 해보자는 것을 이 책에서 줍는다 . 저자는 내내 엘리트라고 , 방송이라고 , 노벨상이라고 , 권위자라고 모두 옳거나 맞는 말을 하는게 아니라는 얘길 한다 . 의심하고 자기 논리를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겁도 없이 시원하게 한다 . 데이터를 의심하고 , 뉴스와 통계를 무조건 맹신치 말라는 말을 한다 . 마흔 쯤 되면 자기 주관 쯤은 분명하게 세워야 그런 주장도 할 수있는건지 모른다 . 나? 나는 잘 모르니 일단 모르 는 것을 채워가는 걸로 해야할 것 같다 . 와다 히데키, 기억해야지 .

"어른의 독학은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

(본문 67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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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1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1 22:28   좋아요 1 | URL
치매예방을 치맥예방으로 읽고 혼자 ㅋㅋㅋ 치맥은 쉬지 않아도 되는뎅~~ 이럼서요!! 그쵸~^^?

서니데이 2018-01-21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다 히데키는 노트정리법으로 유명한 학습법 책으로 처음 보았는데, 정신과 전문의라서 다른 책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어요. 이 책은 마흔인데, 어느 책은 오십이더라구요.
그장소님, 따뜻하고 좋은 일요일 밤 되세요.^^

[그장소] 2018-01-21 22:27   좋아요 1 | URL
아..오십도 있나요? 죽을 때까지 공부하란말로 들어야겠네요! ㅎㅎㅎ 서니데이님도 굿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