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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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ㅡ 로런 그로프 , 정연희 역 , 문학동네

 

  다른 이들의 삶은 파편들처럼 한데 모아진다 . 하나의 분리된 이야기를 비추던 조명이 어둠 속에 머물러 있던 또하나의 이야기를 밝힐 수 있다 . 뇌는 기적을 이룰 수 있다 .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피조물이다 . 파편들은 제 힘으로 한데 모여 전체를 만든다 .
( 본문 561 쪽 )

 

 

   이 책엔 한 사람 , 한 사람 , 한 남자 , 한 여자의 인생이 송두리째 들어있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결혼이라는 행위로 묶인 두사람의 결합된 삶이 ,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에 매 장을 넘길 때마다 압축된 폴더를 열듯 운명과 분노를 읽다보면 한 사람에게 배당되는 인생 총량의 길흉화복이란 , 참으로 공평하게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인생의 달란트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만다 .

   처음부터 말했듯 책의 반은 예정된 수순처럼 너무나 뻔했지만 , 또  그것들이 왜 거기있는지 모른채 읽어내려 가야 했지만 남은 책의 반 ,  이후부터 마지막까진 그것들이 왜 거기 있어야 했나를 차근차근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므로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슬라이드 필름에 넣고 돌려 보는 것 같았다 .

 

   그래서  분노 편이 너무 압도적이다보니 앞의  운명 편이 없었다거나 조금 축소된 채로 발표가 되었데도 어느 정도 상상으로도 이해가 가능한 지점에 있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

 

   그러니까 운명에 크게 실망 할수록 분노에 더 뜨겁게 반응하게 된다 . 그렇기에 어쩌면 반대로 분노의 편에 실망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 그렇다면 역시나 운명의 편에서 깊게 동조를 하지 않을까 ?  사랑을 경험해봤던 이라도 , 혹은 아직 사랑의 경험이 없어 운명이라거나 , 사람에 대한 배신이나 분노가 이해 불가의 미지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도  이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같은  부부를 애틋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단정마저 마구 내려버리고 싶어진다 .

 

   단적인 예로 마틸다의 생에 있어 태양같은 존재인 로토와 , 로토에게 있어 한 점 의혹없이 수많은 사랑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게 한 확신의 여신이자 달과 같은 마틸다 . 겨울의 추위가 있어 따듯함을 갈구하게 되고 , 여름의 뜨거움에 있어 시원함을 갈망하게 되듯이 서로를 희구하게 된 젊음들 .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마지막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

 

   삶의 이면들을 잔뜩 가진 비밀스런 사람들 . 그건 로토는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고 , 그도 모르는 사이 비밀이 만들어져 있었다 . 좋은 환경이 있었던데 반해 그를 스쳐지나간 여자들의 과거는 불행해졌다 . 대체로 사랑의 뜨거움에 불행해졌다 . 특히 로토의 어머니와 연관되면 더 그렇게 되었다 .

 

   그리고 정반대의 환경을 가진 마틸다는 좀더 밝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로토를 희망했고 , 그 희망은 로토의 어머니 앞에서 꺽일뻔 했지만 그녀는 대립하는 마녀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그래서 로토와 마틸다는 가난한 청춘을 보내야 했다 .

   누구보다 능력이 출중한 청춘이었던 이들은 젊음을 그렇게 애쓰느라 지쳐가기도 한다 . 그리고 로토에겐 늘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친구들 몇이 있는데 , 그 친구들 역시 비밀을 가진 친구로 어릴 때 누이가 로토의 아이를 낳고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것을 로토에겐 사고사로 말하고 계속 로토의 곁에 머물러 있는 친구가 있고 , 그 외에 여전히 로토를 사랑하지만 마틸다를 어쩌지 못하는 여자친구들이 언제고 기회가 되면 마틸다 자리를 노리며 오랜 친구들 노릇을 하고 있다 . 하지만 늘 자신만 의식하는 로토는 다른 사람의 삶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 또 누구도 그에게 그늘의 삶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 그는 쇼윈도 안에 장식된 표본처럼 보기 좋게 있어야만 한다 . 

 

   그런 그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안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싶다 . 그가 몰랐기에 마틸다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 내내 침묵을 비밀이 아니라는 , 거짓이 아니라는 자기 위로를 끌어 안고 , 곁에서 언제든 위협해 오는 로토 주변사람들의 뾰쪽함을 기꺼이 감수해 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

   로토가 연극배우에서 희망을 접고 극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성공하며  , 또 나중에 그가 알게된 진실 때문에 충격으로 죽은 후에 밝혀진 건 , 그를 극작가로 이끈 초기작을 빼곤 대부분은 마틸다가 손을 댄 것이라는 사실 역시 무겁고 무서운 진실이고 로토가 모르는 기만이었다 .

 

   그녀의 과거가 불행하고 어두웠다는 건 사실 나에겐 별로 충격을 주지 못했다 . 반전처럼 준비된 그녀의 불행 , 그 일들이 그녀를 로토에게 보내는 추진력이 되고 , 마침내 로토가 마틸다의 운명이 되고 , 그녀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 되었다는 게 나에겐 오히려 충격이었다 . 그녀가 얼마나 능력있는 여자인가 생각하면 , 그녀가 소진한 많은 에너지가 아까워 내가 다 안타까웠다 .

 

   그러면서도 이율배반처럼 그 이유 역시나 알 수 있었다 . 그녀가 무얼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는지를 ... 그녀에게 드리워진 유년의 그늘은 얼마나 힘이 쎈가 . 과거의 힘은 얼마나 뾰족하고 날카롭길래 숨겨지지 않고 세월을 20여년이나 보내고도 튀어나와 상대를 찌르고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멎게하나 . 그런 생각을 했다 .

 

   그러므로 읽어라 , 읽고 또 읽고 계속 읽어가라 . 마침내 분노와 마주칠 때까지 운명을 읽어라 . 예정되고 뻔한 운명에서 실망하고 왜 이런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냐고 책을 앞에 놓고 질문하고 답답해 하면 할수록 분노 앞에서 마주치는 세밀한 장치들에 전율하게 되고 말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는 어째서 미국 전 대통령이 이 소설 한 권에 극찬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고 말 것이다 . 

 

   숨이 멎도록 몰입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 이토록 뻔한 스토리 임에도 불구하고 , 이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질만큼 ...  아 , 아 , 읽어보지 않으면 이 기대감 , 이 고양감은 알 수 없다 .

 

 

 

 

 

 

결혼 , 서로 다른 부분들이 만나는 결합 . 로토는 소란스럽고 빛으로 가득했다 . 마틸드는 조용하고 신중했다 . 로토 쪽이 더 나은 반쪽 ,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쪽이라고 믿기 쉽다 . 그가 지금껏 경험한 모든 것이 마틸드를 향해 차곡차곡 쌓여간 것은 사실이다 . 그의 삶이 그녀가 나타난 그 순간에 대비해 그를 준비시키지 않았다면 , 그들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본문 16 쪽 )


" 결혼이란 건 거짓말투성이야 . 대체로는 친절한 거짓말이지만 . 말하지 않는 거짓말 말이지 . 날마다 배우자에 대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한다면 결혼생활을 짓밟아 뭉개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 그애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단다 .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 "
( 본문 313 쪽 )


그때조차 그녀는 이 세상에 기꺼이 , 같은 일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신들이란 우리를 엿 먹이기 좋아하는 존재들일 뿐 .
( 본문 351 쪽 )




슬픔은 내면화된 고통 , 영혼의 종기다 . 분노는 에너지로서의 고통 , 갑작스러운 분출이다 .
( 본문 460 쪽 )


그녀의 삶이 크게 베여나간 자리들은 남편에게 흰 공간으로 남았다 . 그녀가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말한 것과 산뜻한 균형을 이루었다 . 하지만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 말과 진실이 아닌 침묵이 있었고 , 마틸드는 절대 말하지 않음으로써 로토에게 거짓말을 한 것뿐이었다 .
( 본문 497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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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19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예스24 중고샵에 가니까 있더만요.
<천둥과 꿀벌>도 있고.
사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넘 두께워
인연이 있으면 나중에 또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히 내려놓고 나왔습니다.ㅠ

[그장소] 2018-01-20 05:52   좋아요 1 | URL
중고샵 ~ 전 아직 한번도 못가봤어요. 부럽~ 부럽~ 가까운데는 없거든요.
천둥과꿀벌도 그렇고 두께에 비해 읽는 속도는 순식간예요!!^^ 나중에 ~~ 보시면 아시겠지만요!^^

깐도리 2018-01-20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지고 있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 미루고 있네요...
천둥과 꿀벌은 도사관에서 ㅎㅎㅎ

[그장소] 2018-01-21 08:57   좋아요 1 | URL
의외로 이 책 반응은 50대 이상에서 먹히더라고요 . 그 이유를 이제는 이해가 좀 됐고요 . ㅎㅎ 저는 넘 재미있게 읽었지만 서둘러 읽으시라 권하고 싶진 않아요 . 정말 천천히 만나도 아깝지 않은 소설이니까요 . ^^

2018-02-09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9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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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그 겨울의 일주일 ㅡ 메이브 빈치 , 정연희옮김 , 문학동네


언제가 직장 회식 자리에서 사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하던 그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 자식을 키워서 행복을 맛보는 순간은 생애 10 % 도 안되지만 , 그 순간이 주는 기쁨은 남은 고생 90 %를 잊게할 만큼 매력적이라는 말 . 

그 겨울의 일주일이란 제목을 생각하다보니 그런 생각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에겐 춥고 혹독한 계절 , 겨울 . 

그 겨울을 부러 일주일이란 시간으로 한정 잡은데는 특별한 의식과도 같은 날들이기에 그런게 아닌가 했었는데 , 다르게 생각을 해보니 긴 인생의 10 % 같은 행복을 말하는게 아닐까 싶어졌다 . 그럼에도 찬란한 여름이나 한적한 가을이나 나른한 봄이 아닌 겨울인 이유  , 그건 아마도 이 글 속 사람들의 삶을 이루는 결핍을 나타내기 위해서 , 또 일주일은 그 결핍중의 만족감이나 , 휴지기 같은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을 한다 . 어쩌면이지만 우리같은 범인 (凡人)들의 삶이 대부분 그런 겨울이 아닐까 , 평탄이라고 하긴 오히려 드문 (일반화의 오류인가 ?)......

 

달리 생각하면 겨울은 내내 다음 봄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



사실 , 처음 읽었을 때는 내 스타일의 소설은 아니군 하면서 문장으로 몰입이 안되 무척 답답했었다 . 계속 겉만 읽는 느낌 . 도무지 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하는 거리 같은 게 잔뜩이었다 . 그럴 수 밖에 없는건 치키라고 불리는 사람의 인생으로 시작되는 첫번째 챕터부터가 공허하고 쓸쓸했다 . 사랑을 믿고 모험을 떠난 청춘은 좋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부분만 그녀가 대단하고 자유롭지 내면은 리거의 어머니인 눌라와 퍽 흡사할 것 같았기 때문에 아무리 스톤브리지의 게스트하우스가 착착 진행되어 완공이 잘 된다 해도 그녀 자신의 내면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그자리에 그대로 일 것만 같았다 . (뭐 ,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

 

그렇다고 그녀의 인생 자체가 해빙기없는 빙하기의 삶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 해가 반짝 드는 어느 겨울의 봄 같은 날도 있듯이 ... 표면으로 보여지기엔 그녀의 삶이 공허할 것만 같아도 꽤 담백하고 단정하지 않은가 ? 삶에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인생같기도하고 ... 뭐 20년의 세월을 휙 빠르게 돌리는 데선 , 참나 작가 성격 한번 화끈하시네 싶어서 웃음도 났다 .



이 소설 전체를 다 읽은 것이 아니니 결말을 알 수 없다 . 동화 속처럼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한데도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 그치만 쉽고 빠른 문장으로 느낀 ,  자신이 아닌 타인을 불러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보기하는 이 방식의 소설은 ( 그러니까 모두가 증인이나 알리바이 제공자처럼 필요한 서로들 , 서로를 증명한다는건 그만큼 가깝다는 또다른 증명 , 그러니 그녀는 외롭지 않았을 것같기도...) 

이 책이 왜 티저북으로 나왔는가를 수긍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 영리하고 꾀바른 소설이란 생각은 ,  책을 덮고 한참 한참 지나서야 남들 다웃고 난 공간에 끼어드는 박자느린 웃음처럼 떠올랐다 . 전체를 다 보면 더 이 탁월한 꾀에 만족감이 더 들려나 ? 아 , 진짜 궁금해진다 . (그럼 , 본편을 봐!)

지금까지 그녀를 살아 있게 한 믿음은 이것이었다 . 결국 그녀의 나이 스물일 때 스토니브리지 사람들은 모두 틀렸고 자신은 그들보다 더 현명했다는 것 . 그녀의 결혼생활은 행복했고 뉴욕생활은 바쁘고 성곡적이었다는 것 . 그는 떠났고 그녀는 캐시디 여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닥을 닦고 욕실을 치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신세가 된 사실이나 , 일 년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것만 빼면 돈을 아끼느라 휴가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
그녀에게는 꾸며낸 그 삶이 보상이었다 .
(본문 28 쪽 ㅡ 치키 )

그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 갓 태어난 병아리들을 사왔는데 글로리아가 사냥 기술을 발휘해보고 싶어하는 바람에 그것들을 지켜줘야 했다는 내용을 썼다 . 감자밭을 일구기가 정말 힘들었다고도 썼다 . 건축업자가 담벼락 정원을 만드는 비용을 너무 많이 청구해서 자신이 직접 하나씩 돌을 쌓아올렸고 모종도 재배했다고 썼다 . 그가 뭔가를 심으려고 구멍을 팔 때마다 글로리아가 그 안에 들어 않아서는 그를 심각하게 쳐다보더라는 내용도 썼다 . 어쨌거나 지금은 관목이나 화초가 벽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 그런 식물을 이스팰리어라고 불렀다 . 그들은 깍지콩 , 호박 , 온갖 샐러드용 채소와 허브도 키웠다 .
그는 카멀 히키라는 예쁜 여자애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
(본문 79 쪽 ㅡ 리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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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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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언젠가 이웃분들과 글수다를 떠는 자리에서 나는 전쟁만큼 싫은 게 복싱 , 이종격투기 같은 스포츠라고 했더니 언니 뻘 되는 이웃님은 자신은 그 가드를 올리는 상태랄지가 좋아서 복싱이 좋다고 말하기에 한참 가드 올린다 라는 상태에 대해 곰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 그랬다 . 팽팽한 긴장의 상태에 언제든 들어오라며 두 팔을 적당한 높이로 든채 준비 , 혹은 대기 상태로 있는 그 분위기나 공기를 상상 속에서 음미하는 건 꽤나 괜찮은 기분였다 . 그래서 이따금 스스로 파이팅이 필요하거나 타인에게 파이팅을 주어야 할 때 가드 올리라는 말을 주문처럼 사용하곤 했었다 .

 

그럼에도 나는 역시 피가 나고 얼굴이 찟기고 눈두덩이 부풀어 오르고 어느 시간이 흐르면 주먹 한 대가 천천한 시간 속에서 공기를 가르는 것이 보이는 그 늘어진 전투의 처절한 광경을 좋아라는 못한다 . 아니 여전히 싫다 . 그런데 대놓고 스파링 , 복서의 이야기라 ...... 보통의 스포츠 성공담이나 성공한 스포츠맨들의 성장과 삶에 대한 것들은 단물이 다 빠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우리 삶에 먹히는 걸까 ? 그런 호기심이 가장 컸고 대체 얼마나 대단하면 내가 좋아라 하는 작가들이 줄줄이 이렇게 멋진 심사평을 늘어 놓는지 거기에 호기심도 한 몫 .

 

그래서 내 감상을 말하자면 , 유행 지난 개그프로에서 잔소리 많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야길 속사포 랩으로 듣는 느낌 ? 좀체 끊이지 않아 귀가 울리다못해 넋이 빠지는 ? 그런 체험 ...... 막 웃겨서 웃는게 아니라 상황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잔소리 랩이 이어져 웃픈 상황을 가중하는 느낌이고  그 와중에 웃는게 슬픈데 그래도 처연하게 웃긴 (?) 기분 .

어쩌면 권투에 빠져 보는 사람들엔 그런 정서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얼핏 생각도 들었다 . 얼마나 장렬한 느낌 (그 영화속 장면 있잖은가 ? 비오는 날 주먹을 서로 맞대고 비장하고 익숙한 음악이..흐르는?) 속의 주먹질 주고 받기냐 싶기도 하고 ... 책장을 덮자 털썩하는 탈진의 기분도 들었다 . 웃고 우는 것들엔 권투와 비슷한 그런 신체적 박탈감 비슷한 것도 있겠지 .

 

진지하게 링에 올라 주먹을 겨루지만 그것들이 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한다는 점에서 방식은 다르지만 그건 전투종목만 다른 삶의 축소판 아닌가도 싶었다 . 그러면서 왜 피눈물 나는 장소엔 천재적이나 악바리 근성으로 불우한 환경을 딛고 승리를 거머쥐는 사람들 뿐인가 싶기도 했다 . 그냥 사는것도 그만큼 치열한데 말이다 .

주인공 장태주는 그만큼 고생하고 그만큼 성공한다 . 행복도 가깝게 쥐었다가 놓치는데 그 모습이 너무 흡사했다 . 누구와 ? 우리 현대 사회의 가장들 , 그러니까 먹고사니즘에 쫓겨 한치 앞도 모르고 달리기만 하는 우리들과 그냥 있는 장소만 달랐다 뿐 , 없는데서 일구고 잃고 하는 과정은 다르지 않았던것 같다 .

 

열심히 달려 성취한 걸 얻지만 생각할 시간조차 가질 수없이 돌아가는 생활이나 , 얻을 만큼 얻었다고 보면 주변에 아무도 남은 이가 없는 것이 꼭 그렇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번 문학동네 소설상의 위치가 점해진게 아닐까도 싶었다 . 그다지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 노력하고 성과를 내도 행복은 좀체 잡히지않는 현대 사회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도 되는게 그렇지 않나 싶어서 말이다 . 그래서 진짜 (뱀같은)를 말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막판 쯤에 자신은 진짜가 아니라고 느끼는 지점에선 무척 흡입력있게 읽었다 .

 

그래도 여전히 내겐 먼 스포츠의 세계지만 뭐 , 작가는 갑자기 방언터진 사람마냥 쏟아내서 한동안 입을 열어 말을 하는게 좀 지치지 않을까 싶기도 ㅡ 하다 . 아 , 모처럼 가열차게 읽었네 . ㅎㅎㅎ

 

무작정 . 지금 사는 것처럼 무작정 . 그렇다면 지금처럼 무작정 사는 것과 무작정 죽는 것은 뭐가 다를까 .

ㅡ본문 44 쪽에서 ㅡ

"알리는 호관조가 아니라 호금조야 ."

ㅡ본문 53 쪽에서 ㅡ

어차피 이 세계에서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래 , 그렇다면 제대로 살지 않으면 그만이다 . 애쓰지 말자 . 나는 생각했다 . 애써도 달라질 게 없다면 차라리 모두가 나를 증오하게 만드는 게 , 내게는 더 쉬운 일일 수도 있었다 .

ㅡ본문 57 쪽에서 ㅡ

그들은 누군가 혼자만 올바른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 이미 자신들은 놓아버린 신념을 누군가가 혼자 지키려고 하는 꼴을 도저히 그대로 봐줄 수 없는 것이다 .그것마저 방관하면 자신들에게 묻은 똥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으므로

ㅡ본문 79 쪽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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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2-08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종격투기나 권투 보는 게 좀 불편합니다. 굳이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지...^^; 그러고보면 그런 현장에는 늘 배고프고 악착같이 사는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는군요.

[그장소] 2017-02-08 00:18   좋아요 0 | URL
그쵸~^^? 모두가 다시 가난한 시대를 ( 몇%는 빼고)살게 될것 같은 요즘 ㅡ 어쩜 사는게 치고박는 싸움이란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인간은 말을 문자를 아니 가급적 말로, 해결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요 . 뭐, 신체를 마주해야 하는 것도 없지않아 있겠지만요 . 피터지는 건 정말 .. 싫고말이죠..

yureka01 2017-02-08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요즘은 마음의 가드를 올려야 하는 시간들이죠..ㅎㅎㅎ가드를 올려라..캬..뭔가 싯적이기도 한 ~

[그장소] 2017-02-08 00:30   좋아요 1 | URL
뭐 그 표현은 저보다 먼저 쓰신 분이 계셔서 쓰면서 살짝 미안하지만 , 저도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 표현자체가.. ㅎㅎ

cyrus 2017-02-08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스24 블로그에도 댓글 남겼지만, 이름 잘못 적은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을 대충 읽어도 발견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좋은 소식이 나오면 감사에 대한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

[그장소] 2017-02-08 13:37   좋아요 0 | URL
네 ㅡ 좋은 소식 있기를 기도할게요.^^
저도 오타잔뜩에 엉망인걸 읽어도 못느낄때 많아요 . 자신의 글은 유독 그런것 같아요 . 이상하죠? 눈에 씌여설까요? ㅎㅎㅎ
 
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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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장을 보자 , 아 ! 황정은 표다 . 그의 말하는 방식이다 .
책이 고랑이고 글 줄이 하나의 이랑인 것이라면 , 오래 써 하얗게 반짝이며 닳아서 뭉툭한 끝을 가진 쟁기가 글이라는 흙의 겉을 갈아 엎고 , 속 흙이 밖으로 나오며 공기와 닿는 그런 순간처럼 , 겉 흙이 잠겨져 안으로 안으로 박히고 속 흙이 밖으로 밖으로 내 뱉어지는 , 세계가 서로 뒤바뀌는 장면을 본다 .
현상이다 . 그랬다 . 어느 평론가의 말이 그녀의 글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
이상하지 . 원래 생각한건 두물머리의 물 때들 였는데 , 끄적거린건 다른 표현이라니 , 흐흣 ....
갑자기 쟁기 질이라니 ... 내 손이 갈아 엎는 흙이라니 ,
한 물줄기가 다른 온도의 물을 만나서 섞이기 전에 선명히 자기 온도를 보이다 이내 합체하는 듯한 , 수온차라 하는 그런것을 글 줄기에서 그 미묘한 변화를 읽는다 . 명실을 읽다가 였다 .

그, 그그그그 하면서 책상을 끄는 장면이랄지 , 궂은 살과 발바닥에 관한 표현이랄지 에서도 , 그 선연한 뒤척임이 읽히곤 한다 . 기척이 공기가 변하는 순간들이 느껴지고 보인다 .
또 이런 표현에서도 있었다 . 양의 미래에서 ,

맑은 날도 우중충한 날도 여섯 폭짜리 유리 너머에 있었다 .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 나는 서점에서 일하는게 좋았다 . 당시엔 그걸 깨닫지 못했지만 그랬다 . 지상을 향해 부채꼴로 퍼진 계단을 올라가면 벚나무가 있었고 ,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고 그것에 조명을 비추듯 가로등이 서 있었다 . ......계산대에서 그 광경이 다 보였다 . ...... 꽃잎은 돌풍이 불면 구석진 곳에서 소용돌이 치며 날아올랐다 . (본문 40 쪽 )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유리 너머에 있었다 . 햇빛은 하루중 가장 강할 때에만 계단을 다 내려왔다 . 유리를 경계로 바깥은 양지 , 실내는 어디까지나 음지였다 . ...... 오후에 , 유리를 통해 노랗게 달아오르고 있는 계단을 바라보다가 저 햇빛을 내 피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중에 채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 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나는 여기 머물고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갈 것이다 . (본문 48 쪽)

계단을 깊숙하게 내려딛는 해의 걸음 . 빛 속에 있으면서도 질 적으로 다른 조도에 그 저절로 난 양지를 , 양지 쪽으로의 빛바라기 .... 같은 것들에서도 기척이 희미하게 변화한다 .

제목은 누군가를 의식한 아무도 아닌 ㅡ 이지만 , 그들의 배경이 놓여진 환경이 더 뚜렷하게 보이는 기현상을 , 나는 본다 . 느낀다 . 그러면서 좋다 . 좋다 . 너무 좋다라고 막 생각한다 .

명실이란 단편에선 그렇지 ,
실리는 늘 다루곤 하는 사물에 특별한 애착을 품었고 종종 그런 사물들에 어떤 정서가 있다고 우겼다 ......
그 물건이 무엇을 느낄지 , 그 조그만 사물이 난데없이 그 자리에 홀로 남아 얼마나 애가 타고 허탈할 지 , ......무언가를 혼자 남겨두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 사람만이 아니고 사물도 ......사물에게도 . (본문 103 쪽 )

언젯적인지 예능 프로중에 러닝맨 였던가 , 그 유재석과 그의 일당들이 시간을 지배하는자 어쩌구하면서 놀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아 , 공간을 배경을 지배하는 , 그 텅빈 곳에 가르는 공기들을 지배하는 황정은 식의 현상을 읽는다 . 공간을 시간을 기척을 지배하는 자 , 라면서 ...

아무것도 아닌 ㅡ 이 아니고 아무도 아닌 , 아무것˝ 과 아무 도˝ 사이를 섬처럼 왔다갔다 . 내맘이 그랬다 . 그 예민하고 예민한 기척들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 어느 날 일기에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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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04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랑과 고랑이 서두에 나오는 걸 보니 글도 농사와 닮았나 봅니다..ㅎㅎㅎㅎ^^..그장소님 우째 잘 지내시는지요..오랜만에 주말 출근이라 댓글합니다!~^^.. ㅋ

[그장소] 2017-02-04 09:32   좋아요 0 | URL
ㅎㅎ 네엣~ 주말 출근이시군요! 그렇다면 저도 북플에 주말 출근한 셈이 되려나요?
글도 자식도 뭐, 농사에 비견되곤 하니까...그렇지 않을까요?^^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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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ㅡ김연수

우리가 진실이라고 , 진리라고 믿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 . 그래서 백년도 못살 인간들아 ~ 하며 어느 유랑시인은 무상한 인간사를 노래했는지도 모르겠다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 민족주의의 차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없다면 보통의 일반인은 대게 뭉뚱그려 애매하게 인식을 갖고 있기 마련이고 , 그 전에 일반사회적 ( 무의식적 환경) 학습에 의해 자신이 살고 있는 이념체제가 승리했으니 옳은 체제이고 현재까지 살아있으니 바르고 , 정의의 개념 위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믿게 되기 때문에 , 의심을 갖는 일이 없다 .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 정부가 어디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세워졌는가를 일찌기 의심해 본 사람은 소수의 사람였을게다 .

 

진실이 둥근 구슬이라면 그 구슬의 한 조각만 보고 전체는 본 적 없이 깨진 한 부분만 전체인줄 알테고 ...그렇게 알아왔다 . 민주주의가 무조건 옳은이념이고 우리나라는 그 민주주의에 잘 따르고 있다고 믿으면서 ,

언제부턴가 역사교과서가 논란이 되어 왔다 . 둥근 구슬의 나머지 부분들이 이제야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라고나 할까 ?
우리는 저 일제의 식민치하만 이를 드러내며 혐오해왔다 . 그런데 가만보면 같은 조국의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더 잔인한 세월을 살아왔음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느끼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사건 속에 있음을 느끼곤 한다 .

이 책이 바로 그런 내용을 가리켜 모두가 혼탁한 시대의 물결을 포착해 낸 글이라고 해야겠다 . 저 먼 간도 땅에서 , 같은 조선의 동포들끼리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도 아닌 그저 해체하자면 실체도 없는 단어에 의식일 뿐인 신념이란 것에 사로잡혀 혁명을 외치다 피투성이로 쓰러 지는 이야기들 ... 인 것 . 

그것도 공산주의 , 바로 당 가입과 활동을 놓고 서 ...그런 그들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도 역시 당의 조직에서 내려온 일로 민생단을 색출하겠다고 피를 부르는 일이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얘기이다 .

글 속 주인공인 김해연은 우연한 기회에 이정희를 만나고 , 운명이라 여기며 사랑에 빠지지만 그 모든게 조작였단 사실과 이정희의 죽음 으로 모든게 흔들리게 된다 . 이정희와 그녀의 친구들인 안세훈 , 최도식 , 박도만 , 그리고 박길룡이 모두 한 민족이면서 전혀 다른 이념을 쫓는 듯이 서로 반목하는 내용 ...

지금까지 둥글기만한 구슬이라 믿었던 구슬의조각을 맞춰보니 새삼 타원형이더라 하는 식이랄까 ...

다만 , 마지막까지 이정희의 진심은 , 김해연이 온 세계이며 사랑이라 믿고 싶었던 그것은 진심였다는 위로 하나에 구원을 얻는다는 게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고, 정희는 죽었지만 여옥은 있다는게 내게도 퍽 괜찮은 결말이라면 괜찮은 결말였다고 ...

" 진실을 알게 된 고귀한 자들은 비참하게 죽는 순간에도 이 세계 전부를 얻은 셈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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