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나요 -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형서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기억도 분명 누군가의 단편 , 혹은 장편 소설 속에서 읽었던 글의 파편일텐데 , 기억을 뒤져 책의 전체를 찾자니 도무지 귀찮다 . 어떤아이의 눈엔 세상의 모든게 질서나 규칙을 가지고 형상을 보이곤 하는데 그 모습을 혼자 모자이크 같은 그림의 형태로 변환시켜 숨겨둔다는 얘기였다 . 왜냐하면 그건 일종의 천기누설에 가깝고 그 아이의 신변을 군이나 정부에서 이용하려고 들면 , 아이가 가진 능력을 암호처럼 풀어서 상대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 아 , 책이 아니라 미드 같은 거였을까? 갑자기 영상같이 떠오르는걸 보니 그런 모양이다 . 맥락도 없이 이런 얘길 시작하는 이유는 , 이 단편을 이해하려다보니 오는 곁다리 쯤 되겠다 .

 

나로서는 너무 난해하고 어려워 집어 던지고 싶은 내용였는데 ,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 연락처를 알면 좀 작가에게 따지고 싶었다 . 그래봐야 무식만 탄로날 뿐이겠지만 ,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 용기가 없는 것 보단 낫지 않나? 그래서 우리 집에 락앤락 이 많다 .(자랑이다!)

음악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 고통도 역시 , 아니 거의 모든 것들의 표현이라고 해도 좋을 포용이라 해도 될 것이다 . 그러니까 인간들이 나타나고 사랑하고 갈라서고 더 큰 차원으론 전쟁하고 분단되고 단절되는것들까지 , 우리들의 모든 탄생과 소멸 그리고 다시 생성되는 모습의 한 순간을 포착해 옮겨 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

 

할아버지가 전해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과 자신의 탄생이야기 , 그리고 여동생의 존재가 가져오는 불화 , 입양된 후의 겨울풍경을 말하며 반복하는 이야기들이 음악을 반을 나누었다 .밤을 만들었다 절망하다 음악을 들었다 놨다 한다 . 정말 , 그런 장면에 음악이란 그저 소음이나 일상음에 불과 할 것만 같지만 굳이 그렇게 표현하시겠다니 , 독자인 나는 꾸역꾸역 받아 들일 밖에 ...... 느껴보려 애를 썼는데 , 잘 안되었던 단편 , 신화적 해석이 필요한 걸까 ... 다른 자료를 찾아야하나 싶기도 했는데, 어떤 느낌도 당장은 샘처럼 솟지 않으니 , 감탄은 다음으로 미뤄야 겠다 . 누군가 이 소설의 깊은 의미를 아시는 분은 내게도 좀 타전해 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있나요 -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형서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새해준비를 하면서 자신을 위해 새 양말을 사는 서른여섯살의 남자가 있다 . 연말이면 꼬박꼬박 매해 그래왔단다 . 군대갔던 시기를 빼곤 집안에서도 가족들이 다 같이 새해 아침이면 새 양말을 꺼내 신는 일로 아침을 시작하는 독특한 가풍을 가진 남자 . 그러고 보니 , 까맣게 잊었지만 내가 어릴 때 설 빔은 아니어도 대신 양말이 있었던 것 같다 . 하다못해 장갑이라도 있었지 하는 생각이 이제야 발굴된 탄광처럼 캐 지다니 ... 그래서 해마다 들어온 아버지의 새 양말 곽들이 잔뜩 쌓이고 했었지 . 이웃들도 부담없이 주고받던 선물였던 셈 . 아버진 그 양말을 다 신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 그 양말들을 어쨌는지 기억에 없다 .

 

새 해 아침 혼자서 떡국을 끓여 먹은 남자에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온다 . 막냇삼촌에게 다녀와보라는 얘기였다 . 어릴 적엔 대단해 보이고 또 , 한때는 공부를 대단히 잘해서 꼭 서울대에 갈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막냇삼촌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 가족 중 가장 인근에 살기도해서 도착하니 공휴일은 쉰다고 면회가 안 된단다 . 공연한 헛걸음에 주윌 둘러보니 교도소 앞이라 가게들이 두부집이 많아 허기도 해소할 겸 들어갔다가 옆에 남자처럼 헛탕친 내외가 앉아 식사에 막걸리를 마시며 실연으로 사고를 친 자식 때문에 울고 , 곁에서 듣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막걸리를 시켜 마시게 된다 .

 

남자도 양말을 두개 사던 해가 있었다 . 다음날 만나 떡국을 먹자 약속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 길로 다신 회사에 나오지 않은 여자가 회사를 휘청이게하는 회장의 오랜 내연녀였다는 소릴 듣게 된다 . 그 회장 사이엔 4살 난 아들도 있다는 소문 , 차라리 싫어진 이유라도 말하고 갔더라면 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 이제는 벌써 8년이나 지난 일인데 , 그때일을 생각하는 건 막냇 삼촌이 군대제대후 집에 머물러 있을 때 하던 말이 생각이 난 까닭이다 . 군대에서 온갖 나쁜 사람들 이야길 하면서 끝에 잠들기 전 스위치는 꼭 남자에게 끄게하며 , ' 스위치 같은 거라, 그렇게 이상한 놈이 되는건 , 버튼 하나로 왔다갔다 하는거지. 그러니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해'  비장하게 말을 했더랬다 . 꼭 그말을 전하기위해 있는것처럼 ...

 

하지만 , 삼촌도 남자도 한번씩 스위치를 내리곤 했다 .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런 말을 사람들은 곧잘 하곤 한다 . 그럴 사람, 그런 사람, 그런게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상황만 있을 뿐이라지 않던가 ? 작가는 그 얘길 전하고 싶었던가 보다 . 이웃의 슬픔에 공감하며 그들이 뉴스같은 것에서 본 얘기로 떠드는 말 한 조각에 기대 , 하물며 인간인데 오죽했겠어 심정을 참작하는 동안 .

피해자의 가족은 이를 악물고 있을 , 반대편의 그림까지 어쩐지 보게되는 단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있나요 -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형서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 여긴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 "

 

독일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는 한국계 프랑스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나나에겐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 영화 학도인 서영이 그녀의 취재기사를 보곤 이메일을 보내왔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제안을 해 온 것에 왜 , 떠돌이의 이름같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된거냐는 질문에 서영의 답은 진지했다 .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 , 존재감이 , 정체성이 거주하는 집이 이름이라 ...... 더욱이 한달간의 한국 체류기간동안 숙소도 제공이 가능하단 점에서 나나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을거였다 .

 

나나가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된데엔 그녀를 입양한 양부모들의 이력에 그 까닭이 있다 . 늘 스크린 뒤쪽 세계의 이야기들에 매혹을 느끼던 앙리는 쉰여덟의 나이에 전신에 퍼진 암과의 싸움에서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포기한 후 나나에게 마지막 꿈에 대해 말하길 "나나, 나는 우리가족의 기원에 대해 찍고 싶었어 ."  그랬다 . 그러니 이 한국행에서 서영과의 작업기록은 동시에 앙리와 리사 그리고 나나 자신을 위한 가족의 기원을 담는 일이기도 한 의미있는 일인것이다 .

 

한국에서의 이름이었던 문주 역시  그녀의 본명인 것은 아닌데 , 그녀가 6살 무렵 철로에서 배회하는 걸 기관사가 운행중에 놀라 급정거를 한 후 실종아동의 신고가 있는지를 계속 찾고 고아원의 안전성을 확인하기까지 한달이나 임시로 자신의 집에 보호를 하고 있었던 건데 근 한 달간의 이름이 기관사가 지어준 문주였던 것 .이후 카톨릭재단의 고아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 나나는 그때의 그 기관사의 마음이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찾고 싶은 모양이다 . 그전의 기억 , 그러니까 왜 철로에 서 있었나 하는 것들은 물론 전혀 알수 없는채 ...

 

서영은 적극적으로 철도청의 나이와 연대를 추정해 추적을 해가고 지루한 볏집에서 바늘찾기 같은 일이

반복되지만 단서는 찾게된다 .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알수 없는 것들만 남았다고 하며 이 소설도 끝이 나는데 , 알고 싶지 않은 건지 , 독자에게 턴을 넘기고 상상하고 픈데로 재회를 맡기겠단건지 모르게

끝이 난다 . 다만 나나가 임시숙소로 머무는 서영이 제공한 곳의 일층에 위치한 복희가게에 할머니가 마

지막날 상을 당한다 .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 할머니에겐 아무도 없었는지 가게 살림살이가 마구 드러난 상처들 처럼 벌려놔져 있는 상태 . 그 와중에 거울을 보며 왠지모를 위안을 받는 나나를 그린 엔딩이 힌트일까나......,

 

앙리는 영화의 주인공이름에서 나나를 따왔지만 , 영화주인공이란 설정도 그렇고 , 한자에서나 , 우리 말에서도 나는 나 (我 ) 자기가 넘치고 넘친다 . 스스로를 잃을 일은 없어보인다는 얘기랄까 . 그러니 그녀가

글 속에서처럼 먼지 같은 이름일까 괜한 생각은 안해도 될 것만 같다는 희망적인 생각 , 또 , 먼지같다는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어디든 있는 먼지 , 그 조차 의미를 갖기 나름같아 나는 나쁘지 않았다 . 이름이 없어 무명 (無名) 이란 설정의 주인공도 더러 만나곤 하는데 , 물 컵의 반이나 남았네 ! 처럼 좋은 것들로 해석을 한다. 한데 나나의 경우는 어디가든 끝까지 그녀를 잡고 놓지 않으려던 사람들이 있어주었으니까 ,

그 기억이면 문주라는 이름을 주었었다는 기억이면 이미 된게 아닐까 ,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 그래도 성인이 된 후 태어나 자랐던 나랄 한번 찾는다는데 의미있었을 거라고 등을 다독여 주고 싶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있나요 -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형서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출판사 편집부에 일하는 김수정이 만난 이상한 사람 윤 , 그는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블로그에 미술에 관한 잡다한 글을 연재하는데 , 그 방식이란게 대게 자기만의 이해나 해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가 특히나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애호하는 건 현대작가 중 현석경의 작품에 대해서인데 , 팀장은 윤의 글로 책을 내기를 원한다 . 그래서 계약을 하거 원고를 받아야하는 입장이 김수정의 일이고 입장인 듯싶다 .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 가까이 하고싶진 않을 부류로 윤을 그리는 김수정 . 만나면 어쩐지 불쾌하게 끌려다니는 기분에 손해보는 심정이드는 이상한 심보마저 생긴다 . 왜 이런 걸까 ... 괜히 준것 없이 미운 그런 사람인가 ... 뭐, 봐도 주변의 배려라곤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긴 한다만 ,  출판사에 책을 내는 조건으로 만나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하루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는 돌아보면 그날의 소득이 없는 경우라서 불쾌한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 계산을 하고 그러는지 , 아니면 당연하게 받을 거니까 그렇게 해온건지 모르게 어쩐지 밉상인 윤 . 만나며 시원하게 글을 주겠다는 답조차 없는 상태로 수정은 내내 답답하고 , 현석경의 전시 작품 운디드 버드를 보며 우는 윤을 보곤 대체 울어야 하는 맥락을 모르겠다고 . 생각한다 .

자신의 일에까지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수정 . 마침내 윤은 원고를 주겠노라며 만남을 약속하고 나갔는데 현작가의 집에 자료가 있으니 받으러 가야한단다 . 현작가는 내용은 잘 봤다고 하면서 ... 정작 글은 읽지 않았다고 한다 . 아무리 사정을 해도 . 이래서야 책을 내는덴 힘들 것 같다 .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으므로 허가 내용이 있어야 내용들을 쓸 수있는 탓인데 , 끝내 답이 없다 .

 

결국 작가의 작품 속 "운디드 버드"를 찾다 ㅡ오리지널리티를 찾아 진짜 새를 보러 가겠다는 이야기인 모양 .

 

"원래 예술가들이 그래 , 오리지널리티 같은 것 , 그런 것에 대한 망상들이 있지 ." (53 쪽 본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있나요 -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형서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박형서 : 거기있나요
제10회 2016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연구윤리심의위원회'에 회부된 한 사례로 이는 광조교에 대한 이야기 이다 . <그는 진화동기재현연구> 에서 진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 에 몸담고 있었으며 어느날 부터인가 성실함을 버리고 광폭해지고 한마디로 미쳐버렸는데 그 광기를 추적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광조교는 연구원의 신분으로 자신이 다룰수있는 연구자료를 독단으로 폐기치 않고 실험을 한다 .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로 변형을 해보는 정도였을 장난으로 사소한 일였을게다 . 일테면 '방향성 조작' 에 이 버려진 두 함수를 동원한 일이 그렇다 . 그러나 인류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이 "방향성 조작"의 일은 그리 단순한 조작이랄 수 없을 것 같다 .
여기선 미시우주계 , 음 , 메인 컴퓨터에 연동을 시킨다고 하는걸 보면
소드 아트 온라인 세계가 연상이 되기도 하는데... ( 응? ) 암튼
그가 한 일은 감응입자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진화폭발조건에 변화 를 초래하고 돌연변이를 낳는 결과를 가져온다 . 그 돌연변이는 고의적 동족 집단 살해까지도 가능한 퀴크들이고 고도의 정치적 행위와 언어 , 계층 이른바 사회를 구성하기까지하는 입자들이다 .

이 쿼크들에게 빛이란 신같은 존재로 광조교의 역활이기도 했는데 ,
그는 퀴크들의 속성과 움직임에 반해 혼자서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자기만의 이유를 들어 상벌을 내리는 연구 아닌 놀이를 한다 . 이게 지나쳐 연구 전체의 프로젝트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연구의회에서
그를 취조하여 직위 해지해버리자 , 그 대신 들어온 선임연구원을 살해하기에 이르고, 곧 순순히 붙잡힌다 .

나중에 연구원들은 그의 행위를 두고 악의적이니 , 처음부터 악의는 아니었을 거라는 둥 , 의견이 분분 하다 . 광조교는 특히 독립적인 T 쿼크들에 집착했다 . 그들은 쉽게 꺽이지 않는 고고한 정신 같은데가 있었고 귀족같았다 . 밀면 미는데로 우르르 몰리는 하급계층의 의식 과는 다른 면들을 보이는 그들의 행위가 자꾸 광조교의 의식에 거슬 렸다고 나온다 . 권능이란 속성이 그런가 . 그런 걸로 보면 이 세계의 신은 참 지혜로운 신이구나 싶다 . 그 신도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런 단계까지 온걸까 ...
하긴 신이 궂이 하지 않아도 인간들 스스로 무시무시한 공포의 역사 들을 써가고 있는데 손을 쓸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 거기있나요 는 복잡한 물리적 용어와 양자역학적 공간을 빌어 얘길하지만 단순 하게 사람살이로 대입해 놓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 줬다 뺐었다 . 폭정을 하는 정치인 , 국민들과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미시우주계 는 미시간주로 쯤으로 얼마든 대치해 놓고 볼 수있다는 얘기랄까 ..

그리고 , 거기 있나요 ㅡ는 소멸해간 쿼크들이 소멸단계에서도 내내 읊조리고 있던 문장이라고 한다 . 이게 참 아이러니다 . 이들을 소멸 시키려고 특별히 고안한 의사소통교란계는 17개의 중심언어 중 9개 의 사어 와 비루한 교착어를 골랐다는데 . 이 쿼크들은 그 짧은 순간 에도 음성과 음률을 끊임없이 개편해 형벌의 패턴에 깃든 초월적 존재 ( 광조교) 의 '암시' 를 집.요.하.게 . 관찰 하고 추론하여 이를 언어적 형태로 재현해왔다는 것 . 거기 있나요 ... 광조교는 거기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는 의미심장함과 함께 . 대체 당시의 그는 누구를 향해
거기 있냐는 물음을 계속 했던 걸까 ?! 광조교 역시 쿼크들의 존재를
보며 신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닌지 , 끝내 그의 정신의 미시우주계로 연행 (?) 되었고 육체만 남아 텅 비어버린데 이 쿼크들의 그 주술같은 문장의 파동에너지가 모종의 힘이 작용한건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해본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