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스탠드 꿈꾸는돌 32
추정경 지음 / 돌베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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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다른 이의 삶과 행동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역지사지’, ‘ Put yourself in My shoes’ 등의 관용어가 가리키듯 타인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은 만국 공통이다.내 이름은 망고,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자매등으로 알려진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한다. VR이라는 가상의 배경과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버무려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경주에 완주가 있을까?

주인공 목훈은 VR을 기술을 이용한 재활 의료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타트업의 대표이다. 요즘 그를 괴롭히는 문제는 주력 분야가 아닌 멸치잡이 승선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체험판으로 제공한 서비스였지만 고객 함회장은 예상외로 재활 프로그램보다 멸치잡이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이며 수정 요구를 한다. 실제 바다와 생생한 조업 환경을 겪어본 후 프로그램을 수정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승선 프로그램을 고집하는 이유 속엔 뱃사람이던 시절 함회장과 목훈의 아버지 사이의 옛 인연이 숨어 있다.

 

목훈에게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하고 가정을 황폐화시킨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아버지는 그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괴팍한 노인이 되었지만 미워하지 않는 척하는 부자 사이의 앙금은 여전하다. 그러나 목훈은 직접 배에 오른 뒤 고된 노동 현장에서 생을 두고 펄떡거리는 치열함을 경험하고 아버지의 가장 아름답고 치열했을 시절을 들여다보게 된다. 유능한 어로장이었으나 단 한 번의 사고로 비틀려버린 아버지의 반쪽 인생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 왕도가 있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사회생활을 알 수 없고 부모가 자녀의 SNS 계정 속을 다 알 수 없듯이 우리가 보는 것은 상대의 단면뿐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이해 속에서도 서로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생겨난다. 이해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므로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상대의 심연을 향해 내려가 보는 노력이 바로 언더, 스탠드!

어쩌면 이해한다는 것은 힘겹게 에베레스트 봉우리를 오르는 일이 아니라 심해의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말하는 ‘이해‘의 진짜 속뜻은 ‘너의 상황은 알지만 너의 감정의 깊이는 모르겠다‘에 가깝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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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많은 돼지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 식량위기 시대 잘 먹는다는 것에 대해 나의 한 글자 8
후루사와 고유 지음, 형진의 옮김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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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드넓은 밭에서 수확된 옥수수가 커다란 배에 실려 한국의 사료 공장으로 향한다. 공장에서는 옥수수와 함께 페루에서 온 어분, 브라질산 대두 등을 섞어 돼지 사료로 가공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료는 국내의 축산 농가로 팔리고 이것을 먹고 자란 돼지의 원산지는 국내산으로 표기된다.

 

전 세계의 먹을거리는 연쇄 작동하고 있다. 유럽의 빵 창고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밀 가격 폭등은 밥상 물가를 휘청이게 한다. 식품산업의 공업화, 무역시장 개방, 편리한 유통망은 식량의 대량 생산과 풍족한 소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대한 이익 창출을 위해 주요 곡물과 상품 작물 위주로 국제 분업화가 진행되고, 글로벌 곡물 메이저 기업과 일부 국가의 지배에 가까운 독점 구조가 형성되었다.

 

누군가를 잘 먹이기 위해 누군가는 굶주린다. 가난한 나라는 거대한 농지가 있지만 국제 시장에서 수출이 잘 되는 작물 위주로 재배하다 보니 정작 식량은 부유국에서 수입하는 상황에 놓였다. 식량 공급의 불안정성은 빈곤층의 식량 위기를 초래했다. 먹을거리를 둘러싼 위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산성을 강화한 슈퍼 품종은 식량 자원의 다양성을 사라지게 했으며 무분별한 경작지 개척은 자연을 파괴한다.

 

저자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식량 분배의 불균형과 해결 방식을 대화 형식으로 쉽게 짚어 준다. 무엇보다 지역 내에서 먹을거리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순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철 먹거리 즐기기와 버려지는 식품을 활용하는 식품 재활용, 조경수 대신 과실수를 심는 먹을 수 있는 경관 운동까지 다양한 실천법도 소개하고 있다.

 

수만 리 밖에서 온 농산물이 우리 땅에서 나는 것보다 값이 싸다면 거기에는 환경 파괴나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 같은 불편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와 연결된 세계 질서의 이면을 찬찬히 톺아보자. 식탁 속 연결고리의 비밀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생존 앞에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 만들기가 시작된다.

절대적인 먹을거리 생산량은 확보되었는데 여전히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들은 없어지지 않는 모순.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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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이 말했다 - 2021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 영어덜트 부문 대상 수상작 스토리잉크 1
제레미 모로 지음, 이나무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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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아낌없이 주는 나무』,『어린 왕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을 준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읽을수록 곱씹을 거리가 있어 많은 이가 인생 책으로 꼽곤 한다. 앞선 작품들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이 책도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2021년 볼로냐 라가치 만화 부문 영어덜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얼핏 연두색과 연보라색의 화려한 표지, 커다란 판형, 그래픽노블 구성은 영락없이 어린이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개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접근과 통찰, 우주론적 관점은 어른도 쉽게 답하지 못할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첫 페이지를 열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물소와 혀를 날름거리는 코모도왕도마뱀이 등장한다. 물소는 혜성 충돌로부터 모두를 구하기 위해 몇 년째 섬을 밀어 옮기는 중이다. 이를 알지 못한 코모도왕도마뱀은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물소의 다리를 물어 치명상을 입힌다. 도마뱀은 물소가 숨을 거둔 후 땅에 묻어 아무도 먹을 수 없게 만든다. 한 존재의 숭고한 죽음이 자연의 순환 법칙과 부딪힐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대한 현자 표범 소피아의 판결을 듣기 위해 동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서로 다른 여섯 개의 이야기 속 동물들은 저마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와 마주친다. 주어진 상황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우연히 스치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찌르레기 투르노, 아기 코끼리 메모, 타조와 소라게 등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나이와 종(種)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목표, 방향과 속도를 찾아 여정을 떠난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보이고 감동의 파장이 커져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 혼자 읽기에도 좋지만, 독서 모임에서 함께 다뤄보기를 권한다. 나의 삶과 당신의 삶, 그리고 공존의 삶을 위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봐요, 솔직히 이제 난 당신이 날 좋아하든 말든 관심 없어요. 난 살면서 지금까지 남의 말을 너무 많이 들었죠. 오늘은 내 말을 듣기로 했어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속도로 갈 거예요."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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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란 저렇듯 느닷없이 타인을 포용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일까.(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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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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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내듯, 도려내듯 써 내려간 작가의 마음이 담담한 문체에 절절하게 담겨있다.
안중근을. 시대의 역사를, 지금의 역사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 처절하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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