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말 엔시 씨와 나 시리즈 1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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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도 다양한 하위 장르가 있지만 일상 미스터리도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목부터 대놓고 커밍아웃한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비롯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여러 작품들을 비롯해

종종 일상 미스터리 스타일의 작품들을 만나곤 하는데 솔직히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름의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지라 수위가 높은 작품들을 읽고 나서 마음을 정화하는 기능도 했다.

이 책은 나오키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본격미스터리 대상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기타무라 가오루의 일상 미스터리의 전설같은 작품이라고 해서 과연 어떤 작품이기에

이런 평가를 하는지 기대가 되었다.

 

추리소설의 공식이라 할 수 있는 홈즈와 왓슨 콤비가 이 책에서는 라쿠고 예능인인 엔시 씨가 탐정

역할을, 여대생인 화자가 조수 역할을 맡고 있는데 총 5편의 단편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진다. 일본 특유의 이야기 예술이라는 라쿠고는 화술을 기반으로 예능을 펼치는 거라는 데 잘은 모르겠지만

일본 전통 만담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암튼 라쿠고를 좋아하는 여대생 주인공 나는 교수님의 소개로

라쿠고 장인인 엔시 씨를 만나 다섯 개의 일상 미스터리를 해결하게 된다. 교수님의 트라우마에 얽힌 진실을 시작으로 해서 홍차집에서 벌어진 기묘한 장난의 실체, 여행지에서 발생한 차 시트커버의 분실,

동화 '빨간 모자'를 소재로 한 빨간 모자 소녀의 정체, 크리스마스 선물인 목마에 얽힌 비밀까지 

그야말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들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사실 추리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토리들은 살인사건이 바탕이 되어 범인이나 범행과정,

범행동기가 뭔지를 맞춰가는 재미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일상 미스터리는 왠지 좀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고 진지한, 비장감이

결여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사람의 생사와 인생을 두고 벌이는 범인과 탐정의 한판 대결에

비하면 마음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덜하다고 할 수 있는 반면 나와는 무관한 얘기가 아닌 주변에서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얘기라는 점에서 좀 더 피부에 와닿는 얘기들이라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나 악의에 찬 장난질, 절박한 심정으로 저지르는 일들은 세상을 살다

보면 충분히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인데 이 책에선 마치 아빠와 딸같은 엔시 씨와 여대생

주인공이 절묘한 호흡으로 차분하게 묘한 사건들의 진실을 풀어나간다. 일상 미스터리라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얘기들이 담겨 있지도 않고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었는데

시리즈의 후속편인 '밤의 매미'에선 두 사람이 어떤 얘기들을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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