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스티븐 존슨 지음, 홍지수 옮김 / 프런티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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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얼마 전에 읽었던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앨리스의 '원더랜드'와는

전혀 무관한 전에 읽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책의 저자 스티븐 존슨의 책으로,

요한 호이징가가 '호모 루덴스'라고 정의할 정도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지만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 놀이의 중요성을 패션과 쇼핑,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흔히 필요가 발명을 낳고 인류의 문명을 현재처럼 고도로 발전시켰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놀이와 유희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가 창의력의 동력이 되었음은 쉽게 간과된다.

이 책에선 패션과 쇼핑, 음악, 맛, 환영, 게임, 공공장소라는 여섯 개의 분야를 중심으로

놀이의 역사가 인류의 문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대개 역사는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으로 서술되지만

얼핏 하찮아 보이는 발명품 가운데 진지한 역사의 영역에 큰 변화를 일으킨 발명품들도 많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벌새 효과'라고 명명하는데, 커피 맛은 근대 언론 기관 탄생에 도움을 주었고

우아하게 장식된 몇몇 포목점은 산업혁명을 촉발시켰음을 보여준다.

유희를 추구하는 행위는 공유하는 문화를 통해 세계를 하나의 직물로 엮는 씨줄과 날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이런 행위들이 인류의 역사 발전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였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입증한다.

인도에서 수입된 직물인 무명과 옥양목이 영국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영국 발명가들이 면섬유를 대량생산할 기계를 발명하기 시작해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증기기관의 제임스 와트로 대표되는 기존의 산업화의 정설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원전 3만 3천 년 것으로 추정되는 뼈로 만든 피리는 인류가 태초부터 생존과 무관한 음악을

즐겼음을 보여주는데, 소리 내는 도구가 천을 짜는 방직기로, 건반악기에서 키보드와 디지털 혁명으로

이어진 사실을 보면 음악을 즐기는 인류의 취향이 현재의 디지털 환경의 촉매제가 된 것 같다.

향신료와 관련해선 전에 읽은 '밀수 이야기'에도 등장했던 프랑스 밀수업자 피에르 푸아브르의

얘기가 나와서 반가웠는데, 로마제국의 멸망에 후추 수입에서 생긴 적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향신료 맛에 매료된 유럽인들이 향신료를 찾기 위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됨으로써 기존의 세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한 탐험을 하게 만드는 데 향신료가 없어서는 안 될 동력으로 작용했다.

영화, 게임, 놀이동산 등 우리가 현재 즐기는 오락거리들은 놀라움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의 산물로

놀이가 인간으로 하여금 생물학적 욕구와 무관한 새로운 문화 제도와 관행과 시설을 구축하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은 기존에 폄하했던 놀이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일깨워주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오늘날의 문명을 낳게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보여준 이 책은

그야말로 놀이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수 있었는데, 역시 저자와 같이 생각의 틀에 갖혀 있지 않은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한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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