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사라지는 시대 - 디지털 기억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
애비 스미스 럼지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각종 기술의 발달로 굳이 머리 속에 기억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기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못 외우고 노래도 자막을 보지 않으면

부르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면 과연 디지털 시대에 우리의 기억들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책은 디지털이 주도하는 경제 체제에서 인간 기억의

의미와 역할을 인류 역사를 통해 다각도로 분석하는데 정보 인플레이션 속에서 기억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게 해준다. 먼저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얘기에 대해 인간이 호기심으로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 대신 호기심에 기한 지식을 선택함으로써 에덴동산에서의 안락한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혜에 기대어 먹고살게 되었다는 해석인데 종교적인 관점보다 훨씬 진화된 해석이었다.

문자의 발명도 인간의 취약한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는데, 현존하는 최초의 설형문자는

점토판에 기록하면서 사용되었지만 보관과 관리의 문제가 발생하자 더 많은 정보를

더 간편한 방법으로 기록할 방법을 찾게 되고 지식 조직화로 기술 혁신을 낳게 되었다.

이렇게 문자의 발명과 지식의 확산은 자연스레 기억의 외주화를 초래하고 도서관이 발달하게 되었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문자의 발명이 무지와 궁극적으로 기억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스마트폰을 비롯해 각종 매체에 의존하며 기억의 외주화에 완전히 푹 빠진 요즘 사람들에게 딱 맞는

충고가 아닐까 싶다. 인쇄술이 발달하자 기억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천년 동안 중세를 지배하던

가톨릭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그동안 소수가 독점한 지식과 정보를 책과 신문 등을 통해 대중이 공유하게 되면서 인류의 문명은

고속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보편 도서관을 꿈꿨던 토머스 제퍼슨 등 역사속 인물들의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는데 인간의 기억이 인류의 역사속에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디지털시대를 맞이해 정보를 기록하는 능력이 극대화되었지만 정보를 관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기대만큼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날로그식으로 기록된 지식에 비해 디지털화된 기록은

실수로 삭제하는 등 손상되기가 너무 쉽고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만든 자신의 기록들은 그 사이트의

운명에 따라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한때 열풍이었던 싸이월드가 점점 시들해지더니 작년엔

결국 미니홈피 서비스가 대폭 개편되면서 그동안 남겼던 방명록 등의 흔적이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자신이 여기저기에 남긴 글이나 댓글 등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서 데이터의 보존과

관리를 인터넷 업체들이 하고 있는 현실인데 디지털 시대에 기억을 어떻게 처리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인류 역사에 있어 기억의 의미가 어떻게 변천

했는지를 풍부한 사례로 담아냈는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볍게 생각했던 기억과 정보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