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다 보니 각종 단체에서 선정한 우수도서 목록이나

유명 인사들이 추천한 도서 목록에 늘 관심이 간다.

그 목록들이 나중에 읽을 책을 선택하는데 나름 도움이 되곤 하는데

어떨 때는 나완 전혀 취향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암튼 다른 사람들의 독서 취향을 엿보는 재미가 솔솔한데

이 책은 대놓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빨간 책'에 얽힌 사연들을 얘기한다.

'빨간 책' 하면 왠지 음란하거나 불온서적이 아닐까 싶은데 꼭 그런 책들은 아니지만

보통 권장도서라 꼽을 수 없는 책들도 간간히 포함시켜 색다른 구성이라 할 수 있었다.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진행하고 있는 세 명의 라디오 피디가

자신들을 사춘기 소년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준 불온서적들과 이에 얽힌 사연들을 담은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이 소개하는 자기 인생의 책들과는 사뭇 다른 책들이 등장하곤 한다.

대표적인 책이 우노 고이이치로의 '황홀한 사춘기'와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월간 핫뮤직이 아닐까 싶은데, 앞의 두 책은 혈기왕성한 남자청소년들의 성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에 나름 이해가 되었는데 월간 핫뮤직은 나도 한때 정기적으로 구입해서 봤기에

애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닌 데다 

팝 전문지도 없던 상황에서 팝을 즐겨 듣던 내겐 핫뮤직이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음악으로 먹고 살 생각을 했던 저자에겐 교과서와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소개한 책들 중에 내가 읽은 책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정도가 내가 읽은 책이어서

이 책들을 다룬 대목에서는 좀 더 공감이 갔다.

흥미로운 건 어떤 책에 얽힌 얘기를 하더라도 대부분 한 책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관련된 여러 책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왔다.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영향을 준 책들은 감수성에 영향을 주는 자극적인(?) 책들이거나 장래희망에

영향을 준 책들이 많은 반면 어른으로 성장에 도움이 된 책들은 세상을 비판적으로 다룬 책들이 많았다.

물이 100도에 끓듯이 사람도 100도에 끓는다는 최규석의 '100 ℃'나 정현웅의 '마루타',

실비아 플라스의 '아빠' 등은 쉽게 손이 안 갈 책이긴 하지만

내가 모른 채 살아왔던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잘 드러낸 책들이라 할 수 있었다.

만화책인 아다치 미츠루의 'H2'나 국내 장르문학를 대표하는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

시드니 셀던의 '최후 심판의 날의 음모'처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장르문학이나 만화 등도

다루고 있는 점에서 유연하고 폭 넓은 취향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세 명이 고른 책들임에도 왠지 한 사람이 고른 책인 것 같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구성상으로 세 명이 번갈아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선택한 책인지 의식하지 않고 보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아무래도 비슷한 성향이라 같이 책도 내고 방송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런 책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느낌을 가지는구나 하는 걸 몰래 엿보는 듯한 재미도 있고

어떤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 책들에는 과연 어떤 책들이 있는지 알게 되는 재미도 솔솔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은 전형적인 고전들과는 좀 거리가 먼, 그야말로 사심이 가득 담긴 책들인 데다

세 명 모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로 보여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간접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빨간 책'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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