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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열렬히 리커버 되는 경향에 있어서 덩달아 나도 그간 못 읽었던 그의 과거작품들을 뒤늦게나마 구독하게 된다. 비록 게이고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하나 함부로 대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항변 깉기도 하다. 그런 만큼 엔지니어였던 게이고가 이 소설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함으로서 작가 전업에 나서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해서 새삼 더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마에시마는 사립 세이카 여고에서 수학교사이자 양궁부 고문으로 재직중인 남자다.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특별하지 않은 게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막연히 그냥 해볼까라는 게 다였다. 열의가 느껴지지 않는 달까, 좋게 말하면 꼰대스럽게 학생들을 지도 감독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것 같지만 단지 간섭하지 않을 뿐인 것인 교사인 것이다. 기계적인 티칭은 머신 같다. 누가 봐도 평범하고 유약한 그는 남들의 관심이나 주목을 못 끄는 만큼 평온한 일상을 누릴 것 같은데도 의외로 알게 모르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지하철 역 플랫폼에서 누군가 고의로 밀거나 샤워실에서 감전 사고를 당할 뻔 하거나 위에서 누군가가 화분을 떨어뜨린다, 같은 살해시도는 그를 움츠리게 한다. 게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는데 교사용 탈의실에서 다른 교사가 독살당하고, 학교 축제 가장 행렬에서 자신 대신 삐에로 분장을 한 또 다른 교사가 다시 또 독살당한 채 발견된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고 직감한 마에시마는 혼자 전전긍긍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오타니 형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로부터 원한 살만한 짓을 한 적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선 두 살인사건의 트릭과 의심 가는 인물들의 알리바이 깨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가설과 추측만 난무할 뿐, 뾰족한 실마리가 없다. 먼저 제시된 가설 중에는 현실적으로 참 그럴 싸 하단 생각이 든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결국 범인을 밝혀내려면 살인동기가 있어야 한다. 맑고 투명한 세븐사이다 같을 여고시절에 있어서 그 어떤 살의가 있을 텐가? 돈이나 치정 기타 살인동기로 추정할 만 한 것들은 모조리 어른들의 세계에서나 짐작할 것들이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밝혀진 트릭은 책 표지가 복선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구체적인 실행방법은 의외로 쉽고도 여전히 헤아리기 힘들 수도 있었다.
마에시마를 위협하던 실체가 가진 미스디렉션도 괜찮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인간의 증오와 원한은 개개인의 가치판단으로 성급하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대상들이다. 그것이 여고시절에는 더욱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 살인동기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나 이해타산으로 맺어진 어른들의 메마른 관계를 부끄럽게 만들 찬란하고도 순수한, 그리고 그 어떤 무엇이 분명히 있더라. 조금 감동적이었다. 법의 기준과 공익성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는. 더불어 이것으로 정리되나 했는데 보너스 같았던 추가 반전이란.....
타인에게 관대함이란 공명정대란 단어와 동의어가 아니란다. 무심함이란 가면을 쓴 그 이면에서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할 악의가 이렇게도 싹틀 수 있구나 란 점에서 간담을 서늘케 한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할 정도로 무척이나 인상적인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