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키케로도 편지를쓰거나 받는 것을 좋아했다. 서른한 살이 된 그해 이전부터도 그는 편지 쓰기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가 끊임없이 편지글에 쏟아부었던 노력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 것은 서부 시칠리아에 머물던 그 시기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그와 박식한 금융가 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가 꾸준히 주고받았던 편지 덕분이었다. 아티쿠스가 로마의 모든 인물과 사건에 관한 정보와 떠도는 소문을 꾸준히 전해주었기 때문에, 릴리바이움에 고립되어 지내는 여러 달 동안 키케로는 외로움을 달랠 수있었다. -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