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목민심서 1~7 세트 - 전7권 역주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옮김, 임형택 교열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돌아가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목민심서는 다산 선생 혼자서 저술한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만든 책이며, 이책이 완성되자 제자들은 이 책을 스승에게 바쳤다. 목민심서는 탄생은 다산과 조선 민중의 고통에서 시작했지만, 다산 서거 후 다산과 제자들의 후예까지 고통을 받았으니 얼마나 소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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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1-2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보헤미안 랩소디>란 영화가 나올 때, 나는 문득 1사람이 생각이 났다. 그의 이름은 데이빗 보위, 영국 글램락의 대부이자, 상당히 멋지고 잘생긴 미의 노인(老人)이다. 그가 생각난 이유는 그의 노래보단, 퀸의 곡 중에 “Under Pressure"이란 곡에서 데이빗 보위가 프레디 머큐리와 듀엣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머큐리의 고음 속에 왠지 모를 감칠맛 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머큐리의 고음에도 중후한 목소리가 허밍의 조화는 상당히 인상이 깊다. 물론 “Under Pressure"는 프레디의 목소리보단 처음 베이스기타의 둥둥둥 둥두둥둥 하는 소리에 감이 온다. 퀸은 프레디의 맨 파워가 강한 것은 사실이나, 기타리스트나 드러머, 물론 베이시스트 역시 실력을 갖추었다.

 

단지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 그가 가진 음악적 센스, 더 나아가 관객과 하나 되는 그 열기가 퀸이란 그룹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퀸이란 그룹이 영국과 세계에서 활약한 시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이다. 이때 세계는 락의 전성시대였다. 보통 사람은 퀸은 어느 정도 알지 모르겠으나, 락을 아는 사람들은 퀸보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퀸의 실력이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퀸은 보컬리스트 머큐리의 카리스마가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와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 드러머 존 본햄의 연주력이 더 돋보였기 때문이다.

 

레드 제플린의 “Moby Dick"을 들으면 많은 충격이 온다. 보컬의 목소리와 기타의 에드립은 멜로디의 음악적 흐름을 느끼지만, 드럼은 멜로디보단 박자의 비트감을 준다. 그런데 “Moby Dick"을 들으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드럼이 중심이 되어 기타와 베이스 음이 진행된다. 더구나 라이브 10분짜리를 연주를 들으면 더 놀란다. 뜬금없이 레드 제플린이 나온 이유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제목처럼 "Bohemian Rhapsody"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오페라에 팝송 락을 이래저래 뒤죽박죽 섞어 넣었다. 클래식에 락을 이래저래 오고가는 과정에서 레드 제플린의 곡을 들으면 여러 가지 장르를 뒤섞은 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레드 제플린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지미 페이지는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 에릭 클랩튼, 제프 벡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다. 물론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도 훌륭한 기타리스트이다. 다른 기타리스트들을 보면 펜더 스트라토 캐스터 또는 깁슨 레스폴 전자기타에 마샬 앰프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는 VOX 앰프에 자신만의 기타를 사용한다. 기타 사운드나 베이스 음에서 같은 음을 내더라도 기타의 나무재질과 픽업, 그리고 앰프와 이펙터에 연결하는 것에 따라 사운드가 천지만별로 나온다.

 

그래서 음악이 재미있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기타와 앰프를 들고 같은 곡을 연주해도 그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음악은 엄청난 개성을 가지게 된다. 퀸의 노래는 계속 들리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의 퀸은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퀸은 프레디 머큐리로 시작했지만, 결국 퀸이란 밴드로 계속 이어져왔다. 데이빗 보위를 추모하는 이유는 그가 2년 전 암으로 세상을 타계할 때, 그가 프레디 머큐리와 노래를 같이 부른 보컬이란 점, 프레디 머큐리 사후 “Under Pressure"를 다른 가수와 부를 때, 퀸의 멤버들과 같이 공연에 올랐다는 점이다. 퀸의 대단함은 바로 이런 것이다.

 

메인 보컬 천재 싱어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에 없더라도 퀸은 사라지지 않고, 그들만의 음악적 감각을 관객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머큐리가 없어도 머큐리를 좋아하는 보컬과 관객이 있다면 얼마든지 모일 수 있는 게 퀸이다. 다행히 멤버들이 건강하고 자주 모이는 게 중요하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처음 시작은 프레디 머큐리와 브라이언 메이의 주도로 시작한다. 그 옆에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있었고 후에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영입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란 인물이 가난한 이민자 노동자에서 성공한 보컬리스트로 보여주는 과정을 그린다. 단순히 그의 성공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의 절망과 고독 더 나아가 죽음에 대한 딜레마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에게 단순한 벽에 불과했다. 그에겐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의 열정은 왜 인간에게 희열과 감동을 주는가? 음악이란 인간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1편을 2~3번만 봐도 지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음악은 어느 곡을 매일 1번씩 들어도 지겹지가 않다. 음악이란 우리의 귀를 통해 머리로 들어와 상상력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바로 이런 음악적 요소를 영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 주옥같은 퀸의 노래가 나오면서 관객 중에는 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 이게 퀸의 노래이었구나! 하는 것은 모두 다 느꼈을 것이다. 영화는 재현성을 매우 충실하게 구성했다. 프레디 머큐리가 멤버를 떠나 혼자 활동할 때 에이즈에 감염되고, 외로움과 적막함에 힘겨워 했을 때, 우연히 자선모금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멤버와 만나고,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도 합주를 막상 진행하니 모두 잘 맞아 떨어졌다.

 

합주나 공연은 오랜 연습을 해야 좋은 사운드가 나온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시작하면 제대로 사운드가 잡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공연 전 연습에서 곡은 다 맞아떨어졌다. 단지 프레디의 건강과 컨디션만이 관건이었다. 공연 본방송이 시작할 때 프레디의 진가는 드러나고, 모든 관객과 TV앞의 사람들은 퀸의 음악에 빠진다. 음악은 나만 좋은 게 아니라 모두 다 같이 즐기고 느끼는 게 최고이다. 물론 어느 유명한 가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삼류는 관객은 멀쩡한데 가수만 흥에 취할 때, 이류는 관객과 가수가 같이 흥에 취할 때, 일류는 관객은 흥에 취하는데 가수는 멀쩡한 경우다.

 

그렇다면 퀸의 어느 뮤지션인가? 이류에 가까울지 모르나, 팬들은 자신들이 2류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퀸이 "We will Rock you!”처럼 관객을 흔들어 대는 것이 곧 반주가 되고 음악이 된다. 퀸의 곡이 좋은 곡이 많은 이유는 아마 그들은 많은 충돌과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머큐리는 본래 이민자이고, 가난한 노동계급이었다. 그 속에서 음악을 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사랑하는 여자하고 헤어졌다. 동성애와 마약, 알콜과 담배의 수렁에 빠진 프레디는 결국 에이즈란 최악의 질병에 걸린다.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는 그 순간에 그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오직 내가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다는 일념 아래서 말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동료들에게 말한다. 그가 솔로음반을 준비할 때, 다른 스텝들은 오직 내 말에만 따르지 그 이상은 없었다. 자신들의 의견은 없었고, 오직 기계적인 반응으로 작업만 진행할 뿐이란 점을 말이다. 서로 다투고 갈등을 빚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이란 다 자기만의 가치관과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그런 삶의 충돌로 서로에게 빠져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던 곡이 1년이 지나든, 10년 지나든 심지어 30~40년이 지나도 좋아하는 곡이고,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도 그 곡을 좋아하게 된다.

 

영화 제목처럼 <보헤미안 랩소디>이란 곡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곡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아직까지 어린아이였다. 그래도 나는 퀸을 알고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안다. 음악이란 그런 것 같다. 수 십 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알아주는 그 감동을 말이다. 그리고 그 감동을 만들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갔다는 것을 안다는 자체만으로도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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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20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탓인지 요즘 10대들한테 퀸의 노래가 상당히 인기가 만다고 하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8-11-21 11:03   좋아요 0 | URL
락이란 그런 강렬한 느낌이 젊은 친구의 하트를 잡는 게 아닐까합니다.
저도 고교시절에 그랬거든요

뒷북소녀 2018-11-20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꼭 봐야 할 것 같네요^^

만화애니비평 2018-11-21 11:03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신나는 영상과 음악~

겨울호랑이 2018-11-20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1년도 머큐리가 죽었을 때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네요...

만화애니비평 2018-11-21 11:04   좋아요 1 | URL
에이즈로 판단 이후 그 시기까지 살았다면 제법 머큐리도 많이 견뎌낸 겁니다. 그떄는 머큐리의 죽음이 충격이면, 지금은 머큐리를 모르던 이들이 그 음악을 들어 충격이겠죠

2018-11-21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1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시대 임금 중에 문장력(文章力)이 뛰어난 사람으로 세종대왕을 최고로 치고, 다음으로 정조를 꼽는다. 무예(武藝)를 생각하면 조선을 최초로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가장 뛰어나다. 그럼 다음 누구로 하면 좋을 것인가? 무예가 뛰어난 임금으로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조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가 장용영(壯勇營)이란 기관을 만들고, 직접 군사를 열병하여 지휘도 할 정도로 병무에 해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훨씬 무예가 뛰어난 것으로 기록된다. 사도세자는 직접 무예와 관련된 도서를 검토하고 제작하기도 하고, 실제 창과 검술이 뛰어난 인재였다. 게다가 사도세자는 무예를 뛰어넘어 문장력도 제법 있었다. 문무를 갖춘 왕이나, 문장보단 무예가 뛰어났다.

 

그를 노론에서 보자면 가시거리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똑똑한 것도 모자라 무예도 출중하면, 후에 왕으로 등극할 경우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왕은 현명한 임금은 몇몇 있지만, 그들이 있으면 어쩐지 권력층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임금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편한 용군(庸君)이기 바랐다. 최초의 용군인 중종(中宗)은 연산군 폐위에 대한 반정으로 임금이 되었지만,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갈등은 사림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시작하여 결국 조선망국의 원인이 되었다.

 

임금이 현명하거나 또는 침착하거나, 더 나아가 아주 무서울 경우 신하들은 곤란해 하였다. 조선은 농사가 주업이고, 많은 토지를 차지할수록 재산이 늘어 가는데, 그 재산은 대부분 착복의 결과물이다. 지방유림이 상소를 올려 농민이 어려움을 전하고, 수령의 가렴주구한 태도를 전달한다. 하지만 결국 상소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이미 그런 착복의 과정이 고관대신을 끼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하의 권력이 높으면 임금은 고민한다. 개혁을 추진하거나 문제 있는 정책을 수정하는 게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쟁의 역사도 한몫을 차지했다. 지배계급이 양반이었던 조선이지만, 양반이라도 모두가 지배계급이 아니다. 양반 안에서 벼슬하는 사람은 일부고, 혹은 지방에서 대지주로 있는 자도 일부다. 많은 양반도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하며, 때로는 훈장선생을 하며 글을 학동에게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다. 조선의 사회성이 가장 혼란하던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와 병자호란 전후라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동아시아 관계성에 크게 요동치던 시기이다.

 

그나마 임진왜란 승전국가로 돌아갔지만, 병자호란은 그렇지 못하다. 병자호란의 상처는 수십만의 조선인이 청나라로 피랍되어 돌아오지 못한 채 한스러운 삶을 마감해야 했다. 일부는 돌아와도 받아주지 않았고, 도망친 자는 다시 송환되어 더 심한 고초를 겪었다. 인조시대의 조선은 비참 그 자체였다. 조선의 무예가 뛰어난 임금이 누구냐는 첫 머리의 질문처럼 인조시대에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효종(孝宗), 봉림대군(鳳林大君)이다. 사도세자가 입었다는 그 갑옷은 원래는 효종이 입은 방어구였다. 뛰어난 무관조차 입어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그 옷을 효종은 임금이 된 후에도 자연스레 입고, 말 위에서 창을 휘둘렸던 무예의 왕이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직접 전쟁을 참전하여 군사들을 지휘하지 못한 것이다. 조선임금 중 전쟁에서 몸을 다진 자는 이성계와 그의 아들뿐이었다. 그나마 전쟁에서 군사를 지휘하며, 적을 물리친 자는 광해군에서 끝이 났다. 효종이 집권하던 시기를 보면 북벌론(北伐論)이 유명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주독립국가로서 조선이 아니라 청나라를 허물고 다시 명나라를 세운다는 헛된 망상이다. 임진왜란 이후 재조지은(再造至恩)은 병자호란에서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에서 끝이 났어야 했다. 아직까지 조선의 사대부는 자신을 소중화(小中華)의 후예라고 하여 청나라에 대한 압력을 거부했다. 아니라 정확히는 외면하거나 도망치려 했다.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 이후 많은 고생을 했다.

 

특히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돌아오는 것을 대해 긍정적인 반응보다 오히려 두려워했다. 청나라 황제가 자신을 폐위하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책봉하는 것을 말이다. 영화 창궐(猖獗)”은 미묘한 스토리와 소재를 역사적 사실에서 받아온다. 왕의 이름과 세자의 이름조차 다르다. 왜냐하면 창궐의 주인공은 강림대군으로 나오나, 그 실상은 봉림대군이다. 봉림대군과 소현세자, 그리고 2왕자의 동생 인평대군은 사이가 매우 좋은 형제였다. 특히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였다.

 

청나라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형은 외국문물에 눈을 뜨고 새로운 바람을 접했다. 동생은 그런 바람보다 오히려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했다. “창궐의 강림대군을 보면 단지 봉림대군의 무예만 받은 것 같다. 사실 강림대군의 형의 정신은 효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백성의 고통을 무척 생각했다. 심양에 끌려가서 어려움을 겪은 조선의 백성을 위해 노력했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려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신망이 있었고, 게다가 신문물을 전파하려 했기 때문에 인조에게 가시거리였다.

 

소현세자의 죽음은 미묘하다. 하지만 그의 시체를 염을 하러 간 왕실의 친척이 말하길 온 몸이 퍼렇게 물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독으로 중독되어 사망하면 그렇다. 독살의 가능성이 높으나 인조는 장례식조차 신속히 진행했고, 추후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는다. 아들 내외, 손자까지 다 죽는다는 사실은 이상하다. 하지만 조선의 효종은 이렇게 탄생한다. 권력에 집착하던 임금, 억울하게 죽은 형, 그리고 그 유지를 받아야 하는 효종, 영화에서 소원세자가 죽자 강림대군이 인천 제물포로 온다. 그리고 창궐의 습격을 받은 후 박종사관 일을 만난다. 강림대군이 궁으로 가면 세자가 되고, 다음 왕이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된다.

 

실제 역사에서 봉림대군의 동생 인평대군은 인조의 동생의 아들로 입양된다. 인조의 동생이 어릴 때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의 왕은 선조처럼 명종의 후사가 없을 때 종실에서 뽑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실부인에게 나오지 않은 왕은 권력이 미약하고, 종실에서 뽑힌 왕은 더욱 그렇다. 인조는 거기에 많은 콤플렉스를 겪었다. 아버지는 인조의 형제 1명이 역모에 연루되어 죽게 되자, 그 일로 너무 슬퍼 죽고 만다. 할아버지 선조는 자신만의 왕권을 위해 기축옥사를 일으킨다. 신하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고, 다시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갈린다. 서인은 숙종에 이르러 노론과 소인이 확실히 구분되어진다.

 

인조는 서인의 지원을 받아 왕이 되었다. “창궐이란 영화는 역사적 소재에서 찾아냈지만, 그런다고 그 설정은 모두 피해갈 수 없다. 조선의 절대적 악 김자준, 그의 소재는 어딜까?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인조반정에 가장 활약한 인물은 이귀와 김류이다. 특히 김류는 인조시대 영의정이 되어 많은 업적을 남긴다. 하지만 병조호란의 여파에서 그들은 광해군 시대보다 훨씬 덜어진 행동을 보여줬다. 김류의 이름이 생각난 이유는 병자호란 당시 김류의 아들, 김경징은 강화도로 피신한 왕족을 호위하던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호위업무에 태만하고 게다가 왕족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강화도마저 청군에 함락된 이후 그는 그 죄를 물어 사약을 받았다.

 

김류의 아들 김경징이 영화 창궐의 김자준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이유는 김류가 서인의 영수이고, 최고 권력에 있었던 점, 김경징이 만일 그때 사약을 받고 죽지 않았으면, 김자준이 연기한 병조판서를 할 정도의 나이였던 점이다. 인조가 집권할 때 서인의 집권시기이고, 서인에서 김씨 성을 가진 권력자는 김류였다. 물론 김류의 아들은 역모까지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행한 행동은 역적질이었다. “창궐에서 김자준의 직책이 병조판서라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 병조판서(兵曹判書)는 군사와 관련된 업무를 보는 장관이다. 무관의 임명부터 병력의 작전권까지 잡고 있다.

 

조선 최고 권력자는 왕이나, 왕 혼자서 모든 업무를 못한다. 영화에서 내금위장의 지시가 없으면 병력을 다시 궁으로 올 수 없다는 말처럼 어명(御名)을 받을 수 없거나 조치할 수 없다면 직책의 재량권으로 실행해야 한다. 병조판서가 무기와 병력을 관리감독하기에 병조판서의 승인 없이 병력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김자준이 왕궁 내 무기를 숨기고,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는 요건은 바로 병권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뒤 조선의 왕권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인조는 자신의 자리를 노린다면 그 누구도 용납지 않았고, “창궐에서도 그렇다. 아들인 소원세자가 청나라에 대한 타도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가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장면을 본다면, 오직 그 자리만을 위할 뿐이다. 김자준의 반란은 거기서 부터이다. 청나라를 우러러 보는 왕이고, 게다가 권력만 집착하며, 후궁과의 애정을 탐하는 왕이라면 아무 쓸모없다는 점이다.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세상을 보지 못하는 왕이라면, 결국 조선에서 그런 왕은 없는 편이 좋다.

 

김자준은 분명 역적이고, 난을 일으킨 절대적 악이나, 지금에서 보면 절대적 악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악이라도 그 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조시대 많은 사대부들은 인조가 청나라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인 이유로 산림에서 나오지 않았다. 광해군이 저지른 패륜을 징벌하기 반정을 일으켰으나, 그들 역시 패륜을 저지르고, 권력을 탐했으며, 백성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다. 상소문에는 작금의 시기는 혼군(昏君, 광해군)보다 더 어렵고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내용도 있었다.

 

백성의 위하는 왕과 신하는 거의 없었다. “창궐을 보면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어도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고 오히려 역도라 말한다. 강림대군이 사실을 고해도, 주변 신하들은 왕의 귀와 눈을 속인다. 백성이 오직 기다리는 것은 조정의 조치뿐이다. 영화 초반부 강림대군은 왕좌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청나라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한다. 무예에 능하기에 큰칼을 잡고 호탕한 모습으로 살려 한다. 그러나 백성은 다르다. 그는 왕자이고, 일반적으로 군()이 아니라 대군(大君)이다. 지금 왕의 아들이나, 다음 왕의 동생이다.

 

절대 권력자의 최고 측근이다. 백성들은 강림대군에게 영웅의 자각을 가지길 바란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하다. 그가 영웅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그가 영웅이길 바라던 민중과 함께 하면서부터이다. 백성뿐만 아니라 아버지까지 창궐로 변하여 무참히 죽자, 더 이상 그 고통은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거는 백성을 보며,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백성들에게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을 무리라고 말하나, 그런 바람조차 묻거나 대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이다.

 

한자 중에 성()은 귀 이(), 입 구(), 임금 왕()의 합한 회의문자이다. 임금이 귀를 열고 말을 하면 위대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임금이 들어야 할 것은 백성들의 말들이며, 그것 말을 들으면 거기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곧 왕의 책무이다. 왕의 시작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제물포 관아에 가자 모든 관리를 도망치고, 거기에 남아주고 같이 있던 자는 오직 강림대군이다. 웹툰의 내용이 약간 생략되나, 제물포 관아에서 모든 사람에게 감자를 나누어줄 때 한 소년(영화 마지막에 병력이 오는 것을 알려주던 소년)이 강림대군에게도 전달한다. 강림대군은 그 감자를 받을 때, 학수가 가지고 온 육포를 그 소년에게 준다.

 

왕좌에 대해 관심은 없지만, 인간적인 삶을 좋아했다. 초반 모습에 강림대군은 상스러운 말을 하고 다소 품위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자의 체통보단 그저 한 사람의 남자, 또는 남동생으로 살아가는 게 좋은 사람이다. 영화는 창궐이란 악귀가 나타나 사람을 헤치는 것에 대해 해결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강림대군이 일개 왕자가 아니라 왕의 재목으로 커가는 것을 보여주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김자준이란 인물을 보면 왕의 자리는 권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래 따지면 인조가 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왕의 재목이란 권력을 가진 자만이 아니라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자이다.

 

지킬 수도 없는 약속만 하고 나간 강림대군은 스스로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오는 점에서 효종이란 인물의 탄생을 영화 창궐에서 보여준다. 물론 효종은 젊은 나이에 단명 하는 안타까운 왕이다. 술과 여색을 멀리하며, 무예에 늘 정진했다. 하지만 당쟁의 역사에서 남인과 서인의 투쟁이 시작되고, 그가 죽은 후 예송(禮訟)에 대한 논쟁은 한 당파의 사대부들을 피로 숙청하는 복수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김자준은 영화 창궐에서 패배하지만, 김자준의 옆에서 곡학아세를 하던 관리는 여전히 판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창궐은 왕의 자세, 혹은 정치 권력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백성들이 말을 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예상하기 좋은 식으로 잘 흘러갔다. 이야기 스토리가 복잡하지도 않고, 단순한 점이 많았다. 단지 액션에서 강림대군 역할을 맡은 현빈 씨의 노고가 아주 컸다. 실제로 자신이 했는지 대역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몸으로 직접 움직이는 액션이 너무 많았다. “부산행이란 영화처럼 물리적으로 좀비는 이길 수 없는 것으로 나오는 것보다, “청궐처럼 약점이 있는 편이 좋다. 무조건 도망치는 것보다 거기에 대항하는 편이 영화의 박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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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한길그레이트북스 11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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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나 아렌트를 말한다면 대부분 사람은 아이히만을 생각할 것이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이었다. 그가 무고하게 죽인 유대인 수는 차마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다. 나치 전쟁범인들이 국제재판소에 판결을 받고, 그들은 그 죗값에 따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21세기 우리 인류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로 남아있다. 바로 그 아이히만에 대한 연구를 독특하게 진행한 사람이 한나 아렌트다. 유대인 여성인 이 학자는 20세기 중반 최고의 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아래 수학 받고 추후 카를 야스퍼스 아래서 학문을 지도받는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20세기 관념철학 즉 형이상학자로선 최고의 학자이다. 그러나 그가 나치와의 관계성에서 다소 문제가 있으나, 그래도 하이데거의 명성은 21세기에도 <존재와 시간>을 통해 충분히 그 가치를 드러낸다. 하이데거는 19세기 학문에서 관념론과 더불어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 니체가 조금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연구함으로써 인류 악에 대한 기원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20세기 철학사상 도서 중에 상당히 우수한 서적으로 뽑혔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번에 내가 처음 읽은 <인간의 조건>은 바로 그러하다. 내용은 다소 난해하면서도 또한 일률적이지 않은 흐름을 가진다. 게다가 마지막은 다소 의외의 내용이 전개된다. <인간의 조건>이란 말처럼, 인간이란 무엇이고, 그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위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라는 것이 옳은지를 탐구하기보단 그저 인간이란 존재는 노동, 작업, 행위라는 3단계로 구분하여 여기서 가장 좋은 것은 행위, 가장 아래는 노동으로 치부했다. 물론 노동이란 힘든 일이다.

 

아렌트가 적은 글을 보자면 노동은 고대 그리스로 올라간다. 그리스 사회 즉 polis, 폴리스 국가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그리스의 최고의 사상가를 뽑으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서구철학의 시조라고 볼 수 있는 소크라테스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사회는 인간사회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노예제도 있었던 사회이다. 그리스의 민주정이 있다고 하나, 여성과 아동, 이방인 그리고 노예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적은 영역, 즉 가정의 노동과 생계를 위한 노동을 일구어야 했다.

 

사적인 영역에서 실행하는 노동이란 그저 단순하고 평범한 일이다. 인간으로써 나은 삶을 추구하기보단 그저 그 삶에 안주하여 만족하고 살아가는 부류일 수도 있었다. 그 다음에 나온 인물들이 호모 파베르, 즉 도구를 만드는 존재이다. 인간의 문명은 그저 발달된 게 아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정복을 했고, 정복의 대상은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까지 이어진다. 도시의 개발은 더 많은 자연을 파괴해야 했고, 자연의 파괴로 인한 자원이 부족할 때, 서로가 가진 잉여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을 한다.

 

인류의 투쟁은 전쟁이란 극단적으로 실행되는 정치행위로 변모되었고, 정치적 투쟁은 더 나아가 정치제도의 정책안을 수립하는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전쟁과 관련하여 아렌트가 다소 놓친 부분은 폴리스 국가에서 주인이던 자들은 모두 군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군인이기에 무기를 가질 수 있었고, 무기를 가질 수 있기에 무술을 연마하고 체력을 키울 수 있었다. 플라톤은 정치적으로 현인이기도 하지만, 권투와 레슬링을 전문으로 하던 체육인이기도 하다. 전쟁의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의 세련도가 있지만, 그 무기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전사가 필요했다.

 

폴리스 국가에서 폴리스 그 자체를 두고 아렌트는 그것이 하나의 국가라고 했다. 국가의 존재성에서 토지개념이 있어야 하나, 무기를 들고 있는 시민이야말로 폴리스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직접 전쟁을 수행하고, 전쟁과 관련하여 정치와 사회시스템이 움직이므로 공론의 장에서 당연히 행위의 당사자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고대의 전쟁과 근대의 전쟁은 다르다.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실수한 점은 바로 그것이다. 폴리스 국가에서 공적영역에서 자신들의 다원화적인 가치를 주장하던 이들은 지배자들이다.

 

지배자들이 전쟁을 수행했고,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죽으면 그들만의 종교관념 안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영웅의 최후처럼 비교된다. 노예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누릴 기회는 없다. 왕과 귀족이 직접 병사를 지휘하고 앞서는 시대, 그러나 아렌트가 살던 시절은 왕과 같은 최고 지휘관은 전장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후방에 위치한 전투지휘소에 지휘한다. 그것도 상당한 안전과 보안 속에 말이다. 고대의 전쟁은 지배자들의 권력을 스스로 보여줄 수 있지만, 근대로 이르러 전쟁은 피지배자들을 죽음을 내몰아 권력자와 경영인들이 이득을 취한다.

 

전쟁을 선포한 자들은 총을 들지 않지만, 전쟁 실행 가부결정권이 없는 청년들은 죽음의 땅으로 향한다.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은 바로 이런 점을 간과했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단순히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에 불과하다. 보초를 서고, 총을 잡고 돌격하며, 떨어지는 폭탄에 두려워 땅에 얼굴을 파묻는다. 전쟁에서 공론의 장은 통용되지 않는다. 물론 전쟁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은 늘 전쟁과 같은 상태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국민들은 누군가에게 고용된 노동자이거나 직원이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살던 시절은 아주 복잡하고 난해한 시대이다. 세계대전이 2번 일어나고, 나치에 의해 망명을 선택한 그녀가, 전쟁이란 불확실적인 삶에서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그녀는 엘리트이고, 매우 똑똑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똑똑하고 상류사회의 인간이다. 그녀는 결코 하류사회를 겪지 않은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미국은 대공황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세계도 역시 불황으로 인한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공황에 대해 자본주의 경제구조가 과잉생산으로 인해 물량이 남아 더 이상 시장을 개척할 수 없을 경우 공황이 일어난다고 했다.

 

공항으로 물가는 치솟고, 일자리 고용은 저하된다. 전쟁과 관련하여 공항의 관계성은 중요하다. 억지로 만들어진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농촌에서 작물재배가 지나칠 정도로 풍년이면 농작물은 땅에 그냥 버린다. 상품의 수요가 소비의 비율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그나마 다른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비료와 가축사료, 가공식품 등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장에서 나온 물건은 다르다. 농장이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빚만 없다면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공장은 다르다. 생산품을 팔지 못하고 노동자의 임금과 더불어 공장운영비조차 감당이 불가하다.

 

전쟁의 효용성이란 바로 묵은 상품들을 처분하기 좋은 기회이다. 상품의 처분은 기업가에게 큰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다시 경제 활성화를 누린다. 단지 조건은 전쟁터가 본국만 아니면 된다. 전쟁특구의 사례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연합군의 군수 공장의 기능을 수행했다. 공론의 장과 관련하여 전쟁이나 금융에 대한 제재에서 반드시 국민경제나 세계평화를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다원화를 통해 인간의 가치관을 많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렌트는 비참한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노동계급을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 따위는 주지 않았다. 폴리스 국가의 플라톤과 페리클레스 같은 인물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렌트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찬동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사적영역이 공적영역을 지배한다는 유물론적인 가치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경제적, 사회적 구조가 결국 하나의 현상으로 이어지고, 그 현상에 대한 대안이 상부 정치구조로 이어지는 점이다. 요새 쉽게 생각하면 대한민국 인구 재생산비율이 1.0 정도로 내려가자 정부가 출산제도를 보완해가는 것과 같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영역은 사적인 영역, 사적 노동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시대의 어머니 여성들이 겪은 노동이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육아를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과 같이 동조해가는 시대다. 아버지에게 주어진 출산휴가는 하루 이틀 정도가 이제 육아휴직이란 제도가 생겼다. 물론 제대로 사용하기란 아직 시기상조일지 모르나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사회적 변화는 즉 사적영역의 인간이 살아가는 그 삶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삶이 이기심이라 보기는 어렵다. 사적 영역의 추구는 인간의 본질성에 가장 부합된다.

 

인간의 정체성에서 나는 왜 살아가는 가에서 그 의미를 자신에게 부여한다면 스스로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건다면 호숫가의 수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반해 결국 호수에 빠져죽는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보단 남에게 전가해야만 새로운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아렌트도 정체성의 본질을 찾기 위해 다산성을 주장했지만, 공론세계의 다산성은 다원화적인 인간이 표상이겠지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인간은 국한된다. 행위의 주체자로서 아렌트가 살아갈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를 지지할 수 있는 노동이 필요하고, 그 노동을 실행시킬 수 있는 도구나 기술이 필요했다.

 

지구를 떠나 인간을 살 수 없지만, 거만한 엘리트와 지식인은 그 지구위에서 살고 있다 해도 자신이 머무는 집과 자신이 여유롭게 누리는 커피 한잔은 모두 그 노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깊이 보지 않는다. 최근에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이란 책을 보면 다른 모습을 보았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을 건축하지 않고, 임금을 받고 타인의 집을 건축하고 있으나, 그 노동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산물이 비록 자신에게 소외되더라도 그 순간만큼 자신은 그 어떤 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점이다.

 

아렌트의 발상과 자크 랑시에르의 발상은 이렇게나 다를 것이다. 공적영역을 추구하더라도 사적영역은 없으면 불가하다. 물론 사적영역의 노동을 아렌트는 인정하나, 그 사적영역조차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결여된 셈이다. 책을 읽으면 아렌트의 지식과 해박은 인정하나, 그녀가 가진 가치관에 동조할 수 없다. 칸트의 철학은 정말 어렵다. 칸트가 가장 탐독했던 책 중에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이 있다.

 

아렌트도 루소의 행위를 말한다. 계몽주의 사상가로사 낭만주의 문학과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그 일조를 한 업적을 말이다. 하지만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가이면서 반계몽주의적 인간이었다. 루소의 <고백>을 읽으면, 그가 청소년시절 길을 떠나는 과정에서 며칠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이동했다. 어느 농가에 가니 농부가 질이 낮은 빵과 음료를 주었다. 루소는 그것을 받아들고 허겁지겁 먹자, 농부는 비로소 자신이 숨겨든 소시지와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부잣집 권력자들이 농민을 착취하다보니, 루소 역시 그런 사람인 것으로 의심했다.

 

루소가 가진 사상이 인민주권사상이고, 그가 정치적 공론에서 주장한 영역은 <사회계약론>에서 보여준다. 플라톤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부지런히 읽고 연구한 루소지만, 그의 사상은 지배자의 사상에서 피지배자를 위한 사상으로 전도시킨다. <사회계약론>은 원래 <에밀> 이후 나온 책이다. <에밀>에서 루소는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나온 것처럼 계몽주의적 사상가로 보여주지 않는다. 순박한 농부의 세계에 파묻혀 지식을 습득하여 공적영역에 나가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하며,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그린다.

 

그러나 감정이란 고귀한 인간의 마음은 타인에 대한 애정을 가지며, 남을 돕는 이유는 내가 타인보다 우월하기보단 인간을 돕는 게 바로 인간의 도리이고, 그 감정을 느끼는 게 인간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리나, 막상 어렵지도 않다. 길가다 아이가 넘어져 피를 흘리며 울고 있으면,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서로 몰려와 아이의 상처를 돌봐주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누가 가르쳐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은 위대한 것처럼 보이나, 때로는 질박하고 야만스럽기도 하다. 시장바닥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강인한 성격을 가진다.

 

막노동을 한 사람은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욕도 많이 한다. 그런다고 그들 모두가 타인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인간을 인간답게는 공론의 사회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살아가는 시장바닥에도 더 숭고한 정신이 드러난다. 지식인이라면 인간의 조건을 두고 공적영역의 고대 그리스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에게 향해야 한다. 아렌트트의 철학은 그런 점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스스로 학문을 깨우치며 더 높은 이상으로 향하는 것도 좋다. 그런 점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의지이다. 더구나 그 의지를 행위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들의 바램이지, 지식인의 공적영역이 아니다. 아렌트의 사고방식은 현대적 민주주의제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종교적인 영역까지 끌고 내려와 그것이 하나의 구원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도 오만하다. 아렌트는 서구사회의 철학자이다. 그의 눈에는 동양이나 비서구권에 대한 사유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의해 그 사상과 사유가 변모된다. 어느 인기애니메이션에 나온 말처럼 인간은 지구의 중력에 의해 움직일지 모르나, 오히려 그렇기에 그 현상을 하나의 과정으로 봐야 더 높은 세계로 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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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8-10-23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렌트가 아이히만 덕분에 과대평가 됐다는 평을 들은 적 있는데, 이 리뷰를 보니 그 평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10-23 13:16   좋아요 0 | URL
저번 주말 책나루 모임에서 몽당각하를 모신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도 일부 서평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이데거 인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2차대전에 유대인 학자란 점에서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말하기에 정말 좋은 학자이다보니 과분한 평을 들은 학자가 아닌가 합니다.
책을 보니 사족이 너무 많습니다.

2018-10-23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10-23 15: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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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배 위에서 혼자 크레인작업하다 바람과 선체의 기울임으로 크레인바가 아버지 무릎을 타격되자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아버지는 그뒤로 걸음걸이가 불편해졌으나, 만일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출혈과다로 쇼크사했을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현실에서 골든타임은 생존의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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