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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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시작된 시기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을 정해놓으면서 된 일이다. 조선이란 역사를 보면 참 난감한 점들이 많다. 조선이 세워진 시기를 놓고 다시 생각한다면, 광해군 시기와 뭔가 상당히 많이 중첩되는 느낌이 있다는 점이다. 광해군 시기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시기라면 조선이 막 개국한 시기에는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올라오던 시기이다. 이성계는 불교와 성리학의 중간에 놓인 고려를 대신하여 유교를 중심인 조선의 시조가 되었다. 생각하면 조선의 이성계와 고려의 왕건 모두 무인에서 시작된 인물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조차 무인의 기질이 뛰어난 인물이다.

 

무관이 왕이 되어 문관을 등용하면 다시 문관이 무관을 우습게보고, 문관이 병무의 실제 업무를 모르면서 병권을 잡게 되면 난이 생기는 일이 다분하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초반에 문관도 많았지만 무관들도 많았다. 공자의 유학자에서 선비들은 원래 춘추전국시대에는 문예를 기르는 자보단 무예를 익히는 자들이 강했다. 무예를 익히는 이유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서라면 각 임지를 나돌아 다녀야 하며, 더구나 전쟁이 계속 일어난 시기에 선비들의 본분은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는 일이다. 그러나 고려를 지나 조선을 오면서 선비는 무관보다 문관에 이르게 되고, 나라의 위기에 처해질 시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비들의 나라, 조선은 이성계와 무관 그리고 신진 사대부들이 함께 일으킨 국가이다. 조선이란 국가는 고려를 멸망했지만, 고려가 멸망한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권력의 부패와 백성들의 빈곤이었다.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면서 가장 먼저 정리해야할 것들이 기존 권력을 청산하는 것이다. 왕족과 봉건귀족은 막대한 이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시골무사 이성계>에서 신돈이란 승려가 정치를 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노비의 신분해방과 농민의 억울한 처사를 풀어주는 일이다. 권력자들에게 가장 돈이 되는 것은 땅을 많이 차지하고, 땅에서 나온 소출을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다.

 

조선이 세워진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바로 토지에 대한 문제다. 농민이 농사를 짓고 먹고살아야하는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다. 땅을 빼앗고, 빚을 갚지 못해 평생 노비로 살아가는 일들이 발생한다. 노비도 인간인데, 이상하게 소와 말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는 게 노비들이다. 권력자들의 비리는 곧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세계 어디를 돌아봐도 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고 사실이다. 고려의 무능한 정치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백성들이 힘드니 군역과 세금문제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는가? 우선 군량을 마련해야 하는데, 군사들에게 먹일 쌀이 모두 중간에서 착복되고, 군사들의 징병해야 하는데 모두 어디론가 도망친다. 게다가 군사들이 모여도 그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해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지 못한다. 겁쟁이가 되는 것은 기본이고, 무기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고려 말기, 홍건적이 조선을 침범하고, 왜구가 계속 남해안을 노략질을 한다. 이성계가 성공한 이유 그것은 무엇인가? 그가 궁술이 뛰어난 강한 무장이라 그런가? 아니면 천하의 문장가 정도전이 있었기 때문인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성계는 처음에 고려의 무관이고, 40대 중반까지 반역할 생각조차 없었을 것이다.

 

소설 <시골무사 이성계>를 보면 우리가 아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아니라 그냥 변방에서 떠도는 무관 이성계를 마주한다. 이성계는 변방을 전전하면서 여진족 같은 오랑캐 부족을 의형제를 맺으며 같이 동고동락을 한다. 이성계는 명궁이지만, 한편으로 활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중앙관직이 아닌 변방을 누비며, 그가 찬란한 업적을 보여준 것은 바로 황산대첩이다. 일본 왜구 만여명이 침범하나, 고려의 군사력은 천 명 정도이다. 게다가 지휘내부의 갈등까지 겹치고, 이민족으로 구성된 이성계의 사군들은 모두 형제이고 삼촌조카이었다.

 

이성계에 대한 일화를 보면 그는 순수 조선인 즉 고려인이 아니라 여진족과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자로 나온다. 변방에 살아간 우리 선조들은 다 부족과 싸우기도 했지만 때로는 같이 살기도 했다. 변방의 부족을 국내로 귀화하여 살게 한 경우도 있고, 임진왜란 당시 항왜들을 조선인으로 살게 해주었다. 민족의 단일성보단 민족이 가진 문화적 정체성으로 계속 유지된 셈이다. 고려는 원나라의 종속국이었고, 원나라 본국의 신료와 고려 중앙신료들이 권력자였다. 변방의 장수는 그저 벌거숭이에 불과했고, 이 책에서 이성계는 병법서조차 읽지 않은 그저 한미한 출신의 무관이었다.

 

황산대첩 당시 종2품 도순찰사 직급을 가졌지만, 오랜 기간 변방을 누비면 생사를 오고간 그에게 너무 한미한 벼슬이다. 권력자들이 병권을 잡으면 도순찰사 이상의 벼슬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는 전쟁에서 1:10의 전쟁은 마치 지나가는 소설책처럼 지나가고, 우리 역시 소설책 읽듯이 스쳐간다. 하지만 진짜 소설에서 오히려 역사책보다 더 리얼한 상황을 느낄 수 있다. 활이 가르고, 칼을 베고, 창으로 찌르며, 도끼로 가른다. 말 한 마리의 숨소리와 비명, 대낮의 전투부터 야간의 전투까지 죽음의 그림자는 언제나 숨을 또 숨을 쉰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현실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역사책에서 전쟁을 일어나면 그 전투장면 하나하나를 묘사하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죽고 다치고, 또한 죽이는지 말이다. 드라마에서 이성계를 다루는 모습은 그가 보여준 조선의 창업정신에 대한 영웅성을 보여줄 뿐이다. 그가 위기의 현실을 보여줘도 그의 비참한 모습까지 잘 보이려 하지 않는다. <시골무사 이성계>는 비참한 모습의 이성계를 보여준다. 책 표지에 있는 말을 타고 이성계의 모습은 40대 중반이라 하나, 백발이 무성한 외모는 마치 60대에 가까운 모습이다. 책 내용에서 전장을 누비면서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고, 늘 죽음을 맞이하기에 괭한 모습만 드러낸다.

 

갑주와 투구조차 낡고 누추하고, 그의 목에는 늑대 가죽을 두르고 있어서 고려국의 종2품의 장수인지 야인인지 알 수 없다. 황산대첩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저 활을 들고 있는 필부의 모습이다. 그는 필부로 살아갔기에 조선의 임금이 될 수 있었다. 전장에 나가면 가장 비참한 사람은 죽음 앞에서 칼을 잡는 장병이 아니다. 그저 힘없이 적의 칼에 도륙당하는 백성들이다. 왜장 아지발도가 침범할 때 왜구는 특이한 풍습을 보여준다. 전쟁을 참전하기 전 제사를 지내는데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는 점이다.

 

인신공양은 참으로 끔찍하다. 사실 동물을 그냥 죽이는 것도 끔찍하나 같은 인간, 그것도 어린 아이에게 죽음의 칼을 대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다. 아지발도는 고려 땅을 침공할 때 그 지역의 어린 소녀의 가슴에서 성기까지 칼을 베어 내장을 모조리 꺼냈다. 소설에서 만삭한 자신의 아내의 배를 갈라 뱃속의 아이를 죽였다고 하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은 백성의 죽인 것도 모자라 살아있는 자의 코와 귀를 베어가기도 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전쟁 나는 이유는 단순히 외적의 침입만이 아니다. 외적이 침범해도 그것을 방비할 수 없는 국가의 무능함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게 된 계기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격퇴했고, 거기에 민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과업이 결국 전쟁에서 시작되었고, 그런 이성계의 가르침을 조선의 후대 왕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선조 당시 임진왜란이나 명종 당시 을묘왜변을 봐도 그렇다. 을묘왜변 때 이준경이 있었고, 임진왜란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그들은 조선을 배반하지 않았지만, 이성계는 배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는 원과 명의 교체이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는 명과 청의 교체시기이다.

 

나라의 지도자인 군주가 이성계가 밟아온 삶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렇게 처신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시골무사 이성계>를 보면서 문득 나는 예전에 읽은 책 1권이 생각났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이다. <일리아스>를 보면 트로이전쟁에서 전투를 펼치는 모습이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창이 상대방의 머리를 박히고, 도끼가 머리를 박살되며, 뜨거운 피가 용솟음 치고, 내장이 쏟아진다. 단지 <일리아스>는 영웅주의적인 요소지만, <시골무사 이성계>는 영웅을 필부처럼 묘사했다. <일리아스>는 전장을 영웅의 서사시로 그리지만, <시골무사 이성계>는 전장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야생의 짐승들처럼 표현했다.

 

작품에서 또한 인상적인 모습은 간인(間人)들의 모습이다. 간인들은 아주 다양하고 특이한 존재도 많았다. 살기 위해 활동하는 간인도 있다면, 죽을 줄 알면서도 활동하는 간인도 있다. 어제 죽은 왜구의 갑옷을 입고 적의 진영에 침투한 간인도 있고, 고려군 작전회의 자리 인근에서 구걸하거나 엿보는 간인도 있다. 간인들이 정보를 조작하여 적을 몰살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전투는 단순히 칼과 창으로 부딪혀 일기당천으로 해결되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다. 철저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공간이다.

 

삶이란 그 하나의 공간은 어째 보면 전쟁이다. 진정한 지옥은 전쟁터이도 있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세계에도 전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곳에 내몰린 인간과 그 인간들 위에서 군림하거나 말로만 그들을 대하는 자는 분명히 느끼는 바가 다르다. 내모는 자들의 내몰린 자들의 치열함을 알 수 없다. 그곳이 죽음의 사선이 이어지는 공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냉소적인 세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칼과 활 그리고 같이 죽음을 맞대고 있었던 전우들뿐이다. 동료애와 의리는 단순히 그 감정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고, 자신이 살아갈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시골무사 이성계>를 소개하는 글에서 이 책은 남자의 소설이라 한다. 하지만 보통남자라도 그런 공간에 있기 싫을 것이다. 필부(匹夫)로 등장하는 이성계처럼 나 역시 그저 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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