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영화 <강철비>를 보면서 나는 순간 놀라운 것을 보았다. 작품 내 새로운 대통령이 1권의 책을 들고 있었다. 분명 제목은 영어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저자의 이름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자의 이름은 브루스 커밍스 교수, 미국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최근에 현실문화연구 출판사에서 나온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어보았다. 책을 보면 아주 복잡다양한 한국전쟁에 대해 소개했다. 한국전쟁은 미소냉전의 이데올로기의 격돌로 이루어진 전쟁이기도 하나, 그 전쟁의 뿌리에는 깊은 원망과 증오가 숨어있었다.

 

전쟁의 역사는 단순히 타국과의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서 발현된 갈등이다. 한국전쟁은 두고 남침 내지 북침이라는 다양한 표현도 있지만, 이데올로기를 넘어 다시 생각해보면, 매우 비극적인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20세기 최고의 내전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두고 광복후에도 전쟁에서 보여준 참혹한 복수극 내지 학살은 이미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광복절 이후 미군정은 친일세력을 정부세력을 편입하고, 이들은 역사의 청산 대신 권력의 총을 받았다. 독립군들은 대부분 미군정보단 자치적으로 활동하거나 혹은 중국 내지 소비에트와 연계했다.

 

독립군 대부분이 대종교 신자인 점에서 민족주의자 내지 사회주의 또는 무정부주의자도 많았다. 일본 패망 전에는 미군의 입장에서 공동전선을 이끌 군세이나, 일본이 물러간 한반도에서 보자면 앞으로 신탁통치에 방해될 존재이다. 그런 갈등에서 친일의 잔재는 우리 사회에 그렇게 흘러갔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을 두고 냉전을 넘어 민족 내부에서 보여준 증오와 공포에서 학살극이 이어졌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친일파에 대한 조선 민중의 증오, 그런 민중으로부터 공포를 느끼는 친일세력의 대립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2. 내전, 끝나지 않은 비극

친일과 군부의 정권장악, 영화 <강철비>에서 곽철우는 북에서 내려온 엄철우에게 자신의 정치철학관을 말해준다.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분단으로 인한 고통보단 그 분단된 것을 이용하는 자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고 말이다. 에릭 홉스봄이란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는 19세기를 두고 혁명의 시대라 말하며, 그에 따라 넘어가면서 자본과 폭력의 시대로 연계된다. 혁명의 시기에서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을 필두로 유럽은 노동문제와 인권문제로 혁명이 일어나고 수많은 민중들이 권력에 의해 압박당한다. 그리고 20세기 민주주의가 도래해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로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주도적으로 움직인 민주주의이다. 20세기는 전쟁의 시기이고, 전쟁은 자본의 경쟁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민족 내부 갈등과 더불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일어난 전쟁이기도 하다. 대부분 식민지 시절 친일세력은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장악하고, 억압받은 민중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착복을 당했다. 그런 와중 북한에서 소련의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가 전시공산주의로 변모되었고, 한국은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구조가 도래되었다.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는 자유주의 내지 민주주의와 상관성을 가지지만, 결코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자본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만, 자본으로 자유를 파괴하는 것은 분명 자유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북한과 남한의 차이점은 자유라는 슬로건은 모두 내걸지만, 한 쪽은 자본을 국가권력에 의해 장악하고, 다른 한쪽은 국가권력과 유착하여 장악했다.

 

위쪽은 정치권력이 없으면 피지배계급이고, 아래쪽은 경제력이 없으면 피지배계급이 되었다. 21세기에 도래하면서 역사와 경제학적 구조에 의해 전시공산주의보단 자본주의가 더 효율적인 정치경제구조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영화리뷰 하면서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영화 <강철비>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맥락과 정치, 사회, 경제적 흐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강철비>는 상당히 어려운 영화이다. 기존 한국의 블록버스터 체계에서 상당한 도전을 보여준 작품이다. <쉬리><공동경비구역 JSA> 등 북한과의 갈등을 빚는 영화에서 북한의 어느 개인은 인간적이지 모르나, 북한이란 정치적 체계 그 자체에 대해 악의 축이란 이미지를 강하게 부여했다.

 

물론 폭력국가 내지 테러리즘이 강한 곳이 북한인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는 상당한 딜레마로 작용한다. 어느 정권이든지 통일이란 주제에 항상 눈여겨보고, 북한과의 외교안보전략이 정권에서 제일 큰 과제이기도 하다. 보수정권조차 북한과의 외교정책을 중요하게 여기고, 한편으로 북한과의 외교적 갈등을 군사적 대응체계로 보여주기도 한다. 북한은 정치경제적으로 실패한 나라이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도 북한이란 정치적 체계는 붕괴하지 않았고, 붕괴의 위험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붕괴보단 숙청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정치와 군사세력이 일치하면 그 국가는 군사력을 통솔할 수 있는 장성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나, 한편으로 가장 먼저 죽어줘야 하는 대상이 된다.

 

3. 차가운 머리를 가진 영화 <강철비>

영화 <강철비>는 매우 담담한 영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로 꺼내기 힘든 부분을 있는 그 자체의 사실을 영화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외교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항상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가로부터 간섭을 받는다. 사람들은 한국의 최고 우방국을 생각하면 미국을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은 최고의 우방국을 한국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이 여기는 우방국은 일본이다. 일본과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데, 주한미군보다 주일미군의 세력이 더 강대하다. 오키나와에 미공군 내지 미해군이 대기중이고, 그 외로 괌에 위치한 기지에도 주둔한다.

 

일본 훗카이도에 미공군기지 역시 주요 군사력 중에 하나이다. 아마 올해 들어 한국의 밀리터리마니아에게 가장 인상적인 영화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이 영화라고 볼 것이다. 물론 미국에 비하면 비교하기 힘들지만, 군사작전과 전략, 무기체계와 첩보전은 상당히 잘 짜여진 연출이었다. 감독 양우석이 <변호인>으로 흥행할 때, 그에게 무기는 오로지 송강호 씨의 흡입력이었다. 송강호 씨가 보여준 <변호인>에서 그가 차지한 비중이 너무 거대했다. 그러나 송강호 씨는 그 거대한 모습을 감춘 듯 작품 속을 유영했다. 그렇기에 송강호 씨의 연기는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강철비>에서 주인공인 곽도원 씨와 정우성 씨의 연기배분을 잘 정리했다.

 

작품에서 샷과 샷의 전환에서 치밀한 상황을 아주 명쾌하게 전환해 나갔다. 첩보전이나 심리적인 요소에서 시간을 끌기보단 그런 요소들을 빠르게 진행하여 작품의 긴장감을 더욱 상승시켰다. 작품 중간의 격투나 전투장면은 억지로 길게 끌지 않았고, 특히나 <군함도>처럼 영웅 캐릭터가 잘 죽지도 않고, 다쳐도 금방 회복되는 무리한 연출을 넣기보단 오히려 첩보전에 어울리는 장면으로 위기를 넘긴 게 좋았다(북한군 특수부대원이 넘버1을 암살하려 할 때 시신과 넘버1를 바꿔치기한 장면).

 

4. 영화 시작점인 쿠데타 요소는 무엇을 말하는가?

북한에서 정권이 바뀌면 그전에 승승장구하던 자를 숙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 북한정권에서도 자신의 형제나 숙부조차 처형하고, 많은 군부세력이 바뀌는 일이 뉴스지면에 나온다. 어제까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나누며 웃었던 자들이 어느 순간 어둠으로 사라진다. 영원할 것 같은 권력의 좌, 하지만 눈 밖에 나는 순간 차가운 감옥에 갇히거나 고통스러운 고문과 죽음이 기다린다. 그들이 죽음에서 무슨 죄를 지었는가? 라는 의문보다 무엇을 위해 사라져 가는가? 라는 권력의 관계성을 봐야 한다.

 

영화를 보면 이중교란이 나온다. 반역자를 제거하라고 말한 자가 반역을 저지른다. 그가 반역을 저지른 이유를 본다면, 계속되는 군부와 당 내 권력자의 숙청, 그동안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과 국가 자체의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현실과 이상, 그리고 권력과 미래의 관계성에서 극단적 선택을 택한 것이다. 단지 영화에서 본다면 북한군이 쉽게 남한으로 넘어올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설정은 무리수이기도 하나, 영화는 하나의 설정이란 조건에서 본다면, 그들이 처음부터 노린 전차의 탈취, 군병원의 습격은 첩보전의 긴박함을 보여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아니라면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이상에 갇혀 몰락할 때, 권력이란 이름은 그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문제는 권력은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나, 그 권력의 중심부가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주변국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문제는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후복구비만 아니라 많은 인명이 손실되고, 특히나 남북 간의 화해는 전혀 진정될 수 없다. 하지만 이대로 장기전이 되면 국가 내부적으로 큰 소란이 일어나고, 전쟁에 따른 인명과 재산손실 역시 만만치 않다.

 

5. 역사는 현실과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의지에 따라 전쟁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미국에 의한 작전통제권이 이루어지고, 더 크나큰 위협으로 중국과 일본이 크게 관여한다는 점이다. 20세기 한국전쟁에서 모택동은 17세기 병자호란 때 개망나니 같은 명나라 장수 모문룡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를 가진 자가 결국 조선에 침입한 적을 막아내었다는 논리다. 모씨의 역사는 350년 차이가 나는데, 아직 중국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두고 우리는 왜놈의 난을 부린 최악의 상황이라면, 중국은 항왜원조(抗倭援朝)라 부른다. 왜국에 저항하여 조선을 돕는다. 201712월 중반에 한국대통령은 중국에 방문했다.

 

이때 중국 주석은 난징대학살 기념행사에 갔다. 난징대학살 정도의 사건이라면, 일본에서는 자위적인 행위인 원폭투하 희생자를 기리는 날이고,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과 맞먹는다. 그 나라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날에 타국의 대통령이 방문을 하자, 중국 주석은 바로 만나지 않고, 행사 후 만났다. 만일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의 행사장에 갔다면 일본은 항의했을 것이고, 자국에서는 중국에 너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이다. 반대로 주석을 바로 만나지 못해 외교적으로 무시당하지 않았냐는 말을 나오기도 한다.

 

한국전쟁 기념일에 대통령이 UN묘지에 참석하지 않고, 외국정상이 왔다고 그들을 만나러 갔다면 그것이 더욱 문제가 아닌가? 정상은 자국민과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역사란 계속 되풀이 되고 비극은 제2 내지 제3의 배우에게 시련을 안겨주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영화 <강철비>에서 잘 나오는 게 바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서 미국의 입장이다. 영화가 그렇다고 하나, 사실 말을 하지 않아도 미국은 한국보다 일본의 편을 들어준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 권력가들이 지금 노리는 것을 일본헌법 개정이다. 일본의 군사력은 자위대라 하지만, 자위대는 군사조직이 아니다. 군사조직이 일본에 생기면 그들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전쟁이 다시 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에 전시상황 무력개입이 가능하다. 한국전쟁으로 일본에 난민이 오면 인도적인 대우보단 사살 내지 감금이란 비인도적 행위를 할 것이란 기사를 보았다. 미국이 우리의 절대우방이라면 일본에 간 우리 한국인 전쟁난민이 인권유린당해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나, 사실 주한미군조차 우리나라 법규자체에 상당히 큰 면책권을 가지고 있다.

 

6.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미국이 우방이라 하나,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미국과 동맹을 맺고 교역을 하는 것이다. 영화리뷰를 쓰면서 미국경제학자 책이 생각난다. 미국의 재정은 감축되고, 국민 대다수는 빈곤계층으로 몰려간다. 부익부 빈익빈이 미국을 병들게 한다. 문제는 부자들의 증세 아닌 감세는 국고를 비게 하고, 그 국고는 간접세로 빈곤한 자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직업이 1개 아니라 2~3개 가지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미국인들의 현실에서 암울한 이유는 미군의 군비는 엄청나다는 점이다.

 

군비의 확장은 단순히 평화유지만이 아니라 방위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상당한 액수의 무기를 구매한다. 무기체계는 독점적 구조이기에 독점시장이 형성되고, 그 세금은 미국 국민 대다수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이윤은 상위계층에게 몰린다. 전쟁의 경제학이란 말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하고 난 뒤 이라크를 경비를 보던 군사세력은 미군이 아니라 블랙워터라는 군수경비업체였다. 이들을 고용한 미국은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다. 군인이 아닌 민간이 이라크를 지킨다는 방식으로 움직이나, 군방산업체와의 계약은 결국 독점으로 이어진다.

 

이라크전쟁은 테러국가 내지 불량국가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뒤에 에너지 자원, 경제 등의 효과가 동원되는 전쟁이다. 기업의 이윤인지 국가의 이윤인지 몰라도, 결국 누군가 이익을 보고, 단지 그 이익을 더 많이 보는 기업이 속한 국가는 이익을 볼 수 있는 게 정치적인 전략이 될 수 있었다. 전쟁나면 가장 이익 보는 것은 2종류이다. 그 나라에서 이데올로기로 정치적인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사람, 전쟁무역으로 매출을 올리는 무기상인이다. 하지만 그런 이익은 강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노릴 수 있는 조건이다.

 

7. 약자에게 선택은 없다.

중국이 임진왜란을 두고 항왜원조(抗倭援朝)라고 부르면, 위에서 언급한 모택동이란 인물은 한국전쟁을 무엇이라 불렀는가?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불렀다. 영화 <강철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수뇌부가 중국 외교군사라인과 연락을 취할 때, 그가 이렇게 말한다. 중국과 조선은 형제의 나라라고 말이다. 중국과 조선이 형제의 나라로 불린 것은 조선이 홍타이지에 의해 침략당한 정묘호란 시기이다.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낸 후 이괄의 난을 겪은 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서인정권은 17세기 명·청 교체시기에 전략을 잘못 세워 결국 정묘호란을 맞이하고 후에 병자호란으로 이어진다.

 

명나라와 조선은 군신의 관계 내지 아버지와 아들이라 한다면, 청나라는 조선에게 형제의 나라가 될 것을 종용했다. 물론 조선의 아버지가 사라진 후 청나라는 조선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인조를 남한산성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그 이후에 조선은 청나라를 엄청 무시하고, 명나라 만력제 이후 자신에게 벼슬의 칭호는 필요 없다는 선비들이 많으나, 그들은 배고픔과 가난으로 죽어가는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았다. 명이 중원 누비든 청이 누비든 조선의 백성이 가장 소중한 게 당연한 일이나, 그렇지 않았다. 지나간 명분에 사로잡힌 채 망령의 굴레에 계속 집착했다.

 

영화 <강철비>는 선조-광해군-인조로 넘어가는 조선의 모습이 생각난다. 북한은 중국, 한국은 미국을 의지하나, 결국 마무리는 우리의 몫이다. 핵무기 여파가 일본 이지스함에게 미치자, 미국은 한국정부 편에서 벗어나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다. 미국CIA 한국지사장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일본에서 대기를 한다. 한국정세를 보고 일본과 같이 처리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방침이란 점을 보여준다. 정말 그럴까? 아닐까? 하지만 어느 정도 현대사회에 국내 정치를 넘어 외교, 안보, 군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간 의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강철비>에서 그 요소를 너무 대놓고 밝힌 것이 묘미이다.

 

한반도의 상황이 너무 위급해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딜레마, 전쟁의 집중화이냐 아니면 조금 더 대화를 나눌 것인가? 정권의 대변자 내지 권력자 중에 현재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변화를 주는가에서 새로운 상황이 도출된다. <강철비>에서 곽철우는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한다. 한반도에 강력한 핵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국가는 강대국으로 한정되어 있고, 한국은 가질 수 없는 나라로 되어 있다. 핵무기를 가진다는 점은 최악의 상황에서 국토를 유린하면 상대편을 모조리 말살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진 것이다.

 

영화에서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북한은 20년 전에 밟아야 했다고 말이다. 핵무기가 나오기 전에 모조리 섬멸했다면, 지금 북한은 핵무기체계를 완비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핵무기의 위력은 같은 무게라도 1945년 일본 본토를 강타한 2개의 핵폭탄보다 더 강력하고 위험하다. 게다가 핵폭탄이 터지면 화염, 폭풍, 방사능만 문제가 아니다. 폭발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폭발물 내지 인화물 역시 타격을 입어 연쇄반응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서울 경기권에 대다수 국민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과 인프라가 밀집하고, 후방인 전남과 경남지역에는 핵발전소가 포진한다.

 

핵무기가 한반도 아무 곳이나 타격해도 무사할 수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 외교안보 군사력이 중요하나, 영화에서는 그 이상의 군사력을 원한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의 우방으로 미국이 가장 중요한 위치이나, 한편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무시를 못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한국과 비교하여 더 중요한 국가이다. 일본 자체가 극동아시아에서 소비에트연방과 중공을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써 성장했고, 그것을 토대로 일본은 산업경제를 발달시켰다. 일본 극우는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을 부정하면서도 받아들인다.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은 미국의 핵투하 이후 국제재판 이후 사형당하고, 거기에 봉인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야스쿠니에 가서 전범을 기리고, 미국의 편을 들어 일본헌법을 개정하려 한다.

 

영화 <강철비>에서 이런 국제 정서속에 2명의 철우가 나온다. 우리는 영화에서 2철우의 한자이름에서 북한의 鐵友는 강한 친구이고, 한국의 哲宇는 생각하는 공간으로 나온다. 정말 2명의 철우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이 힘든 국제세계에서 강한 힘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게 정말 어렵다고 말한다. 북한의 철우는 가족과 같이 살지만, 한국의 철우는 가족과 떨어져 산다.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 한국의 철우조차 자기 가족과 다시 결합하지 못한다.

 

곽철우의 막내아들이 말한다. 아빠 엄마하고 다시 살면 안 되냐고 말이다. 우리 한국 사회조차 곽철우의 모습처럼 살아가는데, 그 이상의 길을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곽철우와 성형외과 의사는 부부였으나, 그들은 이혼했다. 부부는 헤어져도 그들의 자식, 즉 우리의 미래는 그들이 다시 결합하는 것을 원한다. 어느 누군가를 적으로 보거나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으면 그들과 다시 결합할 수 없고, 미래의 우리들은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영원한 아픔을 가지고 가야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무뚝뚝한 엄철우 역시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아버지란 점이다. 2명의 철우가 만나 그들이 하고자 하는 사명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2명의 철우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자녀,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려는 것이 아닐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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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2-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언론에선가 <강철비>가 <JSA> 이후의 남북관계를
그린 최고의 영화라고 하던 차에, 궁금증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멋진 리뷰로 만나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적대적 공생이 일상화된 시절을 뒤로 하고 함께 하게
될 날이 과연 올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2-19 09:38   좋아요 0 | URL
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 상태가 그 당시와 유사사례로 이어진 점, 그리고 외교적 군사적 파워게임에서 여전히 밀리고 있는 점에서 이 리뷰의 기초단서가 되었습니다.
어느 글을 보니 이때까지 북한이란 적으로 나오거나 암묵적으로 적이라 규정하나, 여기서는 무조건적 적이기보단 그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 점에서 기존 북한과의 갈등을 그린 작품에 비해 더 나은 길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