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통략 - 조선시대 당쟁의 기록 자유문고 동양학총서 39
이건창 지음, 이덕일.이준영 해역 / 자유문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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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의 <당의통략>을 읽으면서 그가 생각하는 원론에 대해 보면서 조금 놀란 게 있었다. 붕당정치의 폐단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8가지를 논의를 제시한다. “첫째는 도학이 지나치게 중한 것이고, 둘째는 명분과 의리가 지나치게 엄한 것이며, 셋째는 문사가 지나치게 번잡한 까닭이고, 넷째는 옥사와 형벌이 지나친 것이고, 다섯째는 대각이 너무 높은 것이며, 여섯째는 관직이 너무 맑은 것이요, 일곱째는 문벌이 너무 성대한 것이고, 여덟째는 나라가 태평한 것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놀란 이유는 문벌의 성대한 점이고, 명분과 의리에 대한 문제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거의 100% 상속된 게 있었다. 그것은 집안의 족보이다.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조선의 성리학을 토대로 만든 족보가 무슨 문제냐고 하지만, 한국학에 대한 연구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문화적 가치에서 그 나라 혹은 그 민족의 역사와 삶이 크게 평가되었다. 민족성이 과거에 낡은 문물이라면 이제는 새로운 콘텐츠가 되는 원류이다(한국의 신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드라마, 영화, 연극, 오페라 등으로 만드는 얼마나 성대한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집안의 대동보가 나에게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 내가 하던 일 하나가 집안 족보를 확인하던 절차였다. 처음에는 아버지 이름과 형, , 엄마, 형수, 조카의 이름을 확인하다가 점차 할아버지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족보와 집안제사에 대해 생각하자면, 집안제사를 여자만 준비하는 것은 문제가 심하나, 제사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집안 몇 대조 할아버지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나, 그 몇 대조 할머니가 누군지도 정말 중요하다.

 

아버지 없는 자식 없지만, 어머니 없는 자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결국 할머니의 이름을 몰라도 할머니가 누구의 집안인지까지 다 보게 된 셈이다. 조선이 1910년 일본에 의해 멸망해도 조선이란 국가는 없을망정 조선인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들의 역사는 민중 사이에 계속 이어져 20세기 광복과 21세기 현대로 이어져 왔다. 일제침략 때 협조한 친일파 중 대부분 노론 출신이 많았고, 남인은 없었다. 소론과 북인이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노론에 의해 장악된 점이고, 독립군 중 남인의 후손이 많았다. 게다가 국회의원 중에 선조가 독립군 내지 독립투사를 하던 분도 있는 점도 눈 여겨 볼 수 있다.

 

조선이 비록 일본에 의해 망했더라도 당파싸움은 조선이 멸망해도 계속 이어졌다. 한국 역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당 정인보 선생은 조선의 마지막 등불을 다산 정약용 선생으로 여기고, 그의 업적을 남겨 우리 역사를 크게 발전시켰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의 책이 1930년대까지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 노론의 후예가 정약용 선생의 책을 시중에 나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 것이다. 지나간 일이라 하나,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E.H Carr<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주장한다.

 

조선의 당쟁은 과거의 일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일이기도 하고, 그것이 현재도 비슷해도 여전히 이어져 내려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족보를 확인하면서 할머니의 가계 쪽을 살펴보았다. 친할머니는 해주오씨, 큰할머니 한 분은 하동정씨, 또 따른 분은 동복오씨, 작은 할머니는 보은이씨였다. 더 높이 올라가면 증조모 남양홍씨, 고조모 통천최씨, 현조모 여산송씨이다. 그 외로 혼계가 많은 집안을 보면 광산이씨, 광주이씨, 전주이씨, 한양조씨, 청주한씨, 문화유씨, 원주이씨, 경주이씨 등이다.

 

본래 우리 집안은 남인의 후손이다. 남인이 숙종 이후 몰락하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자, 소론이던 사람들과 혼맥을 유지하고, 북인이던 사람도 혼맥을 유지한다. 특히 북인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본관의 창녕조씨도 많이 있었다. 다른 가계를 보면 어머니가 창녕조씨, 문화유씨, 원주이씨, 청주한씨인데 그 본인의 아내도 역시 어머니와 같은 본이었다. 물론 촌수가 멀겠지만, 결국 이건창의 <당의통략>대로 그게 이루어진 셈이다. 그가 책을 저술한 시기는 고종인 점에서 상당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창은 전주이씨 후손이고, 그의 조상은 동국진체를 만든 원교 이광사, 연려실기술을 저술한 이긍익이 있다. 이광사는 소론이었다. 소론은 서인에서 분리되었지만, 우암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에서 시작되고, 노론이 남인을 도륙하는 것을 보면서 소장파 서인이 소론으로 이어갔다. 소론이 경종 시기 득세하다 영조 때 거의 멸문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시파와 벽파로 갈렸다. 경종의 죽음과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깊이 슬퍼하던 자는 소론이고, 특히 사도세자를 중심으로 모인 게 시파이다.

 

시파는 정조대왕 서거 후 노론벽파에 의해 모두 권력에서 멀어지고, 남인은 천주교와 엮여져 멸문지화를 겪는다. 조선당쟁사가 결국 사대부 집안의 혼인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 점이다. <당의통략>의 시발점은 역시 선조와 광해군 시절이다. 선조는 원래 직계 왕손이 아니고, 명종의 조카였고, 조카 중에도 장자도 아니다. 군주로서 올라갈 위치는 아니나, 명종비와 국상 이준경의 재치로 임금으로 올라간 자다. 그러다보니 그의 위치가 약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선조가 초반에 정치적으로 뛰어났으나, 후로 갈수록 신하들 세력을 서로 몰아 피를 부르고, 그렇게 하여 자신의 왕권을 다졌다.

 

이때 사림에서 동인과 서인으로 갈렸고, 동인 중에서 퇴계 이황을 중심으로 남인, 남명 조식을 중심으로 북인이 되었고, 서인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중심으로 뭉쳤다. 문제는 당쟁을 두고 간략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해친다는 점이다. 송강 정철이 중심으로 되어 수많은 선비를 죽음을 몰고 간 정여립모반사건은 그 정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선의 거유인 최영경 선비가 자신의 편이 되지 않아 귀양 보낸 후 결국 목숨까지 빼앗았다. 이때 정여립과 친분이 있는 이유로 죽거나 화를 당한 자가 1,000명이 넘으니 당쟁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상처이다.

 

그 대부분이 동인이었고, 서인에 대한 불만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들의 증오가 얼마나 심했는지 당파로 군사지휘 체계가 정해졌다. 근왕병과 전시행정은 주로 서애 유성룡과 오리 이원익을 중심인 남인이었다. 의병은 북인이 중심으로 활동했다. 광해군 정권이 이이첨을 비롯한 정인홍이 주요 실권 세력인 이유는 북인이 광해군을 추대한 점이다. 당쟁에서 놓칠 수 없는 게 광해군 시대의 대동법일 것이다. 대동법에서 서인의 한당과 산당이 있는데, 한당은 한양을 중심으로 산당은 향촌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대동법을 주도하던 이원익과 김육은 당파를 넘어 대동법이 백성을 위한 길임을 알고 있지만, 향촌에서 대농장지주인 산당 거부 사대부들은 그게 싫었다. 광해군의 몰락은 단순히 폐비나 영창대군의 죽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성종도 폐비윤씨로 통해 연산군의 폭정을 일으켰고, 태종 이방원은 형제의 난으로 사촌과 친형제까지 죽였다. 그런데도 이점을 용인한 점에서 왕실 내 권력다툼으로 왕은 몰아내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왕조의 반정은 신하세력의 보존이다. 즉 재산권의 문제이다. 인조반정 이전의 중종반정 당시 반정공신 중에 연산군 아래 크게 성공한 자도 있다.

 

그들이 주군의 등을 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면 주군도 필요 없고, 백성의 눈물은 더 필요 없다. 광해군 시절 무리한 궁궐 토목공사를 일으킨 것에 대해 문제를 삼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명군에 파견나간 조선백성의 목숨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궁 하나를 만드는 것보단 병사 수 만 명을 죽게 만든 게 오히려 국력의 훼손이 아닌가? 당쟁이 명분과 의리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넘어 왕도정치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의 길을 막으면 어떻게든 권력을 차지해야 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위해를 가하면 그 이상으로 폭력으로 갚아야 한다. 조선의 백성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권력의 다툼으로 사대부들의 목은 항상 떨어지고 있었고, 심하면 가족까지 몰살이다. 죽어도 깨끗하게 참수당하는 게 아니라 능지처참까지 당하고 시신조차 찾지 못한다. 아니 이미 죽은 시신을 다시 관에서 꺼내어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는 잔혹하다 못해 비참하다.

 

이건창의 글에도 그러하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왕의 척신으로 있어야 하는 점이다. 숙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척을 배척하지 못한 점이다. 책에서 인평대군의 아들인 복평군 형제들이 궁녀와 내통해서 사약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역사의 후대에서는 그게 억울한 누명으로 밝혀진다. 숙종의 당숙이던 그들이 남인하고 친하게 지내고, 특히 복평군 형제의 어머니는 동복오씨인 점에서 남인세력을 두려워하던 노론세력에 의해 무고로 죽는다. 하지만 숙종의 어머니 명성황후가 숙종에게 달려가 김우명의 목숨을 보존하기를 바랐고, 무고죄로 죽어야 할 김우명 대신 복평군 형제들이 화를 당했다.

 

숙종은 몸이 약했고, 숙종의 아들 경종 역시 몸이 약했다. 영조 연잉군은 문제없으나, 영조의 작은 형은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왕의 병세와 심기를 두고 다음 권력을 두고 당파간의 항쟁은 어쩔 수 없었다. 왕이 바뀌는 순간, 왕은 자신의 편과 합작하여 상대세력을 도륙을 낸다. 이건창은 이런 조선의 당쟁사를 객관적으로 비교적 부정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가 왕가의 후예이고, 소론의 후예지만, 최대한 소론에 대한 긍정적 평은 배제했다. 그래도 소론의 입장은 어느 정도 반영했다.

 

숙종에서 영조까지 조한명에 대한 처신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북인에서 남인으로 혹은 북인과 친분이 있는 남인에 대해서는 과격하거나 무모한 인물로 설정했다. 단지 아쉬운 점은 당쟁을 비중이 큰 인물에 비추어 큰 사건에 비교했다. 당쟁은 아래로 권력에 대한 집착이고, 그 권력을 재력을 넓히는 방법이다. 재력이 넓어지면 백성의 살림은 곤궁해진다. 사실 광해군이 몰락할 때 백성들은 궁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궁궐 내 권력암투는 일상화적인 문제이고, 그들이 원하는 바는 세금감면과 병역문제의 해결이다.

 

이 책의 관점은 소론의 후손이나, 남인의 후손으로 보자면 소론인물인 어사 박문수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업적이 나쁘지 않다. 실제로 박문수가 활약한 장면이 나온다. 21세 윤증의 고택은 아직도 벽이 없고, 그 가풍을 유지한다. 이들이 정녕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히 정치적 권력을 두고 투쟁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책에서 자세히 명기하지 않으나, 많은 인물들이 백성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문제는 백성의 이익을 원하지 않은 자가 있고, 그것 역시 붕당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쟁거리였다.

 

사소한 계기나 혹은 작은 말꼬리나 소문을 가지고 상대편을 몰락시킨 점을 보면 무섭지 않을 수가 없다. 명분 뒤에 가려진 진실이란 상당히 두려운 것이다. 옳은 일을 해도 옳은 말을 해도 권력의 관계성에서 저울질하여 그만큼의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반드시 처리해야 할 업무조차 제대로 통과되지 않는다. 명분과 의리가 군주를 통한 왕도정치인지 아니면 이권과 권력을 위한 패권정치인지는 후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후예가 바라본 기록의 판단에서 다르게 이어져간다.

 

최근 국회에서 일어난 정치적 일들을 보면 이건창의 <당의통략>이 주는 교훈을 충분히 상기시킬 수 있다. 옛날에 고관대신이 화를 당하면 임금의 기분에 따라 처분되나, 지금은 국민의 여론에 의해 좌우된다. 당장 목이 날아가거나 먼 곳에 유배가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괴로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게 권력자들의 말로이다. 역사를 보면 현재를 안다고 했다. 정치권력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 입지에 따라 국민의 생활이 달라진다. 백성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상대편을 죽음으로 내몰렸던 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일까? 결혼과 관련하여 과거에는 사농공상이 나누어진 것도 모자라 당쟁의 입장에 따라 혼인이 성사된다. 나의 할아버지 세대까지 이루어진 셈이니 그 깊이는 매우 깊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이나 사농공상보단 경제적, 사회적 부와 권력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도 과거에 가난한 선비라도 학문적 명성과 인품이 자자하면 어느 정도 살림이 보장되는 집안의 사위로 될 수 있지만, 지금은 가난하면 평생 가난에 살 뿐이니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겉모습인가? 그러니 우리는 역사를 다시 보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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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9-1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건창의 당의통략이 번역되었군요!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만애비 님의 리뷰로 읽으니 이 책을 꼭 소장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종은 리뷰 감사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9-16 22:38   좋아요 0 | URL
건강은 쾌유했다니 다행입니다. 이 책이 지만지 출판사도 있지만, 이덕일 작가가 번역한 점에서 한번 읽어봤습니다. 제 리뷰가 도움이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