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
김정호 지음 / 생각의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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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반가운 얼굴들이 생각났다. 집안일로 몇 년 간 봉하마을에 봉사활동을 가지 못했지만, 당시 같이 논밭에서 제초를 뽑고, 공터의 잡초를 베며, 장군차도 같이 심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떠오르게 해준 서명은 <바보농부 바보노무현>이다. 책의 저자 김정호는 노무현대통령의 비서관이었고, 퇴임 후에는 같이 봉하마을에 넘어온 사람이다.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은 상당히 작은 마을이고, 주변을 보면 낮은 산과 들판의 벼만 보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김정호 비서관만 아니라 김경수 비서관 역시 그렇다. 김경수 비서관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지금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아내와 자녀를 이끌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노무현대통령 옆에 있었고, 노무현대통령이 그 육중한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 이후에도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 하러 봉하마을을 찾아오면, 김경수 비서관은 찾아와 인사도 나누고 같이 식사도 하고 했다.

 

김경수 비서관을 보면 공부를 잘 했고, 안경을 낀 얼굴이 마치 샌님처럼 생긴 반면 김정호 비서관을 처음 봤을 때, 도회지에 나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후 마지막 여생을 귀향한 농부처럼 생겼다. 옷도 편하고, 머리도 그냥 적당히 하고 다니고, 말투 역시 부드럽기보다 다소 쉰 목소리로 사투리도 적당히 섞었다. 그는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제주도 옆에 있는 추자도가 고향이고, 대학은 부산대학교를 나왔다. 그러나 중간에 생략된 게 있지만, 고등학교는 영도에 있는 부산남고등학교를 나왔다.

 

영도가 섬이고, 제주도 옆 추자도 역시 섬이다. 섬마을 소년이 지금은 농부가 되어 벼를 베고 정미소에서 쌀을 도청한다. 내가 처음 봤을 때가 아마 20115월이었을 것이다. 2011523일은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한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준비할 게 많다. 내가 가서 한 것은 그 전에 수고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더위와 햇빛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찾아오면서 낫을 들고 구릉지에 있는 잡초를 베고, 제초기로 공터를 정비하고, 장군차를 심기 위해 구릉지를 오고가고 했다.

 

경남 김해가 부산하고 가까이 있지만, 사실 내가 영도에 살고, 그것도 영도도 태종대 입구 쪽에 살다보니 상당히 멀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김해경전철을 환승 후 다시 김해시내버스를 타고 진영역에 가서 마을버스를 타면 총 4번의 버스 지하철을 탔다. 아침 7시 반에 나와 아무리 빨리 들어가도 10시 반 전에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나마 나갈 때 차를 가진 분에게 신세지고 지하철역에 가면 다행이다. 정말 쉽지 않은 먼 발길이었다. 하지만 무척 보람은 있었다. 책을 보니 나보다 더 많이 오래 활동하신 분들의 아이디가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그들의 별명을 보면서 옛날 그때가 생각난다. 최근 몇 개월 전 봉하마을에 들른 적이 있었다. 봉하마을은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건물도 제법 몇 동 생겼다. 처음 20096월에 방문할 때 아무것도 없었다. 가게도 몇 군데 없었지만, 상점도 생기고, 식당도 잘 운영하고 있었다. 주차장도 당시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는데, 조금씩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참 많이 지나간 것을 느낀다. 김정호 비서관은 그런 봉하마을에서 마치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었다.

 

김정호 비서관라는 호칭보단 봉하마을에서 대표님으로 통한다. 영농법인 봉하를 만들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봉하마을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가장 유명한 역시 봉하막걸리이다. 봉하막걸리에 맛을 들이면 다른 막걸리를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게다가 5월부터 9월 사이 뜨거운 태양아래 노동을 하게 되면 상당히 지친다. 그때 막걸리 한 잔에 두부김치, 부침개 등을 먹으면 다시 힘이 난다. 자원봉사하면 막걸리를 2통 넘게 마신 것 같다. 농사일이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실제 경험하니 더욱 그렇다.

 

농사일과 관련하여 봉하마을 논에 매년 연중행사로 하는 것이 들판에 글과 그림 등을 새기는 것이다. 들판에 녹색으로 너울 걸리는 벼에 다른 색을 지닌 벼를 심는다. 시간이 지나 가을 추수할 무렵이 되면 제법 멋진 글과 신기한 그림들이 나온다. 하지만 성과물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피사리, 흔히 우리는 피라고 불리는 잡초를 제거하여야 한다. 제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므로 잡초를 제거하러 논바닥에 들어가는 일은 참 어렵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거나 혹은 긴 장화를 신고 들어가 몇 시간 정도 제초 제거를 했다. 날이 좋은 날도 하고, 비가 오는 날도 했다.

 

제초를 제거하고 저녁 5시 반이나 6시 되면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는다.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나 혹은 그런 분들을 위해 주변에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준다. 때로는 남는 음식을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 이런 시간들을 가지기까지 시간을 제법 걸렸고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봉하마을은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 지금이야 정자가 놓여있고, 각종 들꽃과 야생화가 형형색색을 띄며 방문객을 맞이해주나, 논에 쓰레기나 슬러지가 가득했고, 공장에서 폐수가 몰래 방류되었다.

 

나의 전공이 환경공학이라 그런지 이 책을 보면서 노무현대통령의 환경적 마인드가 대단해 보였다. 사실 환경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문명의 혜택을 대신 넣으면 처음에 편리하고, 많은 이익을 주지만, 나중에 그 이익과 편리함 이상으로 재앙과 피해가 따르는 것이다. 물길을 막으면 물이 썩어 들어가고, 물이 썩으면 병충해가 일어나고, 병충해가 일어나면 작물조차 자라기 어렵다. 이런 순환적 모순을 이기기 위해선 자연 그대로의 조건을 받아 들이야 한다. 자연생태계는 자기 스스로 복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존중하여 맞추면 병충해도 이기고, 품질도 좋은 작물을 거둘 수 있다. 봉하마을에서 나오는 막걸리가 괜히 맛있는 것은 아니다. 쌀의 품질이 좋아야 막걸리의 맛을 보장하고, 봉하마을에서 나오는 쌀을 밥으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우렁이와 오리를 이용하여 친환경적 농업을 일구는 것은 곧 자연을 살리고, 대외무역에서 농촌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이제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삶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입맛을 조금 더 즐거운 곳을 찾는다. 봉하마을에 오면 쌀로 만든 막걸리와 각종 재래식으로 만든 반찬들이 입맛을 돋게 한다.

 

직접 내가 고생하여 수확한 작물을 다시 재가공하여 식품으로 마주하면 어떤 기분인가?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고, 농부가 일한 땅은 정직하게 답해준다. 한국에서 농사를 지는 분들을 그렇게 대우를 받지 못하나, 사실 농부가 있지 않으면 사회시스템이 붕괴한다. 왜냐하면 식량은 모두가 먹는 필수도수기이기 때문이다. 식량의 자급적 생산력에서 이미 한국은 외국에서 수입을 의존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 유럽, 미국 등에서 곡물과 고기, 생선을 받지 않으면 식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사를 지으면 대부분 농민에게 남는 것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얼굴에 까맣게 탄 흔적뿐이다. 자신이 직접 농지를 갖고 농사를 지는 것이 아니라 먼 곳에서 땅만 가지고 있다가 소작농 부리거나, 농지를 가진 이유로 각종 혜택을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사회가 도시화되면서 발전한 원인은 그만큼 농촌사회의 손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트에 가서 쌀 204만원 조금 넘는다. 쌀이 가장 싸다는 말은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루소가 인간의 권리가 가장 저조한 이유는 인간의 용도가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가장 저렴해야 이용하기가 좋았던 것이다.

 

쌀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도 없이 빚만 늘어가는 농부의 고민에 쌀 수입이 전면 개방되니 얼마나 힘든가? 그나마 쌀은 국내산이 좋다는 인식이 있기에 식단에는 한국 쌀이 올라와도 농민의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농사를 지는 것은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자연을 파괴하는 농업보단 자연과 친환경적으로 만들어가는 농사는 잃어버린 새도 날아오고 물고기도 헤엄친다. 자연이 푸르고 물이 흐르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은 황폐화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동물 생태계도 공존해야 한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새가 살 수 없는 곳은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노무현대통령이 고향에 내려오면서 가장 하고픈 일은 농촌을 다시 살리는 것과 농촌의 환경을 개선하여 농민은 경제적 이윤증대, 자연은 환경복원,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게 휴식공간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1년하고 3개월 만에 깨지고 말았다. 그가 세상에 없다고, 그가 꿈꾸던 세상은 포기할 수 없었다. 김정호 비서관은 그렇게 농부가 되어 갔다. 책에서 집에서 가출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도 예전에 김정호 비서관의 따님을 본적이 있었다.

 

자주 오지 않은 모양인데, 오랜만에 찾아온 딸을 두고 계속 봉하마을에 10년 가까이 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미련하면 바보 같다고 하나, 때로는 우리는 그런 미련한 인간을 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머리만 굴리는 사람보다, 가슴으로 움직이는 인간이 때로는 너무 그립다. 바보는 분명 욕일 수 있으나, 그 바보라는 의미가 어떤 식으로 가는지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상황이 너무 잘 나와 있다. 옆에서 지켜본 사람과 언론의 관점은 다르다.

 

권력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정보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보단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한다. 미디어가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므로 힘을 없는 자들은 대부분 진실과 먼 형태로 각인되어 그렇게 억압을 받는다. 그저 함께 하던 사람이 옆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이어가는 일이란 참으로 괴롭다. 김정호 비서관은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할 때 뒤처리로 너무 바빠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처음 벼를 베고 쌀을 수확할 때 묘비 앞에서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 내 코끝이 진한 느낌이 다가왔다. 봉하마을에서 마지막으로 김정호 비서관을 본 건 작년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니 몸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았다. 조만간 나이가 60세를 향해 가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활기차게 쉰 목소리로 반기는 김정호 비서관, 바보농부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도 중요한 것 같다. 조만간 봉하마을에 가서 얼굴을 비추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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