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참으로 많이 바뀐 것 같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를 나는 잊지를 못한다. 내가 살던 부산 영도에서 어느 한 노동자가 자살을 했다. 이름은 최강서 열사, 어느 누구에겐 열사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아주 불편한 이름일 것이다. 그가 자살을 한 이유는 당시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문재인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일 문재인 후보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이겼다면 그는 자살을 하지 않았고, 영도에서 중앙동으로 넘어가는 부산대교에서 그 긴 행렬의 장례행사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동자의 현실을 사람은 잘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자체는 잘 모르겠다. 실로 노동자 본인조차 자신에게 가해진 현실에 대한 부조리에 무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매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친다. 만일 그 피해를 당한 사람이 본인의 가족과 친구가 된다면 세상에 대한 부조리에 깊이 좌절한다. 그 좌절의 맛을 본 사람은 세상에 대한 불만과 모순에 원망으로 매우 부정적인 삶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대통령이 바뀌어 당장 가난한 노동자의 삶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극단의 선택을 고르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만 구축할 뿐이다. 그 말은 무엇인가? 억울한 일이 있으면 말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전부 해결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에서 오늘 내가 본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노무현대통령은 부산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국회로 입성 후 청와대로 들어간 인물이다.

 

노무현은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이고, 가진 게 없는 서민이라도 서민의 편이 제대로 될 수는 없어도, 되고 싶어도 그에게 힘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들은 더 없었다. 지난 참여정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정부라고 한다. 그런데 정권에서 다른 대통령 2번을 거치고 오면서 이제는 그 말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영국정치가 및 역사학자인 E.H 카를 역사를 두고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모르고, 혹은 긴 어둠의 터널을 헤쳐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역사에서 10년이란 시간은 정말 짧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매우 길고도 힘든 시간일 수 있다. 10년이란 시간을 두고 우리는 무엇이라 이야기를 해야 할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판단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주장을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 했다고 말이다. 참여정부는 실패했는데 왜 노무현대통령이 1등이란 말인가? 그것은 지난 다른 대통령을 겪으면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림자들의 섬>에서 노동자들의 시선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탐욕스러운 자본가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 자라면 퇴임 후에 화려한 생활도 하지 못한 채 1년 조금 뒤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내 가슴을 적시고 말았다. <노무현입니다>라는 영화는 노무현이란 인물을 과거의 인간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등장시켰다. 노무현이란 존재는 참으로 신화(神話)적인 존재이다. 신화란 인간이 아닌 신의 이야기라고 하나, 신은 인간의 심리와 욕망을 대체해 놓은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을 신격화시킨 점에서 노무현은 생물학적으로 사망했지만, 사회적으로 다시 부활한 존재이다.

 

인간의 죽음을 두고 어느 누군가는 생물학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에서 완전히 소거될 경우 사망이라고 지칭한다. 그가 남겨놓은 많은 자료에서 노무현은 죽은 인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E.H 카가 말한 역사라는 존재는 과거와 현재가 영원히 멈추지 않고 대화하고 있다면 노무현이란 존재는 과거가 있는 자가 아니라 미래진행 상황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은 그렇다 하더라도 제작사가 CGV(물론 아트하우스에서 지원했지만)라는 점이다. 대기업이 노무현대통령을 위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 그 시기가 전직 대통령이 탄핵 및 파면 전이란 점이다. 영화 개봉 시기는 525일이나 이미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되었다. 전에 내가 본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독립영화 또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던 규모가 상영관에서 볼 수 있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로 전인권의 노래인 걱정말아요가 상당히 흥행했다.

 

<노무현입니다><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비교하면 전편은 대통령 경선에 대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2000년 부산 북·강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이야기이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르지만 연결이 된다. 부산 북·강서에서 패배한 노무현은 원래 종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었다. 유리한 배경과 조건이 있는데도 반대당의 영역인 부산에 내려와 외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그 외로운 전쟁은 겨우 지지율 2%인 약소후보를 2002년 대통령선거후보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저 노무현대통령이 고졸 출신 변호사로 잘 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노무현대통령을 희화한 캐릭터이다. 고등학교도 경기고, 부산고 같은 명문 인문계열이 아니라 상고출신이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한 사람도 적은 시기지만, 상고출신 가방끈 짧은 변호사에게 세상은 참으로 야박했다. 노무현대통령도 만약 집에 여유가 있다면 부산에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서울에 있는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고시에 붙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농부의 자식은 학교에 다닐 입학금보다 오늘 당장 해결해야할 저녁밥이 걱정이다.

 

가난이란 것은 참으로 슬프고 원통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멸시를 받고 조롱을 받는 것만큼 서러운 것은 없다. 그리고 더 서러운 것은 그 가난이 나의 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식과 후손에게 영원히 이어져 가는 것이다. 노무현은 가진 게 없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이다. 가난한 이유로 굶주리며 살아가야 했던 그에게 그 가난이 자신의 적이었다. 비주류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이었다. 가난이 학교도 가지 못하고, 백도 만들지도 못한다. 가진 게 없기에 상대방과 싸울 때도 늘 밀린다.

 

노무현에게 가난과 그 가난으로 이어진 가방끈의 콤플렉스는 깊은 분노로 만들어진 슬픔이었다. 생각하면 그가 속한 당에 있던 사람은 과거에 야당만 해왔다고 해도, 김근태 의원은 학생운동의 대부였다. 하지만 학생운동을 하던 자들은 대부분 명문대학교 출신이 많았다. 엘리트 세계에 속한 자들이 가진 뛰어난 머리와 양심은 좋지만, 그 한계성이 있었다. 엘리트들은 가난한 사람이 힘들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그 힘든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힘들게 살아가는지는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과 드러나지 않은 심연의 고통은 다르다. 지금은 대학을 대부분 가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대학교보다 고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길가에 가는 어르신들은 초등학교만 나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가난 속에 숨겨진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우울은 아마 노무현대통령의 힘이었던 것 같았다. 노무현대통령 임기 5년은 나에게 군복무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200312월에 입대하여 20083월에 전역했다. 입대하기 전부터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던 나로선 전역 후 주변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괜한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군복무 중에도 그랬지만, 2008년 봄은 유독 심했다. 그런 분위기는 1년 뒤 2009년 늦은 봄 5월에 잊을 수 없는 비극으로 결말이 되었다. 그가 세상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나기 전에도 나도 외로웠다. TV와 신문에는 늘 노무현대통령만 때리는 기사만 나오고, 이른바 소위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도 숟가락을 올리며 더욱 심하게 때렸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세상이 허무한 공간이 되었다. 생각하면 진보정당이나 진보언론·지식인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심하다.

 

노무현이란 이름을 두고 계속 돌팔매를 날리다가 총선시기가 나오면 노무현의 이름을 우려먹는다. <노무현입니다>란 영화를 보면 한 측근이 나와 봉하마을의 장례행렬을 이야기해준다. 자신과 아무런 면식도 없고 아무런 득도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와 그 빗속에서 장시간 비를 맞으며 참배를 한 모습에서 진정 이것이 노무현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말이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을 소재로 한 도서와 영화 그 밖의 매체들은 노무현대통령을 누군지 알려주는 계기도 되지만 한편으로 그를 우려먹는 도구도 된다.

 

노무현대통령은 완전히 신화적인 존재라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의 영웅이었고, 반영웅이 되었다가 다시 영웅으로 소환되었다. 그가 영웅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상고 출신 변호사가 노동인권운동을 위해 길 위에서 싸우고, 많은 권력자들에게 맞서서 싸웠다. 우리가 입에서 말하지 못한 것을 그가 대신 속 시원하게 말해준다. 그가 반영웅이 된 동기는 무엇인가? 혼자 들쑥날쑥 설치다 현실의 벽에 걸리거나 또는 그를 믿었는데 우리를 실망시켰다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그가 처한 입장이나 현실적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

 

그가 선택한 최후는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다. 지금 젊은이 사이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있기에 노무현대통령이란 인물이 누군지 궁금할 것이고, 극우사이트에 접한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 그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런데 정작 그가 누군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자신의 크고 작은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은 주변인들을 외면한다. 그러나 노무현은 끝가지 외면하지 않는다. 돈을 포기하지 못해도 사람은 쉽게 포기하는 세상, 노무현대통령을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하는 이유는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영화 제목 <노무현입니다>는 과거 정철 카피라이터 책제목인 <노무현입니다>와 일치한다. 영화제목이 저렇게 만든 이유는 노무현후보는 길거리에 나가 길가의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고 말한다. <노무현입니다>를 보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대통령정부기관이나,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국민이란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2% 만년 꼴찌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마지막에 취임식에 간다는 것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은 신화가 된 것이다.

 

그의 시작은 서사의 발단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발단이며, 그가 임기 중과 퇴임 후는 위기였고, 그의 죽음 절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는 다시 서사의 발단으로 돌아갔다. 서사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은 모든 것의 종료가 아니라 또 다른 서사의 시작이다. 생물학적 노무현은 이미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노무현이란 이름 세 글자는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다시 말한다.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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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5-2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j가 박근혜 정부에게 압박당하고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아부성 영화 제작도 했지만 민심을 읽는 마케팅은 정말 잘 아는 듯.
http://www.huffingtonpost.kr/2017/01/16/story_n_14192040.html

만화애니비평 2017-05-28 22:13   좋아요 0 | URL
변호인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아무리 탄핵정국이라도 이런 행동은 거의 모험이네요. 마케팅도 대단하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임원들의 판단도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