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의 역사 - 역사학자, 조선을 읽고 대한민국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오래된 동네 친구와 그냥 하랄 것 없이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한 번씩 박물관에 가서 쉬는 경우가 있다. 박물관 입장이 무료에다가 집하고 가까우니 아무런 부담 없이 주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곳을 방문하면서 나는 조금 놀라게 되었다. 그곳의 상시 전시장으로 해양박물역사관이 있고, 한국의 해양인물, 해군의 영원히 군신, 조선의 성웅인 충무공 이순신 기록문헌이 있다. 내가 읽은 책이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이다. 그런데 전시관에 가보니 이순신이 자신의 방에 항상 장식해둔 장검이 전시관에 배치되어 있던 것이다.

 

물론 원본은 다른 곳에 있지만, 복제한 전시품이라 해도 충무공의 정신을 알 수 있었다. 3, 대략 길이가 보통 남성의 키와 유사한 도()를 보는데, 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자고 하면 죽을 것이란 글귀가 적힌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칼날 위의 역사>에서 나온 이순신 장군의 칼과, 전시관에서 본 칼을 보면서 이런 상황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는 책을 보고 서평을 적었는데, 이번에도 그 서평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서평이 되었다.

 

이순신 하면 성웅이기도 하나, 한국 전사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전쟁사만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까지 영역을 넓힐 수밖에 없다. 조선의 초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그가 왕권을 유지하려한 이유는 고려시대 백성들의 생활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관대작부터 시작하여 하급관리까지 백성을 수탈하는데, 그 근본이 권력의 유착성과 재산의 분배였다. 한 권력자에게 재물이 모이면, 누군가 그 재물을 위한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조선시대까지 1차 산업시대, 즉 농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정리된 사회이다.

 

조선이 멸망하여 일제로 들어가면서 2차 산업이 도입되고, 한국정부 수립 후 근대화 이름으로 사회가 급속으로 변화해도, 근본은 농촌사회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시골 농촌이 도시와 비교하여 전통문화가 잘 유지되는 이유는 농업이 기반 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의 기반은 농민이 주도로 생업에 종사되어야 하는 게 정론이다. 농민 그리고 평민 내지 양인이 많아야 재정도 탄실하고, 부국강병이 된다. 하지만 농민이 가진 땅이 적어지고, 그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면 국가재정이 파탄하고, 전쟁의 위기에서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프랑스 대혁명의 아버지면서 세계 민주주의사상을 만들어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인민이 저절로 늘어나는 국가는 발전하나, 인민이 저절로 줄어드는 국가는 망한다고 했다. 사회계약론이 정치철학적 도서이기도 하나, 루소의 사상은 정치학을 떠나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적 영역에서도 중요하다. 인구의 배분, 국민의 생계현황은 국가의 위기에서 어떤 상황으로 이끌어주는지 잘 알려준다. 조선은 바로 이런 문제로 시작된 국가이나, 이런 문제로 망한 국가이다.

 

태종 이방원은 외척과 고관대신의 비리와 부정을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형제, 아들, 조카까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들의 비리와 부정을 눈을 감아주면 그것에 의해 백성이 피해보고, 그들이 피해보면 국가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또한 약자들은 강자의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계속 피해를 본다면 국가 존위에 막중한 위기를 주는 점이다. 태종의 사상은 세종대왕의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주는 계기지만, 세종이 다시 정승제의 도입은 세조의 쿠데타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단지 세종은 황희 정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의정이 중심으로 6조를 관리하든지 혹은 왕이 직접 6조를 대면하든 문제는 사람이었다. 인물을 보고 잘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점은 역사로 통해 알 수 있다. <칼날 위의 역사>2016년에 나온 도서이고, 그 책에서 나온 일들은 700년 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이어진다. 과거의 일이 과거만이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 비슷한 일이 다시 돌아오는 점이다. 조선시대 권력층과 지식인은 사대부이나, 한편으로 양반 사대부들은 칼날에서 언제나 목을 갖다 바쳐야 했다.

 

그들의 죽음은 권력에 저항했기에 권력을 승복했기에 권력에 의존했기에 권력을 이용했기에 그렇다. 애초부터 태종의 조치나, 연산군의 사화나, 기묘사화, 윤휴의 죽음, 이순신 죽음, 류성룡의 기각, 정조의 의문스러운 붕어조차 그렇다. 대한민국에 비명으로 죽은 어느 한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 아니라 조선 역사에서 바른 말하던 사람들은 모조리 죽고, 피지배자 계급인 약자는 평생 억압을 받고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한 채 서러운 인생을 살아야 했다고 말한다. 생각하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집에 있는 족보는 결국 나의 소유물이 되었다. 이전부터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혹은 아버지가 병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족보를 틈틈이 보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적에 나의 친할아버지는 3권짜리 족보를 유산으로 들고 갔다. 재물보단 족보를 선택하였다. 그 족보는 아버지로 넘어가 이제 나에게 돌아왔다. 과거의 이야기에 매달리는 것을 바보 같다고 보나, 그건 아니라 본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시청하면서 집안의 족보는 우습게 보는 사람이야말로 한심한 것이다.

 

족보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사간원 사간(司諫院 司諫)을 했는데, 그 시기가 중종이었다. 이분이 중종 이전 연산군 시절에 진위장군(振威將軍)에서 사간원 정언(正言) 자리를 맡았는데, 연산군 10년차에 만화석(滿花席) 문제로 장 70대를 맞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물론 장을 맞기 전에 연산군 시절 내내 비리나 부정, 혹은 잘못된 것에 대해 계속 상소나 진언을 올렸다. 결국 바른 말을 하다가 화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병조참의공비문을 보면, 이분의 업적이 나오는데, 최고의 업적은 자식을 많이 두어 집안을 번창하게 해준 공이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이분의 덕분이지만, 이분의 비문을 보면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국했는데, 비문을 보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순국한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의 종형제 후손은 충무공 진영을 도와주기 위해 진군 중 적군과 만나 순국하고, 그 소식을 충무공 이순신 이억기 수사가 듣자 분통을 참지 못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억기는 전투 중에 죽고, 이순신은 친우 류성룡이 실각되자 희망을 잃는다. 아무 생각이 없던 과거에는 그저 드라마(<불멸의 이순신>)에서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보겠지만, 가문의 사연에서는 한탄스러운 이야기이다.

 

<칼날 위의 역사>를 보면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 되풀이 된다는 식으로 정리된다. 과거 조상들에게 닥친 일들이 지난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비슷한 일들이 닥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권력에 의한 무고한 신하를 죽이고, 권력을 위해 임금을 속이는 행위에서 그 모든 피해는 백성에게 부가된다. 사간원 청빈한 자리이고, 모든 백성의 눈총을 받는 자리이다. 그런 만큼 위험한 자리이면서 권력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청백한 관료들은 권력자들에게 박해받고, 권력을 오로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지난 역사를 보면서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순신을 몰아낸 서인들은 노론으로 이어지고, 노론은 을사오적의 뿌리이다. 노론의 역사는 400년이나,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통념은 아직도 은근히 남아있다. 과거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고, 과거의 폐단을 고쳐가는 게 정당하나, 그런다고 과거를 버리는 것은 우리의 지금을 완전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점조차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솔직히 조선이 과거의 유물이라 해도 조선의 관직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각각 인사권과 수사권을 분산하고, 서로 간의 부정부패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관료제를 보면서 아무리 조선이 낡은 것이라 해도 현재 관료조직보다 훌륭한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단지 일당으로 채워진 관료는 심각한 폐단이 되었을 뿐이다.

 

지금은 당론정치가 국회와 정부 수장에게 주어지지, 하부 관료들에겐 당론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당론의 주장이 하부관료들에게 운영지침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조직만큼이나 중요한 인물, 인물을 찾아내거나 혹은 검증하기 위한 제도, 비선제도를 엄연히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모든 오류와 왜곡은 백성들에게 피해로 이어지고, 백성이 가난하면 나라는 망한다. 대한민국은 왕조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되나, 민주정이나 군주정이나 근본은 같다.

 

백성,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이다. 국민이 아닌 권력자를 위한 정치란 곧 망국의 시작이다. 국가의 주인이 바뀌어도, 국가의 존립자체에서 그 근본 토대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망각하고 날뛰는 세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과거에는 그것을 바꿀 힘을 국민에게 주지 않았으나, 이제는 국민만이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대신 국민 스스로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그 고통의 나날은 변하지 않고 지속될 뿐이다. <칼날 위의 역사>에서 조선은 칼로서 목을 베나, 현대는 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들이 나온다. 인터넷의 정보와 첨단무기 등등, 어찌 보면 오늘 우리는 칼날 위가 아니라 미사일 위에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4-23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3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