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 전면 개정판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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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의 일이다. 아버지가 제법 건강한 상태에서 배를 타고 때이다. 아버지와 나는 당시 TV를 보면서 역사관련 영상물을 보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송강 정철이었다. 송강 정철이라면 선조 시대 아주 유명한 정치가이고, 명문가이며, 국어교과서에 가사문학의 대가로 나온다. 그런 정철을 보는 아버지의 시선은 조금 의아했다. 송강 정철은 유배가면서 사미인곡을 저술했는데,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나라를 걱정하는 충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한 것은 송강 정철은 아주 아부를 잘 하며, 그래 훌륭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시 나로서는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 날 그것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게 되었다. 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도 과거의 인간으로 끝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철이 기축옥사가 일어났을 때 많은 문무백관과 선비를 죽게 만들었다. 당시 기축옥사 발화점이 서인이던 정여립이 남인과 어울리면서 이것에 대한 불만이 이상하게 터진 것이다. 물론 동인(남인과 북인의 이전 통합세력)이 서인의 반대세력은 맞으나, 권력관계에서 이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동인의, 영수 이발이 기축옥사로 죽게 되는데, 이발이 죽게 되면서 그의 노모와 아들까지 옥사로 죽고 만다.

 

이발의 노모 연세는 팔순을 지났고, 어린 아들은 아직 10살 밖에 되지 않았다. 아들과 아버지가 역모와 아무 관계도 없는데도, 국문에 불러와 고문을 받은 할머니와 손자는 그대로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 이발의 노모에게 남동생이 있었다. 그 남동생도 기축옥사와 연루되어 귀양 가는 길에서 객사하고 만다. 기축옥사는 430년 전의 일이다. 생각한다면 아득한 과거이나, 문제는 그 이발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내 직계할아버지와 6촌 관계였다. 정여립의 주요 활동처가 전남이었는데, 강진과 해남 일대에 이발의 외가 친척들이 포진한 곳이다.

 

지금이야 촌수 6촌도 잘 모르는 시대지만, 당시는 형제와 부모 그리고 일가들이 같은 마을에 무리지어 살거나 설사 같이 있지 않더라도 다소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왕래가 잦았다. 정철의 서인과 남인의 관계는 1589년 기축옥사를 시작하여 학봉 김성일이 왜국의 시찰가던 일까지 파장을 일으킨다. 학봉 김성일은 남인계통 문관이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사람이다. 같이 일본에 간 사람이 서인이었고, 남인과 서인의 관계가 틀어질 때,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그런 관계성은 잘 보여준다.

 

흔히 임진왜란에 활약한 인물하면 바로 이순신, 이억기, 곽재우 등을 떠오른다. 문제는 이순신과 그 친구 서애 류성룡은 남인 계열이고, 곽재우와 정인홍은 북인 계열이다. 남인 영수 류성룡이 왜국과 임진왜란을 종결한 이유로 탄핵받아 평생 안동에 머물다 울화병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송시열이 나오기 전에 이미 정철과 류성룡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오래된 원한과 권력투쟁에서 시작된 비극이란 점이다. 광해군 시기는 북인이 대세였고, 그 밖의 서인과 남인이 연합한다고 해도, 남인의 대우는 다시 집안의 가계를 생각하면 틀이 맞는다.

 

내 직계 할아버지 1분은 무반으로 입관하여 함경도 북청군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이가 70세가 넘어 그런 추운 오지에 보내는 것은 솔직히 죽어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타개책으로 양반이 아닌 천민이 왜군 하나를 죽이면, 면천을, 2면은 호위무사, 어느 이상이 되면 충분한 직급을 주어 출세하게 해준다는 정책이었다.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여기에 군사를 양성한다면 충분히 병력을 모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기존 사대부계층의 특권에 큰 반류가 형성되므로, 기득권을 잡은 양반들에게 반발을 당했다. 군역과 세금문제에 류성룡은 실각하게 되고, 조광조 역시 기묘사화로 당하고, 백호 윤휴도 죽임을 당한다.

 

문제는 류성룡과 윤휴의 실각에서 반대세력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윤휴에 이르면 노론과 노론 영수 송시열의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점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이해라면 여러 가지 정황을 이해하는 것이고, 나는 거기에 집안의 내력에 대입한 셈이다. 한국의 조선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다. 그분이 서가한지 100년 정도 지나 일제 치하에서도 그분의 책이 제대로 융통되지 못했다. 그만큼 역사에서 보인 권력의 욕망은 세대를 지나 영원불구로 가려는 것 같다.

 

물론 송시열은 유학자로 실력이 뛰어나고, 우암연구소가 생길 정도로 현대 한국에서 큰 인정을 받는 선비이나, 그의 신화는 그의 진정한 모습보단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가 많다는 게 이책의 요점이다. 율곡 이이는 서인의 학문적 스승이다. 이에 반대되는 사람은 퇴계 이황이다. 남인과 서인은 초반에 같은 사림의 동료지만, 어느덧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다. 이이의 연구자료를 보면 그는 임진왜란 전 10만 대군 양병성을 주장하지 않았으나,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송시열의 북벌론은 그가 주장한 게 아니라 윤휴의 주장이었다.

 

윤휴는 효종과 현종 시대 계속 북벌론을 주장하고, 이에 대한 대책은 양인의 양성, 군병의 보강이다. 양인의 보강은 노비를 줄여 농사짓는 평민을 늘려 재정자원을 확보하고, 양민에게 입관할 기회를 주어 병력보강을 하자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이 만든 기획안은 이미 폐기되었고, 거기에 동참한 무관과 평민, 노비 모두 귀양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숭명반청을 외친 사대부사회라고 실제는 그렇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이익에 몰두한 셈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나친 강요와 집착은 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진 사상적 기반을 철학적 사유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하나의 통치방법론으로 만들어버린다.

 

주자가 만든 성리학은 결국 공자맹자가 만든 유학을 변용할 뿐이다. 공자는 선비를 두고 백성들이 평안히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라 말한다. 말 그대로 생업에 종사하더라도, 여러 가지 행정이나 학문적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에 선비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했다. 하지만 양반들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 기득권을 놓지 않았고, 세금과 병역폐단은 이미 뿌리깊이 못이 박혀버렸다. 우암 송시열과 그들의 세력에게 농민과 노비의 운명은 중요하지 않았다.

 

송시열은 자신의 이익에 치중하지 않았지만, 송시열을 따른 무리들은 송시열이란 인물로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 현종 사후, 숙종이 등극할 때, 숙종은 매우 무서운 군주였다. 숙종은 장인과 외척세력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기 위해 공작정치를 했다. 송시열도 여기에 한몫했다는 점에서 그는 권력에 대한 집요한 집착이 있었다. 물론 반대세력 남인도 존재했다. 하지만 학문과 학문으로 통해보는 왕조시대에 송시열은 조선을 왕권이 아닌 신권이 중시되어야 주장했다.

 

왕권이 강화되면 사대부들이 누릴 이익과 기득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이익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런 것보다 자신의 관점에서 정립되어야 주자학을 절대성의 불가침에 집착한 셈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지니 거기에 따른다면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가? 예송논쟁에서 임금이 장남이든 차남의 관계보단 왕이란 직분이 중요했지만, 오히려 사대부와 동일한 시점에서 파악하려 했다는 점이다. 왕과의 권력관계 주도성이 신하에게 가면서 임금이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할 보증인이 된 것이다.

 

만일 거기에 의문이나 반대론을 주장하면 가만히 두지 않았다. 많은 피를 뿌렸고, 영원히 희생당한 자들의 자손까지 피를 보게 만들었다. 송시열의 주적에서 백호 윤휴가 있지만, 또 하나는 고산 윤선도가 있다. 윤선도는 기축옥사 죽은 이발에게 외삼촌의 손자이다. 서인에게 대한 분노와 원망에서 가족을 잃은 윤선도의 입장에서 천하의 원수이고, 임금에 대한 충정에서 왕조국가 군주정을 위협하는 세력이다. 그러나 서인에 의한 인조반정은 이미 기울어진 축구장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조선왕조는 이어갔다.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인 정조시대 다산 정약용이 등장해도, 그의 어머니는 고산 윤선도의 직계 후손이었다. 정약용이 남긴 글에서 조선의 한 사람에게 매우 따르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한 사람은 여기서의 송시열을 의미한다. 예송논쟁은 350년 전에 일어난 일이나, 지금도 문제가 되는 내용이고, 450년 전의 기축옥사의 억울함 역시 지금도 역사학자들에게 늘 새로운 숙제로 등장한다. 권력을 잡기 위한 사대주의적 태도는 늘 우리 한국사회에서 자주성을 놓치게 만드는 요인이다.

 

문제는 그런 흐름이 이미 450년 전후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역사를 보면 지금을 알고, 지금을 알아 가면 미래에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생각할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 카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라고 지칭한다. 지난 일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에 그 사람의 불과 1일 내지 1년 전에 일어난 불행한 일조차 하나의 역사이다. 단지 우리의 역사는 국가적 틀에서 보겠지만, 국가나 개인에게 일어난 시간적 흐름을 그대로 흘러 보낸다는 것은 정말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란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진 것을 알게 해주는 스토리텔링이라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의 이야기구조에서 Narrative의 시작과 끝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통해 어떤 이데올로기가 함축되어진 것인지 알아가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관점은 화자 내지 화자를 형성하는 어떤 특정세력에 의해 의미로 만들어질 수 있다. 21세기 한국에서 향교에 가면 공자와 맹자, 그리고 조광조와 이황 같은 유학자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이중에 송시열이란 이름도 당당히 들어가 있다.

 

노론 일당독재 시대를 수 백 년을 거친 조선에서 송시열의 존재란 당연히 신성시 되어야 할 존재일 것이다. 물론 그의 학문의 정신과 깊이는 엄청나지만, 그가 가지고 온 학문의 자율적인 관점, 그리고 상대방의 무관용은 조선의 정치사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서평을 적으면 생각하나,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인물을 주요인물만 생각해야 하나, 진정한 인물을 보는 것은 그 인물이 무엇을 하려 했고, 누구를 통해 무엇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 사대부는 지식인이고 엘리트이다. 그들이 지식인이라면 민중, 즉 백성의 의향을 정치권과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정도의 학문이다. 그런 학문과 정치를 하지 않은 사대부는 그저 권력만 치중한 소인배 일뿐이다. 소인배는 대의라는 이름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나, 대인은 대의라는 큰 의지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주자가 만든 소학을 읽으면 작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이 마주해야 할 작은 대상도 포함되어야 한다. 임금을 구중궁궐에 앉아있지만, 도탄에 빠진 백성의 눈물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백성들의 작은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는 게 정치의 기본도덕이나, 과연 거기에 충실하였다면 그는 분명 훌륭한 정치가이나, 그렇지 못하면 권력자들에게 훌륭한 상징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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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심정을 저도 이해 됩니다. 저도 광산 이씨집안이고, 할아버지 중 한 분이 말씀하신 이 발 자 할아버지셔서 공감이 가네요...지금도 집안에서는 정씨 집안과 혼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저는 한 편으로는 정 철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네요...

만화애니비평 2017-04-22 08:10   좋아요 1 | URL
기축옥사와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집안에 화를 너무 당한지라 참 끔직해보이더군요. 장형 참 무섭더군요. 장형 1대만 맞아도 고통이 이만전만 아닌데 수십대를 맞은 할머니와 어린아이에겐 무슨 죄가 있는지.
기록을 보니 당시 광산 이씨의 씨를 말리려 했다는 글에 깜짝 놀랐습니다.
광주(광산) 이씨 중 국상 동고 이준경이란 분이 운명하기 전 붕당의 폐단을
지적하는데, 그 폐단의 화염이 바로 정철이란 아이러니하군요

2017-04-22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2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2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