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철혈의 오펀스> 시리즈가 완결되었다. 1기와 2기로 구성되어 철화단이란 팀이 성립하여 몰락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동안 건담 시리즈는 퍼스트 건담, 제트, 더블 제트, 썬더볼트 등을 감상했다. 기존 건담 시리즈를 보면 주인공은 특별한 선택적 존재가 강했다. 어디에나 있을지 모르나, 어디에나 없을 것 같은 존재, 비운의 주인공이란 속성이 매우 강했고, 그 비운의 존재는 부모가 정치인, 건담이나 기체 과학자 등 건담을 타게 된 동기는 어느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지만, 그 일치는 어떤 정해진 하나의 숙명과 같은 일들이었다.

 

건담 철혈의 오펀스를 방영하면서 중간에 제작된 썬더볼트나 유니콘을 보면 그런 느낌이 매우 강하다. 특히 유니콘 시리즈를 보면 폰 프록탈은 샤아 아즈나블의 재림 내지 그의 사상을 이어받고 있고, 건담 유니콘 조종사인 버나지 링크스는 베일에 쌓여진 가문의 사생아로 등장한다. 그와 같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히로인은 지온 총수의 영애 미네바 라오 자비는 이미 공주 신분이었다. 건담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이렇게 거대한 세력의 얼굴이나, 그 얼굴 아래 숨어 있는 거대한 뿌리의 원천과 깊은 연계성이 있었다.

 

그러나 철혈의 오펀스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인간이 아닌 하나의 기계였다. 건담 조종사들은 우주의 진화에 이끌려 이른바 뉴 타입으로 각성했지만, 그들은 뉴 타입 같은 초월적 능력을 가진 자도 아니고, 거대한 권력과 은밀한 권력을 가진 자도 아니다. 말 그대로 우주의 쥐 혹은 떠돌이 개들의 집단이라 해도 의문이 없을 정도였다. 건담 시리즈에서 이렇게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는 없었다.

 

기존 건담 시리즈를 보면 로봇메카닉 장르에 일본의 문화를 교묘하게 섞어 만들었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 교수의 <저패니메이션과 디즈니메이션의 영상전략>에서 형이하학적 일본 고유의 문화를 담론하게 되었고, 하드고어적인 요소를 메카 장르로 구성했다. 로봇이 큰 총을 들고 다니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으며, 게다가 전자 빔을 들고 다닐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막상 모빌 슈트의 전투 장면을 보면 군인들의 사격술 내지 검술로 볼 수 있다. 기계로 움직이는 로봇이나 사실은 인간을 대체하는 하나의 기호인 점이다.

 

건담에서 최종적으로 모빌 슈트의 전투는 칼과 도끼로 싸운다. 특히 도() 형태를 들고 싸우는 경우를 보면 사무라이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 건담 철혈의 오펀스 마지막 장면에서 미카는 죽는다. 그의 죽음에서 상대편 파일럿은 자신의 모빌 슈트를 조종하여 건담 발바토스의 머리를 자른 후 칼끝에 그 머리를 걸어 놓는다. 이 장면은 전장에서 적장의 목을 벤 후 승리를 포효하는 형태이다. 칼로 일기토를 나누는 전쟁방식은 20세기 오면서 완전 사라졌다. 형이하학적 역사적 담론 부여는 바로 이런 부분이다. 한창완 교수가 지적한 일본이란 국가는 사무라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이 매우 깊게 있는 것을 착안한 점이다.

 


건담 철혈의 오펀스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서양인인지 동양인인지 구분할 수 없다. 미카나 올가 모두 영어와 일본식 이름이 섞여 있고, 사실 그들은 말하는 게 일본어로 등장해도 사실은 영어로 모든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올가가 터빈스 두목과 의형제를 맺거나, 테이와즈 두령과 아버지와 아들관계를 맺을 때, 그들의 모습은 서양보단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이름을 적을 때 붓을 이용하여 한자로 적어내는 모습에서 이번 건담 시리즈는 일본만의 문화를 깊이 드러내었다.

 

그래서 어느 누군가는 일본 야쿠자 문화를 철화단 및 기타 조직들에게 깊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나, 야쿠자와 철화단은 그런 집단 자체가 하나의 가족이란 인식도 있지만, 다른 방식이 있다. 야쿠자는 이른바 자신들에게 가지고 있다는 대의(大義)를 내세우나, 철화단은 대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야쿠자의 대의는 의리 내지 혹은 그밖의 신념이라 말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그들은 사회적 도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이권경쟁에서 하나의 명분을 붙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철화단은 대의 내지 거대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1가지만 바란다. 우리는 기계나 소모품, 우주의 쥐가 아니라 생명을 갖고 있는 하나의 생명이란 점이다. 철화단은 자신들이 어디서 태어난 것도 모르고,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신들이 처해진 가혹한 환경과 여건에서 계속 생존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처음과 마지막으로 타인 내지 집단과 접할 때 보여주는 행동이 폭력이다. 폭력이 처음 일어나는 이유는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가 등장하여 순간 적개심이 일어나는 행위이다. 낯선 존재와 조우는 곧 인간 본연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폭력은 대화와 어떤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이 통하지 않을 때이다. 철화단이 취한 폭력적 수단은 마지막이다. 그들이 전쟁을 선택하고, 죽음을 알면서 뛰어든 이유는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폭력이 왜 정당하면서도 정당하지 못하는가? 폭력을 취하는 것은 인간의 공포에서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철혈의 오펀스에서 미카만 아니라 많은 파일럿이 척추에 센서를 부착한 수술을 받았다. 아라야식 시스템은 인간에게 생물학적 영역에서 기계적인 공간으로 확장시켰다. 전투 병기를 다룰 때 상상을 초월한 반응, 이성과 감성을 배제한 인간에게 유일하게 남은 생존본능이 폭력성을 키웠다. 문제는 그 폭력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철화단은 기존에 상당히 부조리한 대우에서 일을 해야 했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일도 계속 맡아왔다. 갈라르호른이 처음 침투할 때 기지에 남아 그대로 생명을 빼앗길 위기도 있었다.

 

구원이란 단어는 그저 의미 없는 존재이고, 미래라는 단어는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이었다. 인간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아마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휴먼 데브리를 비롯한 우주의 쥐들은 죽음조차 무서운 것이 못되었다. 죽음이란 세계는 늘 자신과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우주의 쥐를 보면 대부분 나이가 10대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이었다. 청소년인 아이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가혹한 환경에서 계속 살아온 인간이다. 어린 아이라면 누구나 보호받고 교육보장 및 문화적 삶을 보장 받아야 했다.

 

공부는커녕 하루조차 살기 어려웠다. 이 작품 히로인으로 등장한 코델리아는 타카키에게 공부를 하면서 세견을 넓히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고 했다. 타카키는 성인이 되자 정치인의 보좌관이 되었고, 그는 뒤에 그 정치인을 이을 후계자로 정해지도록 유능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나 그런 자리를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그것은 자신의 환경, 즉 후천적인 불평등이다. 이런 관점은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으로 볼 수 있다.

 

코델리아는 작중에서 혁명의 소녀로 나온다. 그녀는 마치 낭만주의 작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생각나게 만들 정도로 강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코델리아는 여론의 주목은 받지만, 그녀에게 힘은 없었다. 정치적 발언도 없고, 미카처럼 건담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단지 그녀가 철화단과 세계의 인류에게 보여준 건 오로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그 희망은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미래와 희망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철화단은 자신들의 몸부림으로 많은 희생을 따랐다. 그러나 그들은 후회는 없었다. 마지막 철화단이란 이름은 없지만, 그 안에서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은 유일한 소망은 이루었다. 작중 철화단 적대세력 정점인 라스탈은 군인이면서 정치가이다. 그가 유일하게 바란 것은 대의의 유지이다. 위에서 대의를 입에 달고 다니는 존재는 대의가 사실 없는 존재에 가깝다. 대의라는 것은 제일 아래 고통 받는 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기원론>1789년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이데올로그가 된 책이고, 19세기와 20세기에 많은 혁명가들의 복음서가 되었다.

 

혁명은 피를 부르나, 그 책은 피를 부르기 위해 만든 책이 아니라 피를 멈추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더 이상의 피를 막기 위해선 또 다른 피를 흘러야 하는 최소악적인 조건이 따른다. 맥길리스 파리드는 그런 폭력의 원천을 알았다. 그도 역시 철화단 어느 소년들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리드가 친구를 배신하고 죽인 이유는 그가 살아온 환경과 그의 친구가 살아온 환경은 달랐기 때문이다. 파리드를 따른 많은 청년 장교들은 갈라르호른의 부패에 불만을 가졌다.

 

작중에 지구인과 화성인을 따졌고, 변방의 인간들은 앞으로 출세조차 할 수 없고, 어디에나 가도 무시를 당했다. 파리드의 야욕은 절대적 폭력을 이용한 혁명이다. 그는 전설적 존재를 찾았다. 그가 추구했던 힘은 신화적 존재 건담 바알이고, 라스탈은 그동안 갈라르호른이 계속 유지해온 역사라는 서사를 제시했다. 파리드의 신화 서사와 라스탈의 역사 서사가 충돌했지만, 신화적 서사가 패배했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역사가 신화를 이기게 된 것이다. 갈라르호른이 부패한 이유는 정치제 구조였다.

 

갈라르호른은 세븐즈 스타 가문에 운영되었다. 갈라르호른은 지구방위와 치안유지로 공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질서의 유지는 추상적 개념이나, 그것을 운영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위이므로 결국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한 법적인 운영은 어떤 인간들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린 셈이다. 그것이 개인의 이권에 결부되는 순간, 공권력은 질서가 아닌 이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세브즈 스타를 보면 정치제 구조가 과두정이다. 소수 몇 명이 권력을 나누어 가지면서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나, 그 견제에 의해 하나의 체계가 자리 잡히게 되는 점이다.

 


갈라르호른 내부항쟁과 철화단의 반격으로 갈라르호른은 많은 타격을 입었지만, 라스탈은 오히려 이것을 이용하여 과두정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민주정의 우두머리로 되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소 민주주의적 요소를 보인 민주정인 셈이다. 대의를 외치기만 하고, 그 대의 너머의 문제점을 계속 방치하면 대의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휴먼데브리를 만드는 것을 중지시킨다. 그 이전에 갈라르호른은 휴먼데브리의 존재를 알았고, 심지어 그들을 이용하는 조직과도 은밀히 손을 잡았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지만, 대의라는 거대한 역사적 서사에서는 역사적 진보와 더불어 권력의 세계는 더 견고한 틀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화성의 식민지 정책에서 우회한 이유도 대의를 내세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점이다. 코델리아는 처음에 세상물정 모른 아가씩였으나 마지막에는 정치적인 수완이 좋은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다. 물론 라스탈은 철화단과 코델리아 관계도 알고, 그녀조차 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오로지 대의라는 명분이다. 코델리아도 대의가 있지만, 그 대의를 이룰 힘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제거하려는 갈라르호른에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원수와 손을 잡아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 건담 철혈의 오펀스는 상당히 변증법적인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건담 시리즈는 서로간의 대의가 부딪혀 이해할 수 없어 사라져가는 존재들이 많았다면, 철혈의 건담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줄리에타는 가엘리오와 대화하면서 처음에 미카와 철화단이 인간이 아닌 괴물 내지 짐승으로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겐 전장이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순간을 두고 몸부림치는 인간 그 자체였다.

 


전쟁이란 대립관계가 놓인 세력이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이 되는 행위이다. 철화단이 투쟁하게 된 동기는 정치사회적 문제에서 시작되지만, 그들은 정치사회적 관계를 염두하고 싸운 것이 아니다. 오로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싸웠다. 내 옆에 친구가, 내 뒤의 동생이, 앞으로 태어나 살아갈 후예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짐승과 같은 시간을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 위해 투쟁했다.

 

한국문학가 성석제의 <투명인간>이란 작품이 있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동시에 한국전쟁으로 피난인의 후손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보여준다. 자신들에게 닥친 가난과 배고픔, 그 속에서 죽어간 많은 사람, 그들은 당장 오늘은 먹고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생계가 조금 나아지고, 형제자매들이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가게도 만들자 자신들만의 희망을 만들려했다. 어린 시절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 받은 자들은 하루 밥 한 끼 배부르게 먹고, 따듯한 방에서 푹 쉬는 것이 소원이었다.

 

자신에게 내일은 없다. 오직 오늘만 존재하고, 미래의 걱정은 없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면 1830년 프랑스 3월 혁명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한다. 그림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총과 무기를 들고 나온다. 여신의 뒤를 보면 어린 아이가 권총을 들고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왜 어린 아이가 무기를 들고 죽음을 무릎 쓰고 나오는 것인가? 1870년 파리 코뮌이란 또 다른 혁명이 있었다. 기록을 보면 팔 하나를 포격으로 잃은 남자아이가 대포에 포환을 넣는 장면도 나오고, 어린 소녀가 총을 들고 나오는 장면도 나온다.

 

그들은 아주 똑똑하거나 대의라는 이데올로기는 모르나, 단지 이것만은 안다. 부조리한 세상에 더 이상 희망과 미래는 없고, 오로지 우리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 남은 목숨이다. 하지만 그 목숨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건담 철화의 오펀스에서 철화단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죽음이 닥쳐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온 과거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건담 철혈의 오펀스에서 부조리한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존재는 어린 아이와 여자로 등장한다.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약하기 때문에 폭력이 노출된 야만의 세계에서 희생되는 존재이고, 어린 아이는 그 성인 여성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 약하기 때문에 가장 심한 희생양이 된다.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싸우고, 여자들이 위험한 일을 하는 세계란 제정신이 박힌 곳이 아니다. 아직까지 현대사회에서 테러조직은 아이들에게 자폭테러를 시키고, 여자들에 대한 인권탄압을 한다. 어린아이들은 죽음이란 관념을 모르기에 그대로 죽음을 당하고, 여자들은 폭력적 남성에 의한 성적 착취, 그리고 전투요원 재생산을 위해 출산도구로 만든다.

 

그런 여자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불행한 삶을 피할 수 없고, 그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죽음을 이겨내 어른이 되면 똑같은 테러리스트로 성장하고, 똑같은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한다. 철화단은 바로 그런 아이들이 모인 세계이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건담이 가진 세계관은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적인 영역이다. 지온과 연방의 패권다툼은 인간불평등에 의해서였지만, 지온 총수의 이념 아래 결국 지온공국이 생성되었다. 자비가문에 의해 결국 지온총수는 암살당했지만, 지온이란 국가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국가들의 분쟁과 달리 철혈의 오펀스는 경제적 조건 물질적 조건에 의해서였다. 관념론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상당히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작품이 진행된다. 살기 위해서는 현실조건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고, 현실은 자신에게 유리하지 못하며, 알 수 없는 변수들이 계속 충돌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했다. 유물론적 조건은 결국 코델리아라는 인물로 통해 정치적인 입장을 내세운다. 변증법에서 물질변환법이 있다. 어느 일정 양이 충족되면 질이 변경되는 점이다. 물을 100도까지 올리면 수증기로 변화하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파리드와 철화단이 갈라르호른하고 전투를 벌이면서 기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게 한 셈이다. 모순의 한계성을 드러내자 결국 라스탈은 현 시점을 폭력을 폭력으로 마무리한 게 아니라 폭력으로 마무리를 한 것을 오히려 평화적 노선으로 변경한 것이다. 역사는 2번 반복된다고 한다. 1번은 비극으로 1번은 소극으로 말이다. 라스탈은 역사를 반복하기 위해 그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다소 많은 문제점들을 수용했다. 물론 가엘리오와 줄리에타 역시 자신과 대적하던 적들의 가치관과 삶을 받아들인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의 방식은 그가 자라온 환경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 경제적 조건, 문화적 혜택, 정치적 입장, 교육의 기회,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조건을 형성하게 해주는 기질이다. 처음부터 노예로 살아가야 할 인간은 없지만, 노예처럼 살아오던 인간은 많았다. 그런 인간들이 생기는 이유를 건담 철혈의 오펀스에서 부패한 갈라르호른과 경제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회들이란 점을 보여주었다. 코델리아와 철화단을 도와주는 척하다 마지막에 위기에 빠뜨리는 인간도 있고, 자신의 이권을 위해 아버지와 조직의 간부조차 팔아먹는 인간도 나온다.

 

경제권의 세력가가 갈라르호른과 결탁하여 철화단을 공격하는 모습도 나오나, 애초부터 화성의 거주민들이 가난한 이유는 경제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화성인의 경제력을 저하시킨 이유이다. 경제적 조건에 의해 정치적 체계가 이루어지는 형태는 유물론적인 형태이다. 물론 변증법적인 힘의 관계에서 철화단은 밀렸지만, 그들의 덕분에 휴먼데브리는 존재하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은 철화단을 잊었다고 한다. 철화단에 누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물론 파리코뮌도 마찬가지이다. 팔 하나를 잃은 소년이나, 총을 들고 있는 소녀의 이름은 그 누구도 모른다. 단지 그런 사람들이 그 역사에 있었기에 역사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미카는 자신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코델리아에게 아트라와 아트라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부탁했다. 미카는 죽었지만, 미카와 아트라의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미래를 만들고 희망을 만든다.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다. 생물학적으로 삶을 위해 노예처럼 죽을지, 아니면 자신의 자유의지를 위해, 내가 아닌 나를 대신하여 이어갈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생물학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철혈의 오펀스는 후자를 선택한다. 나는 스스로 인간으로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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