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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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고 있다. 아침하늘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입김이 구름이 되어 흐르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맑고도 어두운 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광경을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것인가? 아니면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한 것인가? 겨울은 여러모로 희비가 엇갈리는 계절이다. 추운겨울 하얀 눈이 내리며 도시에 크리스마스 캐럴 송이 흘러가지만, 한편으로 추위와 배고픔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낭만이란 감정은 여유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낭만을 느끼기보단 낭만주의자가 원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추운 겨울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여유가 있을 시간도 길지 않다. 짧은 여유를 위해 아득바득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가끔 생각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위로해주고 때로는 질책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지금 생각한다. 겨울이란 계절이 12월 입구에 다가선 현재가 아니라 마음속에도 존재한다고 말이다. 오랜 그룹사운드인 봄여름가을겨울이 만든 곡으로 <언제나 겨울>이 있다.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겨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겨울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늘 겨울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겨울만 존재하는 세상에 그 계절이 그 세상에선 겨울로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겨울이 아닌 때를 알기에 겨울을 아는 것이다. 세상에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다면, 이상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우리 스스로 위로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겨울에 갇혀 자신의 마음이 얼어붙은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제페토 시인, 인터넷 뉴스기사에 덧글로 시()를 남기는 기류 시인이다. 인터넷 공간에 머물기에 그의 시에 울려진 언어의 미는 늘 딱딱한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비로운 존재다.

 

하지만 그가 남기는 시는 매우 아프고, 쓰라리며, 때로는 따스하고도 아련하다. 제페토 시인이 이때까지 남겼던 글들을 모아 시집을 냈다. 시를 평소 잘 읽지 않은 나라도 읽고 싶은 시였기 때문이다. 시집 제목은 <그 쇳물 쓰지 마라>, 여러 기사에 달린 시들 중에서 이 시가 아마 가장 인상이 깊고, 허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추석을 앞두고 어느 청년이 용광로에서 작업 중 낙하되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빠졌다. 1600가 넘는 고온, 이미 그의 육체는 세상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었다.

 

뜨거운 화염은 그의 육체를 모조리 갉아먹어 남은 것은 원통한 이름뿐이었다. 그 쇳물을 돈을 위해 쓰지 말고, 오로지 그의 모습을 닮은 동상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위로를 해주라고 말하는 제페토,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부터 이미 슬픈 우리의 현실이었다. 장애인, 독거노인, 불치병에 걸린 어린아이, 치매로 죽어가는 아내를 죽이고 자살한 할아버지, 가난 속에 배고픔에 쓰러져간 작가 등 많은 슬픈 사연들이 속속히 시로 운율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타인의 고통에 무디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많다. 너무 슬퍼서 너무 기뻐서 너무 피곤해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눈물의 이유는 우리 모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흐르지 생각보단 내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인간적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존재고, 감성을 지닌 존재다. 동물에겐 본능적인 이성과 감정밖에 없다. 그들이 판단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이성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순히 지금 느끼는 상태 그 자체가 감정만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그 이상의 이성을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동물보다 못한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이성과 감성에서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감성이라 말하겠다.

 

감성이 없는 이성은 오로지 논리고, 그 논리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한 이성능력으로 발달할 것이다. 마음이 없는 이성은 차가운 얼음과 같은 벽이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모른 채 주머니 속 지갑만 가득하게 채워줄 욕망을 바란다. 욕망으로 넘치는 세상, 욕망 이외엔 아무 것도 없는 세상, 그것은 우리가 동물보다 더 동물 같은 존재로 바꾼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쉬고, 졸음이 오면 수면을 취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게 충분한 것들이 들어와도 여전히 남을 것을 빼앗으려 하고, 남의 수면시간까지 빼앗아 착취한다.

 

어째 보면 제목 <그 쇳물 쓰지 마라>에서, 만일 그 청년이 안전장비가 충분했다면,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그런 변을 당했을까? 이런 기사를 보고 우리는 하나의 가십거리 이야기로 스쳐지나간다. 사실 그 가족들은 얼마나 슬프고 친구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물론 타인의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타인이라 해도 그래도 그들도 살아있는 생명이고,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인간이다. 나의 마음을 죽이는 세계에 나를 위로해주는 책이 필요하다.

 

위로는 단순히 그 사람의 기분만 맞추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상처도 때로는 건들어야 하고, 그 사람이 일부러 외면하는 눈앞의 현실을 마주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약은 아픈 곳을 아프지 않게 하는 진통제이지, 그 자체로 치료해주는 처방전은 아니다. 진심의 눈물이 메말라 가는 세상, 비록 눈에 눈물이 흐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음의 눈물을 다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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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12-11 15:43   좋아요 2 | URL
전에 예비군 훈련 중 예비군 동대장의 말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에게 보상이 어쩌고, 유공자 어쩌고 했는데, 그게 김기춘의 공작임을 밝혀지었죠..참 너무한 세상입니다. 자신들의 아이가 그러면 그럴 말을 할 수 있을런지

또 다른 일화입니다. 제가 삼성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을 때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겪은 암과 각종 질병으로 수십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삼성에 가서 돈 많이 벌면 좋겠다는 회사직원, 게다가 그 죽은 사람이 아주 극히 일부라는 말을 듣고 아..진짜 무서운세상이구나 느꼈지요..만일 자기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불치병으로 쓰러지면 어떻게 할건지..기만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2016-12-11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