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약속 사회계약론 나의 고전 읽기 3
김성은 지음, 장 자크 루소 원작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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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교수나 혹은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진 지식인 내지 엘리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주장하거나 말하는 내용의 공정성이다. 어떤 사안을 토대로 일방적인 요소만 보여주고, 전후맥락적인 상황을 누락하여 오류로서 혹은 일부로 왜곡시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짓이다. 특히 학자가 그런 전후맥락을 무시하거나 일부로 적시하지 않으면 정보가 이상하게 엮이는 상황이 이르게 된다. 한국에 그런 학자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미국 자유주의 철학 사상가로 가장 유명한 학자로 존 롤즈가 있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샌덜은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샌델의 정치철학 강의, 그런데 샌덜의 이론은 결국 존 롤즈로부터 나온 것이고, 롤즈는 인간의 이성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인간을 추구한 칸트주의자였다. 독일 관념론 철학의 거두인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선험적 이성에 의해 사물을 판단하여 그 어떤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이성의 영역을 침범해서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순수이성비판>을 읽다보면 인간의 관념적 이성에 대해 칸트는 인간의 의식과 논리에 대한 이성의 영역을 연구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의 인간은 순수하게 이성적 영역을 논리로서 보는 게 아니라 어떤 입장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성의 논리에서 논리가 논리로서 작용하기 위해서는 윤리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익은 개인적인 영역이나 혹은 집단적인 이익을 노릴 수 있기에 윤리적인 도덕성과 무관할 수 있다. 그러나 입장의 차이는 분명히 다르다. 만약 병이 들고 가난한 노인이 어린 손자를 데리고 거주하고 있다. 노인은 더 이상 병으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고, 아들과 며느리는 사고로 인해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러면 남은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존 롤즈의 <정의론>에서 추구하는 정의적 가치는 경제적, 정치적, 교육적, 문화적 등 사회 전반적으로 입장이 불리한 약자들이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른바 최소수혜자들에 대한 지원이다.

 

자유주의의 진정한 시작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자들도 자유를 누리게 해주는 배려라고 한 것이다. 칸트의 철학에서 시작된 롤즈의 철학은 위로 가면서 루소와 로크까지 이어진다. 문제는 <정의론>이란 서적을 롤즈가 제작하더라도, 국내에서는 누가 번역하는가가 중요하다. 이 책을 번역한 분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철학과 교수를 맡았다. 국내 최고의 서울대에서 철학과라면 엄청난 인물이다. 그런데 사실 서울대가 대단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롤즈의 도서를 번역한 교수의 행적과 <정의론> 및 다른 도서의 머리말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롤즈에게 배웠다는 사람이 사실은 롤즈가 제시한 가르침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권력에 아부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자유주의철학을 강연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기만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 비단 이런 문제만은 아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중우정치를 비판하는 철학 교수가 그 중우정치의 해당하는 자는 누군가? 라는 점이다. 시민사회인가? 아니면 어느 정당에 지지하는 사람인가? 군사독재 시절에도 편안히 교수자리에 앉아있던 철학과 교수가 정치철학에서 어떤 사회적 명제를 두고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읽고 내가 부끄러워진다.

 

최근 그런 비슷한 인물을 인터넷에서 본 것 같다.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인류학적 영역에서는 정치사회의 역사적인 요소에서 민주주의 정체라면 프랑스대혁명 이후 자코뱅당의 공포정치가 어느 정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체에서 프랑스대혁명만이 아니라 사실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죽인 역사적 비극 역시 귀족적 민주주의를 실행한 아테네 역시 그렇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알키비아데스가 아테네를 배신하여 아테네가 큰 위기에 빠진다.

 

과두정 이후 민주정이 쿠데타를 성공시켜서 독재를 막을 내린가 싶으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아테네는 그 잠재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무력으로 아무 힘도 없는 늙은 노인을 정치적 이익에 의해 희생되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를 제거하고 싶은 사람에게 매수된 많은 아테네 시민은 소크라테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중우정치의 한계는 아마 권력과 재산에 의해 매수된 시민, 그리고 그것을 용납하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플라톤의 도서를 번역한 그 교수님은 아주 높은 지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런 윤리적 의식에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대부분 철학책이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이어져온 지식의 보고이나, 항상 현대인들에게 혹은 미래의 인간에게 읽혀진다. 생각하자면 지나간 시대의 책이 무슨 현대에 들어맞는지 모르나.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수많은 지성인들과 교육기관에서 고전을 추천하는 이유도 그러한 것이다. 이번에 내가 발견한 웃긴 사례는 바로 프랑스대혁명과의 전체주의 기원, 그리고 히틀러의 파시즘이 루소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점이다. 경제학이 아닌 경영학 교수였다. 다른 글까지 읽지 않았으나, 경제학자가 철학을 할 수 있어도 경영학은 철학을 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일단 히틀러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전혀 이행하지 않은 점이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국가에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개별의지와 전체의지를 제외한 순수한 의지다. 히틀러의 독재국가가 일반의지라고 말한다면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몽키스키외와 루소의 이론을 토대로 헌법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헌법조차 루소의 사상이 기반으로 했는데, 한국의 헌법이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사실 히틀러가 추구한 사상은 초인사상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니체는 자신에게 달라는 자들을 싫어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인간의 길을 찾아갈 것을 외치나, 자신을 따라 오란 소리는 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전체주의 나치즘이 과연 니체가 말한 사상인가? 히틀러는 니체의 책을 읽어도 니체를 오용했고, 루소의 사상에서 일반의지로 들먹인다면,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폭력으로 행해진 정치는 결코 정당할 수 없다고 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그리고 독일국민들의 정치적 감시를 소홀히 한 덕분에 나치가 정권을 잡았다. 루소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하는지를 시민이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하다못해 영국인들은 투표를 하기 전에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라 하지 않았나?

 

이런 이유는 아마 경영학과 경제학이 다르면서 비슷한 점이 돈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경영학은 business management, 즉 경영하기 위해 관리하는 것이다. 경제학은 관리를 하는 학문이 아니다. 자본을 관리를 할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인 경제에서는 기업이나, 사회적 국가적인 영역에서 국가정부다. 정부는 국민을 관리하는 초점이 상급자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이므로, 정부가 국민을 지배하는 관리대상이 아니라 국민이 역으로 정부를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루소의 그런 부정적 견해는 루소의 사상을 어느 누가 이어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루소의 사상은 자연주의 교육학, 낭만주의 문학과 미술, 근대민주주의 정치사상, 음악과 연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루소의 후예, 즉 루소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로 로베스피에르 같은 프랑스대혁명의 선구자, 체 게바라와 같이 활동했던 피델 카스트로, 남미해방의 아버지인 시몬 볼리바르, 문학의 톨스토이, 실러, 괴테 등이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인물은 카를 마르크스일 것이다. 우연히 유네스코 사이트에 가보니 카를 마르크스가 유네스코에 지정한 인물로 선정되어 그의 저작들은 세계문화유산 중에 소중한 것으로 등록되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1990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허망하게 끝난 것으로 보였지만, 21세기 금융위기와 전 세계적인 경제적 문제는 마르크스가 예견한 게 그대로 드러났다. 문제의 경영학 교수가 루소를 경계한 이유는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경제학에선 애덤 스미스이겠지만, 그의 선동적인 팸플릿과 구호문은 루소의 서적과 매우 흡사하다. 엥겔스의 서적을 읽다보면 <인간불평등기원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 <자본> 1권에 보면 루소의 <정치경제론>에서 제기한 신랄한 풍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부유하고 당신은 가난하니,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서로 합의하자. 내가 당신에게 명령하는 수고에 대해 당신이 갖고 있는 사소한 것을 내게 준다는 조건으로 나를 섬기는 영예를 허락하노라.”, 루소의 정치사상은 <인간불평등기원론>처럼 자연적 신체적 불평등보단 도덕적 사회적 불평등을 주장했다. 경제적인 빈곤도 있지만 계급사회가 존재한 왕정시대인 점을 고려한 점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더 세세하게 나아가 경제적인 빈곤을 토대로 사회를 비판한다. 어찌 되었건 루소와 마르크스는 18세기와 19세기에서 가장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가장 위험한 사상가였다.

 

그러나 루소의 사상이 없으면 왕정은 계속 유지되었고, 루소 그 자체를 부정하면 민주주의나 자유주의 사상 그 자체를 부정하게 모순에 이르게 된다. 그런 모순조차 사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지나갈 일이다. 그렇지만 학자라면 제대로 전후맥락을 보고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영학 교수가 만약 칸트와, 롤즈가 주장한 이성적 자유를 추구한 자유주의를 제대로 숙지하고, 괴테와 톨스토이의 문학성을 제대로 생각했다면 조금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글이 된 이유는 <인간을 위한 약속>이란 책을 보면서다. 저자는 내가 방금 전 내가 비판했던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자다. 다행히 철학과가 아니라 그 교수와 만났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루소에 대해 깊이 연구한 것 같다. 엘리트인 점은 분명하겠지만, 엘리트 안에서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그 엘리트의 지성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같이 바꾸어갈지를 아는 분이었다. 루소는 백과사전학파나 볼테르가 무시한 농촌의 농부를 매우 존경하고 그들의 자연성과 도덕심을 존중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그런 농촌도 없고, 농촌 역시 그때의 농촌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 모두 인간이 살고 있고, 그 인간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는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사회계약론이다. 사회계약론은 정치철학의 이론서보단 하나의 제안서에 가깝다. 현대철학이나 정치학 도서와 비교하면 그렇게 분량도 많은 편도 아니고, 심각하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 담고 있는 내용은 매우 강렬하다. 국가기반인 헌법의 토대가 되면서도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는 혁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공자의 <논어>조차 군왕이 군왕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군왕으로서의 자질이 있어야 하는 점이다. 군신간의 관계는 신하가 받드는 게 아니라 신하의 받듦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왕은 군주의 자격이 없는 것과 같다. 밑에 신하가 없으면 정사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역시 그렇다. 정부행정기관보다 중요한 것은 입법권자의 올바른 의지다. 입법은 심장이고, 행정은 두뇌다. 두뇌가 죽더라도 심장을 움직여서 살아있지만, 심장이 죽으면 모든 것이 죽는다. 이런 말을 하는 루소가 과연 히틀러의 인도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인진지 망상력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인간을 위한 약속>이란 서적은 루소의 사상을 매우 알기 쉽게 적은 책이다. 처음 루소를 입문하는 사람에게 루소가 제시한 사상을 어느 정도 쉽게 접근하고, 루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준 책이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장에서 조금 내가 말한 부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등장한 인물은 루소가 아니라 마르크스다. 대영제국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마르크스는 루소의 진정한 후계자란 점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루소의 연표에서 루소의 사망 이후 1848년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루소는 좌우 사상가에게 찬사와 비판을 받는 사상가다. 자유주의 철학자 롤즈의 사상이나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이 여기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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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6-02-2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본 리뷰중에 제일 멋있습니다. 철학이나 인문계통 일하세요?

만화애니비평 2016-02-24 22:45   좋아요 0 | URL
아니오. 그냥 엔지니어 업체 다녀요. 오덕질 하다가 이래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