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작가 뷔히너가 저술한 <당통의 죽음>은 연극대본으로 제작되어 독일 및 프랑스 등과 같은 유럽에서 연극으로 펼치다 최근 한국에서 연극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단지 그 기사를 제작한 신문사와 <당통의 죽음>이 가진 의미적인 가치를 생각하면 너무 판이한 점을 생각하면 답답하나, <당통의 죽음>이 연극으로 나온 점은 매우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당통의 죽음>에서 잘 판단하는 부분은 세계 3대 혁명 최근에 일어난 것이 바로 러시아혁명이다. 그런데 이 러시아혁명의 원초적인 정신이 프랑스 대혁명이란 사실이다.

 

아서 쾨스틀러의 소설인 <한낮의 어둠>은 러시아혁명을 이룬 주인공이 스탈린의 공포정치 아래 숙청되는 것을 아주 디스토피아하게 그린 작품으로 작중에서는 포템킨함정에서 혁명을 일으킨 수병도 같이 처형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스노볼을 내쫓고 농장을 독재로 차지한 나폴레옹이 한 대사 중에서 "이제 혁명은 끝이다!"라는 것과 같다. 혁명의 배신적인 요소를 지켜본다면 트로츠키나 로베스피에르 내지 당통은 그 혁명에서 선구자이기도 하나 최고의 배신의 쓴 맛을 본 자이다.

 

영화 <당통>은 연극 <당통의 죽음>을 가지고 만든 작품으로 영화와 연극을 2가지를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영화는 당통을 객관적으로 보는 요소가 강하고, 연극의 대본은 주관적인 요소 즉 당통의 심리적인 요소를 많이 부각한다. 요절한 천재인 전혜린 교수의 저작들을 읽다보면 전혜린 교수가 독일에 유학하던 시절, 뭔휀에서 머무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독일에서 본 <당통의 죽음>이란 연극에서 당통의 죽음으로서 허무주의한 니힐리즘에 대한 요소와 더불어 실존적인 담론을 제기한다. 죽음으로서 살아있는 육체는 멈출지언정, 프랑스대혁명을 일구고 지킨 영원한 혁명가로서 당통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인간이다.

 

당통의 죽음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가? 로베스피에르가 선도하여 실행한 공포정치에서 그의 무서운 무기는 국민공회로 대변되는 재판이다. 그 재판에서 판사가 망치를 두드리는 순간 목이 하나 떨어진다.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단두대 아래 이슬로 사라진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서 그렇게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회의적인 요소가 나온다. 프랑스 여성문학사에서 빠질 수 없는 롤랑 부인이 단두대 아래 죽을 때 "자유여, 당신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죄가 저질러졌는가!"라고 외쳤다. 롤랑 부인의 죽음에서 보이는 프랑스대혁명은 역사적으로 큰 진보와 더불어 퇴보를 일으켰다.

 

헌법의 기본 중에 기본에서 민주자유공화국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이란 3개 그룹으로 나누는데, 그것이 몽테스키외라는 계몽주의 사상가의 <법의 정신>에서 시작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 시킨 이들이 디드로, 볼테르,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인 장 자크 루소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인권선언문을 읽다보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제장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떤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찾아보면 그런 내용이 그대로 따라하듯이 보여준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고 하는데, 그 원류는 미국독립혁명 내지 프랑스대혁명으로부터이다. 헌법을 고수하는 것은 보수주의적이나, 헌법의 정신은 진보주의적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에서 나는 일상생활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바로 저런 프랑스대혁명과 더불어 헌법의 기초와 계몽주의철학에서 비롯된 자유주의 사상을 제대로 담론 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당통>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 호칭을 붙인다. OO 시민이라고 말이다. citizen이란 것과 동시에 people에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mass라는 대중과 다른 의미로 부여된다. 존 롤즈의 <만민법> 내지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자유주의 철학대서를 읽게 되면 시민이란 것은 서울시나 부산시에 사는 시민보단 정치적 참여에서 하나의 발언권과 동시에 의무와 권리를 내포한 자들이다. 즉 시민이라고 불리 자격이 있는 부류는 그 자체 하나하나가 정치인이 되어서 정치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식과 인품이 갖추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프랑스대혁명에서 파리 시민들은 시민이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 무지한 농민이고, 글을 읽을 줄 몰랐으며,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혁명의 원초적 에너지가 될 수 있어도 혁명의 원동력이 되지 못하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바꿀 수 있으나, 현재를 보고 미래를 움직일 판단력은 없었다. 그런 군중적인 요소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이다. 토크빌의 <앙시애 레짐과 프랑스혁명>을 읽으면, 프랑스혁명은 계몽주의사상가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도한 게 아니라 프랑스 하층민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궁핍과 국가제정의 위기였다.

 

특히나 미국독립전쟁에서 영국의 견제를 맡은 프랑스로서는 제정적 위기가 닥친 것이다. 러시아혁명사의 원인도 마르크스주의자가 선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1905년 피의 일요일처럼 러일전쟁 이후 물가상승, 자원부족, 식량위기로 인한 생활의 경제적 문제였다. <당통>이란 영화 역시 그런 생계라는 부분에서 당통이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된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여자와 한 번 잠도 자지 않았다."라고 말이다.

 

미학도서를 읽게 되면 유럽의 중세를 보자면 어린 아이들은 우리와 같은 어린 아이가 아니라 작은 어른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부모와 같은 방에서 큰 침대에서 같이 잔다. 문제는 농업기반이 주요 산업이던 시절에는 침대에서 많은 식솔을 거느릴 경우 어떤 광경이 보일까? 부모는 어린 자식이 옆에서 자고 있거나 혹은 깨어날지도 모르나 그 침대에서 계속 Sex를 하고 있던 것이다. 나이가 10대가 되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Sex를 하고 아이를 만들어 결혼하는 것이 농민을 비롯한 하층민들의 생활이었다.

 

물론 로베스피에르는 대표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으로 법조인이었다. 그는 분명 아내와 살고, 아내는 어린 남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으나, 충분히 부부관계를 통해 Sex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하지 않았고, 모두 평등하게 굶는 것만 추구했지, 그 이상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불평등은 선천적과 후천적으로 나누는데, 선천적은 성별, 나이, 인종 등과 같은 생물학적 요소이고, 후천적은 경제, 지위, 문화, 정치적인 요소 등과 같은 후천적 요소다.

 

결국 후천적 요소의 배제에서 인간이 가진 욕망에 대해 철저하게 금욕주의적 요소를 추구한 것이 로베스피에르였다. 그의 이상적인 정치성향은 혁명중심이던 1794년 전까지는 좋았을 것이나 당통 사망 직후 그도 역시 테르미도르반동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에서 우리는 프랑스대혁명을 시작과 동시에 종점을 찍는 비극을 볼 수 있다. 추후에 1799년 브뤼메를 18일에 나폴레옹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프랑스의 공화정은 종극을 내리고 다시 왕정 이후 혁명과 보나파르트와 부패한 왕족과 귀족 그리고 부르주아에 의해 민주공화정의 위기를 맞이한다.

 

세상에는 이런 명언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인간의 피를 마시고 자란다.” 오늘날 프랑스를 비롯하여 영국, 독일 등과 같은 북유럽 내지 서유럽 국가들이 그만한 민주주의 제도와 정치적인 여력이 세계적인 국가로 부상한 것은 그에 대한 대가와 고난이 있었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조차도 영국과의 독립전쟁, 흑백 인종차별로 계속 이어지고, 흑백 인종을 넘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도 인종차별로 21세기까지 고통을 수반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체계는 완벽한 이데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란 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제기한 공산주의 역시 완벽한 공산주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그것에 대하여 가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하나, 러시아혁명에서 레닌 사후 스탈린에 의해 소비에트연방국가의 스노비즘이 결국 관료주의 독재국가로 전략해버렸다. 혁명의 시작과 위기에서 왜 이런 비극을 맞이하는가? <당통>이란 영화는 바로 이런 문제를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귀족과 왕족, 성직자, 악덕상인의 목은 광장 위에 세워진 단두대 아래 사라져 가는데, 계속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불평등을 재산과 계급 그리고 인간의 덧없는 욕망이 있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주장하고, 그것에 대해 루소는 인간은 인간성 회복을 위해 자연의 미를 따르라고 한다. 그의 저서 중에 <식물사랑>은 식물은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식물 그 자체를 관찰하고 자연의 존재성을 인정하는 자연주의적인 관점이기에 인간이 자연에 회귀하는 것이 인간으로 살 수 있다고 봤다. 오늘날 환경오염과 자연파괴에 위기에 놓인 문명사회에서 루소의 외침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 가진 만큼 누군가는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한계점과 용인할 수 있는 영역이 지켜질 경우 문제가 없겠지만, 하루에 빵 1개를 구하기 위해 싸움을 하는 남자와 몸을 팔아야 하는 여자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살았던 사드 후작의 서적인 <소돔의 120일>을 읽게 되면 사드가 가진 성적인 도벽과 사디즘에 대해 볼 수 있다. 당시 사드의 상상력으로 만든 소설에서 어느 정도 현실에 대한 기반과 사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실제 역사 사료를 읽게 되면 여자가 몸을 파는 것은 스스로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팔려간 여자였다. 집안에 부모에 의해 혹은 납치에 의해서였다.

 

프랑스혁명 아래 이런 여자들이 사라지고 평범한 일상으로 가야 하나,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을 보거나 영화 당통을 감상해도 창녀의 등장은 나온다. 혁명이란 단지 정치적 헤게모니를 뒤집는 것이지 사회구조적인 뿌리를 흔들지 못했다. 혁명이 결국 식량을 증식시키거나 혹은 보급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 이전과 후나 모두 비참하고, 분노의 칼날은 언제나 그들이 살던 시절의 사람에게 향하고, 그 사람은 희생자 내지 혹은 추후에 영웅이 되어야 했다. 프랑스대혁명의 루소에 대해 생각해보자. 루소는 조국인 제네바에서 추방당하고, 만약 그가 돌아올 경우 영원히 체포하여 법적 대응할 수 있는 공소시효 만료가 없는 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런데 루소의 본가가 아닌 루소의 할아버지 집에 지금 제네바시민 장 자크 루소의 기념물이 있다.

 

루소가 바랑 부인을 만나던 1728년을 기념하여 1928년 200주년 기념물이 생길 정도다. 루소가 파리 시민에게 놀림을 받고, 심지어 루이16세에게 루소의 소식이 하나의 가십거리로 들어갈 무렵, 루소가 자주 산책하던 호수가 루소의 호수로 되었다. 당통은 프랑스대혁명의 영웅이었으나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에 의해 사기꾼들과 같이 엮여 재판을 받고 단두대 아래 사려졌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의 전제군주라는 호칭을 받으면서 사라졌다. 역사는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가장 절친한 동지와 라이벌이었고, 그리고 위대한 혁명가로 매기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에서 이 둘은 그렇게 원만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 당통은 1794년 자유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로서 국민공회의 정치가 전제주의적 요소와 지나친 폭력적인 점은 지적했고, 국민공회는 그것을 막기 위해 데물랭의 신문사를 폐간시키고, 데믈랑과 당통을 죽음으로 내몬다. 당통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죽음으로서 공화국의 종말을 예언했다. 국민공회의 권력자들은 당통을 죽여 승리를 맺었으나, 결국 진정한 패자는 국민공회가 되어야 했다.

 

영화 <당통>에서 프랑스인권선언문 제4조인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각자의 자연권 행사는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할 경우 말고는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제약은 오로지 법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가 아주 인상적인데, 그것은 당통이 죽고 나서 로베스피에르는 집에서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잠을 자다가 당통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이때 로베스피에르의 아내가 방에 들어오고, 아내의 어린 남동생이 프랑스인권선언문을 외워 읽기 시작한다. 제4조에서 로베스피에르는 자기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진정한 패자로 되었음을 인지한다.

 

생각해보면 21세기 대부분 국가는 자유민주주의국가 체계라고 하나, 실제로 이루어지는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헌법의 정신은 자신의 권리와 더불어 타인의 인권을 존중해야할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기가 파란색, 흰색, 적색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것이 있다. 붉은 색의 색이 제일 강렬한 것은 바로 박애정신이 자유민주주의적 정신을 가진 시민의식이란 점이다. 당통에서 보면 주요인물은 국민공회와 그들의 라이벌이나, 대중사회를 보면 프랑스혁명 당시 많은 사람들은 무지했다는 점이다.

 

계몽주의적인 요소가 지금도 21세기 한국과 미국, 유럽 등과 같은 많은 국가에서 적용된다.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 정치제가 바로 18세기에서 다 만들어진 정치적 체계이다.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에서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초점이다. 그러나 막상 장 자크 루소가 누군지 혹은 그의 서적을 읽어본 자는 얼마 없다. 당시 시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이자, 근대 민주주의 아버지, 심지어 마르크스와 같은 혁명가의 아버지 역시 루소다. 괴테는 손에는 셰익스피어지만, 머리에는 장 자크 루소였고, 루소를 알려면 칸트를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계몽주의사상에서 계몽주의 철학가이자 계몽주의를 비판한 루소에 대해 본다면 칸트의 말처럼 계몽은 누군가 깨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깨어 나오는 것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을 지지한 파리 시민들은 후에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에서 가장 훌륭한 병사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21세기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넘치던 로코코와 같은 탐미주의 내지 낭만주의가 지나간 시절이나, 아직도 계몽주의 사상가에 의해 빚을 지고 산다. 그런 21세기와 당통이 죽던 18세기는 220년이란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의 유명한 문구 중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전체주의가 되기 좋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루소는 현대에서 좌파와 우파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사상가이면서 열렬한 비판이 되는 사람이다. 중간이란 기착지점이 없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민주적 자유주의 내지 정치적 자유주의는 이성에 의해가 아니라 이성의 너머에 있는 인간의 본질에 의해 지배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국민 각각의 권리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이 또한 없다. 그래서 민주정이란 이름은 모순의 굴레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정치체제다.

 

<당통>에서 왕정정치가 사라져도 국가는 존치되고, 타국의 위협이 있기에 국가적 체계는 필요하다. 이때 민주정이란 이름은 민중을 하나의 역사적 주체로 등장시켰으나, 주체의 등장은 표면이지 심연의 세계까지 따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여전히 인간의 피를 마시고 살아가고 있다. 피라는 것은 반드시 단두대 아래에서 목이 잘려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체계의 근원이 되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그 자체에 도달하기 과정에 너무 많은 사회적 모순과 인습을 청산되는 그날까지라는 것이다.

 

당통의 죽음은 바로 그런 프랑스인권선언문에서 주장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신의 죽음으로서 인간의 삶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통의 죽음을 진정으로 아파했던 이는 당통을 보낸 로베스피에르였다. 그만이 진정 혁명의 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당통>은 매우 사실주의적인 영화다. 왜냐하면 실제 있었던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을 토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심리적 요소나 실제 했던 행동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망정 그들이 진짜 프랑스대혁명을 이룩하면서 사라져간 존재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화는 그런 비극적인 운명을 노래하는지 처음 당통이 파리의 성문으로 들어올 때 광장에 놓인 단두대가 보인다. 저 단두대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이 잘려나갔는가? 다시 단두대는 영화 중간쯤에 보인다. 당통의 운명이 저기에 달린 것처럼 말이다. 당통이 단두대 앞에 나갈 때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이상한 소음과 군중의 아우성이 들린다. 그의 죽음은 왠지 모르게 싱겁게 끝난다. 처형자에게 “나의 목을 자르면 군중에게 보여죠. 나는 그럴 자격이 있어.” 라고 말하는 그의 대사는 왠지 아픔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안고 홀로 죽음을 임하는 그의 죽음은 비극적 미학의 완성이었다.

 

그가 단두대의 널빤지에 일자로 눕힌 순간 단두대의 칼날은 무거운 소리를 내고, 당통의 목이 잘리자 피가 뿜어 나오며 아래 짚단에 피가 쓰며들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위대한 혁명가의 피를 마시며 성장하는 것이다. 피를 마신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당장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 피와 더불어 또 다른 피를 함양하면서 큰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지금 그 모습을 만들기 위해 단두대는 20세기까지 존재했다. 국민공회가 주관한 혁명재판에서 자기가 만든 혁명재판소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당통으로서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당통은 본래 부유한 법조인으로 부르주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로베스피에르의 경우 삼부회에서 부르주아 대표인물로 나가고, 프랑스 왕정의 제정상황을 비판하며 입헌할 것을 주장하고 그것이 되도록 선언한 테니스코트선언이 유명하다. 이후 프랑스 왕정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고, 루이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투와네트는 1799년 도주혐의 및 반란협의로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들은 장 자크 루소가 살던 시절에 그를 비웃었지만, 루이16세가 죽을 때 “내가 죽는 이유는 루소와 볼테르 때문이다.”라고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국민은 자신의 국가를 배신하지 않아야 하는데, 루이는 그것을 배신하여 프랑스공화국의 국민이 아니므로 죽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정식적인 재판보단 형식적인 재판을 거치고, 당시 루이16세를 죽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으나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루이16세는 죽고 만다. 사실 루이16세는 포악하지 않았고 오히려 심약했으며, 국민들의 생활을 걱정했다. 하지만 개인의 영향과 더불어 사회구조적인 흐름과 더불어 주변 정치적 영향에 의해 죽은 것이다. 그러나 왕비와 귀족들의 사치와 부정축재를 억눌리지 못한 그의 실정에서 죽음의 회피란 어렵다.

 

영화 <당통>은 당통의 죽음만 아니라 프랑스대혁명에서 거치는 한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상징적인 요소 즉 왕권을 올리기 위해 성직자들이 신이 왕에게 권력을 준 왕권신수설이란 이데올로기 해체에서 다른 이데올로기로 대체되는 지점이 나온다. 로베스피에르가 화실에 가서 옷을 입고 손에 올리브 잎이나 혹은 지팡이를 들며 상징적 요소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나 혹은 구체제나 상징은 필요하다. 상징을 상징하기 위해 만드는 상징적 요소나 혹은 상징적 요소를 해체하기 위해 필요한 상징이 필요하다.

 

기술과 문명의 진보와 달리 인간의 이성과 윤리적 요소는 진보하지 않음에서 이런 역사적 굴레는 피할 수 없는 업이다. 영화 <당통>은 그런 역사적 비극을 하나의 희극적 요소를 부여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18일>에서 “역사는 2번 반복된다. 1번은 비극으로 1번은 희극(소극)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프랑스대혁명에서 비극적으로 루이16세는 불운한 왕으로 비극적으로 죽고, 당통도 루이16세처럼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비극적으로 죽는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은 비극이어야 하지만, 하나의 소극으로 되어버린다.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만들어버린 선택에 자기발목을 잡고, 자신의 목을 자르는 결과가 된다. 강성적이나 그래도 청렴한 로베스피에르의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하나의 파시즘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소극에서 다시 비극과 같이 끝나는 것은 그도 자신에 죽음에 대해 당통처럼 무력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브뤼메르18일까지 자코뱅당이 선택한 정치란 부정부패의 연속이었다. 지롱드파와 같이 무능한 왕정을 지지한 세력과 다름없는 바가 된 것이다. 영화 <당통>은 당통의 죽음은 죽음조차 뛰어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느낄 수 있다. 당통은 그렇게 죽었지만, 당통과 같은 죽음은 반복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생각하면 우리나라 역시 당통과 같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코미디 쇼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당통에서 가장 갈등이 되는 것은 당통과 데물랭이 운영하던 신문사에 대한 폐간과 억압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국민공회의 전제주의 정치를 비판하는 것을 감추는 것에서 혁명은 끝이 나고 있었다. 공화국의 기초에서 우리도 이런 모습이 그 당시의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어디선가 역사는 계속 되풀이 되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당통의 죽음>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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