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주니어 클래식 11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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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교수님의<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를 읽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나는 카를 마르크스 <das Kapital>, 즉 강신준 교수님이 번역하신 <자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딱 1번 다 읽은 적이 있었다. 3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대한 개념과 정의, 그리고 경제학으로 알아보는 인류의 역사와 가려진 더러운 진실을 아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자본>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고, 하다못해 다른 학문적 연계성까지 이어져갔다.

 

현대사회는 이른바 자본주의 경제구조체계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체계가 유지가 가능한 이유는 경제적인 구조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할만한 경제 산업구조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런 만큼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정치, 사상, 군사, 외교, 민족, 사회, 예술, 문화 등 다양한 구조와 만나게 되는 점이다. 그런 점을 본다면 왜 <자본>이 우리 시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까? 국내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겠지만, 이미 영국에서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가에서 1위로 마르크스로 뽑혔고, 또한 영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는 누구인가에서 마르크스가 1위로 된 적도 있었다.

 

영국이란 나라는 오래된 국가인 만큼 역사,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 수많은 학문이 발달하기로 유명한 국가이다. 또한 우리나라 지성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학교수들에게 한국에서 큰 영향을 준 철학가 역시 마르크스가 뽑혔다. 지식인을 가진 지식인들과 일반적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 보는 마르크스는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다소 차별적인 발언일 수 있겠지만, 상식보단 지식을 믿는 편이다. 대다수가 아는 상식이란 결국 정확한 근거와 이성적인 판단보단 단지 쉽게 생각하고 여기는 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

 

여기서 상식이란 길을 걷을 때 쓰레기를 막 버리거나,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고성방가를 지르거나 줄을 서는데 새치기를 하는 행위 등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상식이다. 상식과 지식의 차이는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판단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을 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내용을 처음부터 대해야 하며, 그런 지식을 안다는 자체가 그 사회가 가진 거대한 헤게모니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질적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

 

가령 중세유럽까지는 인간의 존재는 신이 창조했다고 여겼지만, 다윈의 발견과 유전생물학의 발달로 인간은 영장동물 중에 포유류이며, 인간이 언어를 가진 것은 신이 준 것이라 여긴 것이 야생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일정 나이가 지나면 언어를 습득할 수 없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한 이유는 그런 사실에 대한 자체가 기존 사회에 대한 하나의 반란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간이 신의 산물이 아니라면 인간은 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으므로 휴머니즘이 도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의 절대성을 말하던 중세유럽의 교회에서는 매우 위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창할 때 세계는 그를 비웃었다. 우리가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고, 그 지구조차도 스스로 계속 돈다는 사실은 인류의 역사에서 5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의 지식이 급속도로 발달하였다고 해도 결국 그 지식이 전파되고 통용되는 것은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또한 전파되어도 간단히 납득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이란 것은 끊임 없이 미신과 싸우고 투쟁하여 인간의 야만을 문명화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야만이란 것을 문명화된 기술로 진보하여도 역으로 퇴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발견한 인류의 역사고, 경제의 눈이다. 경제라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화폐라는 이른바 돈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경제는 돈이라는 화폐를 떠나 인간이 얼마나 작은 일로 큰 이익을 보고, 남은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에서 만약 그 국가에 화폐가 없다면 경제학은 없는 것인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이상한 팬티 1장 거친 원시부족들이 화폐가 없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경제학이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판단하는 경제적 척도가 화폐가 되었을 뿐이다. 화폐의 종류에서도 종이화폐 그것도 넘어 은행에 계좌로 남아 있는 금액, 그것을 넘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계좌금액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종이화폐가 없던 유럽에서는 금과 은으로 화폐로 사용했고, 금과 은은 자국의 화폐만이 아니라 타국과의 교역에서도 가능했다. 하지만 귀금속의 가치는 계속 올라가고, 한정되어 있으며, 귀금속 자체가 하나의 소장가치(예술품이나 보물)로서 남는 경우가 있으며, 무겁고 취급이 어려우며 계속 생산이 어렵기에 종이화폐의 등장부터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종이화폐 등장은 엄청난 금액의 화폐를 종이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사람이 사는 일상생활에 계속 유입이 가능하기에 경제적인 이득과 더불어 치명적인 문제점도 있었다. 그것은 인플레이션이란 화폐가치 하락과 그로 인한 물가상승이다. 화폐가 일반 시중에 계속 유입되면 화폐가치가 하락하면 화폐소유의 차이에 따라 소비자의 소비양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제적으로 원유가격이 저렴하고 국내에 중공업이 흥행할 때 과소비라는 것이 큰 문제점이 된 적이 있었다. 과소비를 하면 계속 화폐가 시중에 나가기도 하나, 대부분 사치품이 국내산이 아니라 수입물품이란 점에서 화폐가 외국으로 가게 되면 그만큼 국가적으로 부담이 오게 되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과소소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너무 소비하지 않아 시장의 경기가 차갑게 변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생산품은 꾸준하게 나오나,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으면 제품의 재고가 쌓이게 되고, 재고처분이 불가능하면 결국 업체는 부도나게 된다. 아주 예전에는 공급이 적어서 문제였으나, 이제는 소비가 부족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제적 문제 역시 자본주의의 한계성이다. 우리가 대체할 수 없는 경제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감정과 이성도 없는 존재이나, 문제는 자본의 주변에 있는 인간은 욕심과 이기주의로 풍부하다. 게다가 인간은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국경과 공간을 넘나들 수 없으나, 자본은 국경도 없고 공간적 한계도 없다. 인간들이 어디든 있든지 갈 수 있고, 그곳에서 최고의 권력으로 군림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형성되면 어떻게든 자본주의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일 심각한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자본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고, 자본에 움직이고 있는 것도 인간이다.

 

결국 마르크스의 <자본>이 금지된 판도라의 상자로 된 사실은 자본주의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파헤쳤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결국 상식이냐 지식이냐 차이로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식이란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고, 권력은 지식을 생산하나 그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자들은 모두 독점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 알 수 없다면 그저 인간들은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능력을 그대로 방치하면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의 지력이 있다고 해도 그 지력을 방치하면 지성을 얻을 수 없게 되고, 지성의 원천인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쉬운 것만 받아들인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들은 어려운 것을 싫어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언제나 좋은 이익을 보려하며, 그런 이익을 보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쉽게 얻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라는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이기적인 요소와 더불어 이타적인 요소가 가지고 있어도,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런 습성의 타성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내가 평소에도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한 부분에서 가장 공감 가는 것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나 같은 일반인들이 부자로 될 수 있는 확률은 만 분의 1%라도 될까? 최근에 로또가 있지만, 로또에 된다고 잠시 부자가 될 수 있어도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자신보다 더 큰 부자들은 훨씬 많다고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게 되나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 부자가 되는 것은 결국 화폐가 많아야 하는 점이고, 화폐는 단순히 혼자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자본력으로 하여 다시 증식시켜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한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싸게 사서 비싼 가격으로 팔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사고를 가지기에 집을 하나의 생활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재테크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대출과 담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집을 사야 하거나 혹은 전세 내지 월세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점은 그렇게 세를 들어오는 사람조차도 집을 하나의 재테크로 생각한다. 자신이 빚을 내어 집을 사서, 그 집을 월세를 주고, 그 빚을 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집에 전세로 사는 경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약 세를 준 집의 집값이 상승하면 좋겠지만, 만약 하락하거나 또는 지금 사는 집세가 올라가거나, 가장 치명적인 것은 세를 주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이사를 가서 보증금을 줘야 하나, 새로운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흔하지 않으나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크나큰 리스크를 부담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계속 빚을 내고 집으로 화폐를 얻으려 한다. 결국 자본의 증식은 자본이다. 이런 꿈처럼 보이는 부자를 향해 우리는 계속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다. 물론 그것으로 통해 성공하거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1명의 부자가 탄생하는 것보단 다수의 실패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화폐의 유통은 계속될 수 있으나, 그런다고 그 화폐가 모두에게 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은 자신이 처음부터 소유한 화폐로서 싸울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개미라고 칭한다. 개미가 개미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대규모 자본을 가진 사람들과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미들은 개미 이상으로 되려고 한다. 이런 경제적 상황과 거기에 보이는 환상을 깨는 것만이 물가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을 막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1달에 일하면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얼마인가? 아무리 일해도 받는 돈은 한계가 있고,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은 한계가 없다. 그렇다면 현실을 제대로 알고 절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원인을 모르고 계속 가속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모험이다. 그래서 성과 없는 모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모험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처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모험으로 통해 성과 없는 모험 대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자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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