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2017년 추운 2, 아버지는 담도암 투병 중 건강이 악화되어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은 이미 복부까지 확대하여 복수(腹水)가 차고 있었고, 종양의 세포는 소화기관이 아닌 대뇌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2016년 말부터 이미 나는 아버지가 더 이상 오래 사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다. 20171월에 장례식장부터 미리 알아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2월 중순, 발렌타인데이의 달콤한 초콜릿 기운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버지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3일 동안 보낸 후 화장터를 거쳐 납골당까지 안치한 후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나는 집안에 아버지 물품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잘 몰랐으나, 집에서 내가 컴퓨터를 하는 것을 보고, 가끔 인터넷을 하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노트북까지 구매하여 직접 본인이 사용하고 있었다. 노트북은 대략 3번 정도 사신 것 같다. 배를 타고 먼 바다를 건너 해외를 돌 때, 남는 시간에 하랄 것 없이 있는 것보다 컴퓨터로 워드도 쳐보고, 동영상 등을 보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노트북을 처분하기 위해 노트북 내 파일을 정리하고, 외장하드 디스크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보는 도중에 파일명이 형과 나에게 보라는 한글작업파일이 있었다. 읽는 동안 나는 잠시 멍하게 있었다.

 

만일 밖에서 본인이 죽게 되면, 자신의 신원이 확인되면 시신을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 달라는 것이다. 파일생성 시점은 2014년이나, 아마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가진 것 같다. 다행히 형에게 자식이 생기자, 아버지도 그런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면 향년 72세 동안 배를 타던 40년 이상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 것이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세계와 전혀 다른 생활을 한다. 나는 가끔 지금의 한국을 볼 때마다, 혹은 그 과정을 볼 때마다 회의감을 느낄 때가 참 많다. 전에 와이프하고 대화 중에 내 이야기 중에 90%가 부정적인 내용이라 말했다.

 

고등학교부터 알고지낸 친한 친구가 말하길 나보고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뭐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런 점을 알고 있다. 내가 다소 냉소주의적인 인간이란 사실을 말이다. 냉소적인 가치관이 생긴 시기는 대학교 초반까지는 아니다. 어릴 시기야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고, 중고교 시절 역시 입시로 바쁜 시기이니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흐름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해외에서 배를 타다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화물선 내 크레인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물을 실거나 혹은 선박을 수리할 때 갑판에서 선원이 화물을 조작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선박 위에서 작업은 참 위험하다. 육지와 달리 바다는 평평하지 않으며, 파도가 몰아치면 큰 바다에서 평균 5m 내외의 파고가 형성되며, 바람의 세기도 역시 강력하다. 사람의 평형을 무너뜨리거나 또는 물체의 평형도 흔들어 버린다. 크레인작업을 하면 크레인 붐이 있고, 그 붐은 매우 무겁고 단단한 금속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런 환경에서 작업하다 무릎에 크레인 붐을 맞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이야기 듣기론 무릎 연골과 뼈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뼈와 근육이 심하게 손상되고, 손상부위로 출혈이 시작된다. 게다가 작업환경이 쾌적하지 않아 땀이나 금속파편, 바닷물이 환부에 들어가면 심한 조직괴사가 시작된다. 매우 급한 상황이다. 2003년 정도 일어난 일로 기억난다. 헬리콥터가 날아와 공수하여 수술하고 다시 집 인근에 있는 일반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몇 개월 입원 후에 퇴원했고, 후유증은 길게 남았다. 2003년 군입대를 한 나는 2004년 다음해 휴가를 받아 나왔고, 아버지는 다시 배를 타고, 집에 쉬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여 집에서 휴식할 때까지 생각하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일은 어릴 때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은 그저 수험준비에 충실히 하면 되나, 대학시절은 달랐다. 아버지와 대화를 해도 될 만큼 시간과 정신적 성숙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가난한 생활에 고생한 점, 귀가 잘 안들리는 이유도 잠수작업 중 고막이 나간 점, 손발이 모두 갈라져있었고, 발은 동상후유증이 남아있었다. 피부는 온갖 화상자국이었고, 심장까지 좋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서 부조리를 말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부조리한 대우를 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원래 세상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비참한 삶을 보고 듣던 나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세계가 아닌 빌어먹을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냉소주의적 인간이 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본인의 삶과 동시에 본인의 삶과 가치관을 형성시킨 사회적 여건, 그리고 특히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말한 원래 세상은 그렇다를 어느 책에서 볼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이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중증외상환자를 대하는 이국종 교수가 어느 날 한겨례 기자가 1주일간 병원의 현실을 보았다. 이국종 교수에게 도대체 세상은 왜 그렇죠?”라는 질문에 이국종 교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원래 세상은 그래요라고 한 것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간단하다. 우리 일상은 산업화시대가 이루어진 60~70년대와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우리는 자유롭게 생활하지 못하고,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는 정해진 시간에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버스배차 시간조차 넉넉하지 못하기에 삶의 순환은 정해진 사이클이 어느 정도 있었다. 차량을 가진 사람도 귀했고,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시간 역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21세기 민주주의 시대로 오면서 무엇이 바뀌는가? 전국에 자동차 대수는 전 국민 인구의 반이 도로를 달리고, 밤의 편의점은 간식을 사러오는 학생, 맥주 캔을 사러오는 젊은 친구들이 넘친다. 예전에 밤 10시만 되면 어둠으로 넘치는 도시의 전경이 이제는 전기 빛에 의해 환한 야경을 만들어낸다. 여수밤바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여수시의 자연환경이 좋아도 밤의 조명이 없이는 야경은 없는 것이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이미 24시간의 서비스가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24시간 운영체계를 돌리기 위해 단순히 산업만 아니라 국방, 의료, 교통, 소방, 경찰, 에너지 등 다양한 국가인프라가 충원되어야 했다. 범죄는 낮보다 밤이 많고, 교통사고 역시 낮보다 밤이 심하다. 음주가 밤에 이루어지고, 밤의 시야가 좁기에 교통사고는 항상 밤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사고가 나면 소방과 경찰이 출동하고, 이후로는 의료시스템이 운영된다.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연휴를 즐기지만, 의료와 소방은 응급환자의 치료를 위해 시스템을 구비한다. 결국 24시간 운영, 비상시의 응급처치, 거기에 필요한 수도와 전기 등 에너지 인프라를 구비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고 노동력을 투여하여야 한다.

 

문제는 24시간 인프라운영에 소요되는 인력이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한 점이다. 최근 안타까운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 중 기계에 의해 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고이다. 그의 죽음을 보고 나는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산업재해로 해마다 사망하는 노동자는 천 명을 넘고, 산업재해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수천 내지 수만이다. 가족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옆에 가족들은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친구들도 그 일로 고통 받는다. 얼마 전 윤창호라는 청춘이 음주차량에 의해 운명을 달리한 사건이 있었다. 친구들이 직접 나서서 윤창호법을 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멀쩡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차에 부딪히고, 건물잔해 깔리는 일이 있는데, 그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은 비교조차 어렵다. 최근 일어난 김용균 씨의 죽음, 그리고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고등학생 기사를 보니 참 마음이 심란하다. 201512월 내 친구가 일하던 공장 폐수처리장에서 황화수소가 새어 결국 폐와 뇌가 손상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21조로 근무해야 하고, 근무 중 안전과 관련된 장비를 장착하여야 한다. 그러나 전혀 되지 않았다. 그것도 날 좋은 크리스마스 연휴에 봉변을 당했고,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친구는 얼마 참지 못하고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산업재해로 친구를 잃었다. 하청노동자인데, 그 하청업체에서 재하청을 준 업체가 있다. 그 업체에 대한 지원근무를 나갔고, 결국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다. 노동자의 환경에 근무하면 참 어렵다. 더럽고 위험하고 힘들고 보통사람이라면 생각조차 못할 상황이 많다. 장례식을 치룰 때는 양력으로 계산했지만, 기일은 음력으로 지낸다. 올해 기일은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크리스마스는 와이프 생일이지만, 올해는 친구의 기일이었다. 어째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는지 말이다. 이국종 교수는 잘 알았다. 언제나 자신에게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이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든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또는 농민, 어민 같은 사람들이란 점을 말이다.

 

특히 해군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본인도 해군에 근무했고, 해군 내지 해병대 훈련과정에서 사고가 나면 심각하다. 공군출신인 나로서 예하비행단에서 근무하여 좋은 인프라를 누리고 있었지만, 해상에나 혹은 육지에서 먼 도서(島嶼)에 배치되면 의료지원시설이 빈약하다. 특히나 해병대 부대원이 근무하는 연평도 주변의 군사분계선 인근은 헬리콥터가 제대로 날지 못한다. 일정 고도 이상을 비행하면 북한군의 사격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현 정권에서 북한에 대한 친 외교정책이 불만일지 모르나, 전방에서 근무하는 장병이나 주민들에게 생명의 기로를 나누는 지점이다.

 

골든타임과 골든아워, 사실 타임(time)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이국종 교수가 그 말은 틀렸다고 한다. 계속 골든타임이라고 말하는 언론에서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이런 문구가 생각난다. "What time is now", 결국 현재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의 분류에서 현재상황만 말하는 게 타임일 것이다. 하지만 아워(hour)는 시간의 흐름이다. 사고가 발생하여 의료진에게 도달하거나 또는 병원외상센터에 도달까지일 것이다. 외상환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출혈이 많다. 온 몸의 혈액이 2L 내외이다. 혈액의 일정이상 손실되면 쇼크로 기절하고, 그 이상일 경우 사망한다.

 

외상환자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외상은 머리이겠지만, 한편으로 내장기관이다. 대장과 소장, 항문으로 이어지는 소화기관에서 분변이 노출되면 다른 내장기관을 오염시킨다. 특히 패혈증 증세는 세균이 혈액 안의 영양분을 흡수하여 부패하게 하고, 다시 빠르게 증식하여 온몸을 괴사시킨다. 분변이 간이나 신장 등 다른 장기에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장기파열이 되면 출혈을 멈추게 하고, 최저한으로 절개하는 것도 시급하다. 수술 후에도 중증외상환자는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나 역시 직접 목격했다. 아버지가 무릎이 나가자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특히 잊을 수 없는 일은 할아버지 제삿날 친척이 모였는데, 제대로 무릎을 꿇지 못한 점, 그리고 큰절도 제대로 올릴 수 없는 것이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심한 모욕감을 말을 뱉었고, 나는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당해온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밤에 불을 끄고 침구 위에 누워있으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생각날 때마다 바로 잠이 들 수 없다. 하물며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사람은 오죽할까? 더 일찍 발견하고 더 일찍 의료진이 도착하면 죽지 않았을 목숨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의 안전의식은 부족하고 안전은 돈만 축내는 것으로 여긴다.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그 보상비와 합의금만으로 타격이 크다. 중소기업은 폐업을 해야 하고, 소규모 건설회사는 입찰을 할 때 벌점이 부여되면 결국 사업을 접는다. 다들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자신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실패한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어쩌야 하나?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국종 교수가 전에 동영상으로 찍힌 모습을 보았다. 무전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신경질 내며 바닥에 내려친 것을 말이다. 누군가 말할 것이다. 왜 무전기를 그렇게 하는지? 핸드폰으로 하면 되는 게 아닌지를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이다. 가령 경찰에서 무전을 사용하면 그것은 비밀로 관리된다. 경찰의 무전을 만일 범죄자들이 알면 도피하기 좋을 것이고, 오히려 경찰관을 습격할 것이다. 또한 교통사고를 났을 때 사고차량을 끌고 가는 특수차량이 경찰차 및 구급차가 오기 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최근 경찰무선을 도청하여 사고현장의 차량을 먼저 견인하려던 차주가 구속되었다. 소방과 경찰 그리고 비상무선을 누가 함부로 들어서는 안 되고, 이용해서도 안 된다. 무전기를 보급 받아 사용하는 것은 비밀의 문제이다. 군복무 중 나는 관제탑과 교신을 하여 활주로 내부로 진입한 적이 있었다.

 

부사관으로 근무할 때 핸드폰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핸드폰으로 관제탑과 교신한 게 아니라 TRS, 무전기를 가지고 교신했다. 게다가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학교는 인근에 공군기지가 있고, 공군기지가 위치하면 공군관제타워와 교신을 해야 한다. 헬리콥터가 마음대로 이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소방청에서 나온 헬리콥터라도 조종사가 내가 날고 싶어도 나는 게 아니다. 관제통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무전기를 박살내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비상사태 통제시스템이나 응급구조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중증외상환자는 11초가 아까운 사람이다. 시스템의 미비로 시간이 지연되면 결국 그 사람은 운명을 달리한다. 다른 병원에서 제대로 환자를 받아주지 못해 몇 시간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아주대학교 외상센터 올쯤에 이미 사망한 사람도 제법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은 없으나 죽은 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평생 한으로 남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돈과 지위, 명예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명예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 명예란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상환자의 생명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다. 피가 온 몸을 적시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눈도 실명되어 가고, 어깨도 망가졌다.

 

자신을 받쳐주던 인력도 정해진 인원의 1/3 수준이다. 그마저도 있기에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내 아버지는 2003년 정도이니 한국에서 외상센터가 거의 걸음마 수준에 당했다. 외국 외상구조시스템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국내 연안에 정박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특히나 인천 앞바다라면 말이다. 바다라는 공간이 진짜 그렇다. 이국종 교수가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여러 일이 있었다. 북한귀순병사의 구조도 있었지만, 최고의 이벤트는 석해균 선장의 구출이다. 총알을 배와 다리를 관통하여 삶조차도 포기해야 하던 그 다급함, 해적의 무서움은 정말 두렵다.

 

석해균 선장납치 이후 이국종 교수가 국내로 데리고 와서 결국 회생할 때, 많은 한국인들은 감동의 도가니로 넘쳐났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선원들이 원래 해적에게 납치가 많이 되, 배를 타는 사람이니 험하게 다루지 않은데, 저런 일이 있네. 나도 2번 납치된 적이 있었다.”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 나는 내 방에 들어와서 혼자 몰래 울었다. 이국종 교수의 말처럼 석해균 선장이나 혹은 우리 아버지가 같은 사람이 있기에 한국이 돌아가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석해균 선장이야 이명박 정권의 기획적인 요소가 많았다. 에어-앰뷸런스 대여나 의료장비 공급 등에서 정부의 도움보단 본인의 희생이 많았다.

 

죽어도 타지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와서 죽어야 한다고 말이다. 다행히 석해균 선장은 살아났고, 이국종 교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정작 외상환자를 위한 정책을 멀게만 느껴져 갔다. 이국종 교수가 잘 지적하듯이 중증외상환자는 대부분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많다. 좋은 근무환경에 있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런 불행을 겪지 않는다. 기껏해야 교통사고이다. 가난한자들은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다 생명을 잃어가고, 병원에 가도 병실조차 잘 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위공무원이나 부유한자는 전자들을 외면하던 사람에게 대환영이다. 냉소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세상은 원래 그래요가 괜히 나온 말이겠는가?

 

이국종 교수는 어린 시절 가난했고, 아버지가 한국전쟁 상이용사로 무료진료를 받았을 때 많은 설움을 받았다. 병원에서 돈도 안 되는 불청객으로 취급당했다. 그러나 한 의사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남들에게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대접받던 아버지를 오히려 존경해야 할 분이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한국전쟁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국군장병은 우리가 잊어서 안 될 분이다. 북한군과 대적한 민족상잔의 비극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지금을 만들어준 분이다.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거주하다 세상을 떠난 이국종 교수의 아버지, 이국종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예라는 점을 책에 명시했다.

 

왜 그랬을까? 나라면 이해할 것 같다. 눈을 다쳐 시력을 잃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가난한 생활에 본인도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고 절망했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세종대왕의 아들 중에 하나인 광평대군의 후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에게 그것 이외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인 이국종이란 외과의사가 있었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지만, 가족은 있었다. 가족이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그런 식으로 남은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아버지도 가난했고, 배운 것도 없이 살아왔다. 돌아가신 후 며칠 뒤 구청에서 카드 하나가 발급되었다. 청각장애인 증명카드였다. 40년 넘게 그렇게 고생했는데, 조금 더 일찍 발급받았다면 고생을 덜하지 않았을까? 배 타는 사람이라 민간보험도 가입되지 않았다. 비싼 병원비는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의 돈, 내 월급통장의 잔액이었다. 우리집안은 대대로 양반의 후손이었다. 현대사회에 양반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은 하지만, 문중 자체가 다산 정약용 선생과 워낙 많이 연결되어 있었고, 다산 선생이 강진유배 중 다산초당에 기거할 적에 내 직계할아버지는 나룻배로 강진만을 건너 귤동마을의 다산초당에 갔다고 한다.

 

소설 목민심서를 읽기 전에 다산 선생의 따님은 우리 파계 할아버지 측으로 시집온 것과 목민심서를 만들어간 이야기, 베트남 상징적 인물인 호치민이 들고 다닌 짐은 오직 자신의 옷과 목민심서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양반 집안이라 해도 돈 없으면 상놈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면서 집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에게 해줄 이야기는 그것밖에 없었다.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 혹독한 노동만 하던 젊은 시절, 군대에서 군사정권에 어울리지 않은 후보를 찍은 이유로 구타당한 이야기, 배타면서 고생한 이야기, 들어보면 즐거운 일들은 별로 없다. 그나마 할머니와 함께 하던 시기만은 좋았던 것 같다.

 

그 외로 좋은 추억이 될 이야기는 없다. 집안 이야기를 하면서 그 내력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우리 아버지도 그것밖에 없으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말이다. 가진 것은 형과 나, 어머니, 그리고 형수님과 조카 2녀석이 다이니 말이다. 내가 결혼 전에 별세했으니 그것만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국종 교수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가진 게 없고, 남은 것은 오직 자신의 가족이었고, 이국종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그 위의 세대도 그런 마음이 이어져 간 것이라 여겼다.

 

그 때문인가? 자신의 눈이 실명되어가자, 이국종 교수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안으면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시력을 잃어가는 이국종 교수의 눈 한쪽이 아버지의 실명된 눈과 같은 부위였기 때문이다. 업이란 거대한 운명의 수레는 이국종 교수를 피해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이국종 교수의 글을 보면 희망이란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사람이 죽어 가는데 아무런 대응이 되지 않은 현실에서 무슨 기대가 있을까? <골든아워>를 읽으면서 많은 공감과 생각을 하였다. 이국종 교수는 의사교수직이라 사회적으로 높은 쪽이나, 의료계에서 바닥을 맴돌고 있다. 중증외상환자는 바닥 중에 바닥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게 말로는 쉬우나 현실은 정말 어렵다. 사회적으로 인간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육체적으로 인간답게 살아야 최소한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알라딘이란 서적판매업체서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책 1위가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국종 교수를 미디어를 통해 알았고, 그가 만든 책을 읽었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가 직접 마주해야 하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또한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들은 무슨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이국종 교수의 본인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팀과 조력자의 이야기도 되나, 때로는 소외받고 가난한 많은 서민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나라는 사람도 상당히 냉소적인데, 이국종 교수의 냉소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적어도 책을 보면서 오지도 않았고, 오는 것도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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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0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31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12-31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애니비평님께서는 작년과 올해 많은 변화를 겪으신 것 같네요... 아버님 별세, 결혼 등 큰 일을 많이 치루신 듯 합니다. 내년에는 평안하게 원하시는 바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만화애니비평 2019-01-01 11:35   좋아요 1 | URL
올해 목표는 돼지띠 아이입니다!!
호랑이님 언제 호랑이해가 올런지요..어흥~
새해 복많이 받으세용~~

카알벨루치 2019-02-01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수놓고 귀환하시길 바랍니다 ^^

만화애니비평 2019-02-05 16: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집에 와서 컴을 켭네요.
인사 늦어 죄송합니다